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은 기적적으로 100세에 아내 사라를 통해 독자 이삭을 얻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힘으로 낳은 율법의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낳은 은혜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창세기 22:2>

사실 당시에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 중 자신의 자식을 잡아서 바치는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이는 우상인 몰렉신을 섬기는 제사 방법이었죠.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고 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역시 이에 동의하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믿음이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셨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더욱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떠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하나님에게 되묻거나 항의하지 않고 아침 일찍 이삭을 데리고 떠납니다.

3일 길을 떠나서 모리아 땅에 도착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장소에 도착합니다. 아브라함은 종들을 기다리라고 한 후, 이삭과 둘이서만 번제를 드릴 장소로 올라 갑니다.

아브라함은 번제를 태울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이삭’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번제를 드려야 하는데 제물이 없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묻습니다.

이삭을 정말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말리는 천사“아버지, 여기 불과 나무들은 있는데, 올림 제물을 위한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그에게 답합니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올림제를 위한 양을 택하실 것이다.”

아마도 이 때 이삭은 자신이 번제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 입니다.

제사를 지낼 장소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제단을 짓고 이삭을 묶어서 번제단 나무위에 올려 놓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하늘에서 불러 아브라함을 막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이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창세기 22:12>

성경 학자들은 번제를 지을 나무를 직접 지고 산을 오를 수 있었던 이삭을 적어도 15세 이상 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115세가 넘었겠지요. 이삭은 번제물이 자신임을 알았을 때, 또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을 때에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아니면 완력으로 아브라함을 쉽게 막아설 수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마치 양처럼 반항도 없이 묵묵히 묶여 번제물이 되기를 기다렸고, 아브라함은 그런 이삭을 찌르기 위해 칼을 듭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죽인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 묵묵히 죽음의 길을 간 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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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기의 아들을 죽인 아버지와 묵묵히 아버지에 의해 죽은 한 사람을 압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은 귀하고 귀한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죽이시고, 그 독생자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음에도 이 땅에 내려 왔습니다. 그 아들은 나무를 지고 산을 올랐으며 그 나무에 묶여 단 한번의 완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히브리서 10:10>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단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가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한, 그리고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이야기 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예표하고, 이삭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것을 막아 내시고 한 마리 양을 그 곳에 두십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뿔이 덤불에 걸린 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창세기 22:13~14>

하나님은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하셨고 창조주의 절대적인 명령은 지켜져야 했습니다. 이삭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이삭의 모습을 통해 아담의 자식으로 태어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예표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마리의 양을 준비하셨고, 죽어야 하는 이삭, 즉 나를 대신하여 헌물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 양은 누구를 예표하나요? 나를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 나무 제단 위에서 죽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 입니다. 그 나무 제단은 내가 죽어야 하는 곳 입니다. 그 나무 제단은 내가 희생 되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나 대신 누군가가 내 대신 희생을 당했습니다.

 

모리아 산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창세기 22:2>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창세기 22:13~14>

성경은 이렇게 얘기 합니다.

골고다 언덕 위 세개의 십자가“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

모세의 때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다!’ 라고 과거형으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볼 것이다!’ 라고 미래형으로 얘기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고 다른 땅이 아니고, 모리아 땅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그 산에서 보았습니다.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 <역대하 3:1>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그 바로 옆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리아는 히브리어로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을 보다! 하나님을 만나다! 라는 뜻 입니다.

모리아 땅!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허락하신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사랑의 하나님을 보고 만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