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로마서 7:7~8>
바울은 5장에서 율법으로 인해서 죄가 더해 진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 율법에 문제가 있다고 오해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7장을 통해서 이는 율법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우리 안의 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 합니다. 율법이 잘못 된 게 아니라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역할을 하는 것 입니다.
위 구절에서 죄는 우리의 특정한 행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우리의 본성과 인격 안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우리안에 역사하고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써의 죄를 의미 합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우선 죄는 우리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는 것이 죄 입니다. 또한 죄는 우리 안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 안에 가만히 존재만 하거나 어떠한 상황에 반응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죄는 우리 안에서 베이스 캠프를 이루고 율법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온갖 탐심을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즉 온갖 탐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계명을 이용한다는 것 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이용해서 수단으로 사용해서 각양 탐심을 이루는 것 입니다.
또 본문에 있는 이루었다! 라는 단어는 강력하게 역사해서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죄는 자신이 목적한 바를 확실하게 이루어 내는 강력한 세력이라는 것 입니다.
로마서 5:20에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라는 구절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죄는 우리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죄의 노예로 끌려 살았었습니다.
은혜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 인들 안에 죄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정죄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이지 죄는 여전히 살아 있어서 다시 우리의 왕이 되어 나를 장악하고 내 몸을 병기로 삼아서 끊임없이 죄 짓게 하려고 합니다.
죄는 어떻게 계명으로 탐심을 일으키는가?
그렇다면 죄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이용해서 온갖 탐심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3장으로 되돌아가서 인간이 처음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 죄 지었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보면 지금도 죄가 내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기 전에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즉 선악과를 먹지 말 것이며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마귀가 인간에게 찾아 와서 하와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하와는 그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하게 됩니다. 마음에 탐심을 품고 범죄하게 된 것 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마귀가 인간을 찾아와서 유혹하고 충동질해서 죄를 범하고 타락하게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타락한 다음에는 마귀가 또 다시 와서 충동질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우리 인간 역시 마귀와 똑같이 사악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격 안에 죄가 존재하게 되며, 그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마귀가 했던 똑같은 일을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 스스로를 죄짓게 한다는 것 입니다.
즉 마귀가 뱀을 통해 나에게 했던 바로 그 일을 내 안의 죄가 나에게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 죄는 어떤 일을 할까요?
첫번째, 죄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고 하나님의 계명이 올 때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을 일으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은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것이며 오히려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 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사탄이 한 말의 포인트는 “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 입니다. “순종 안해도 돼! 따먹어도 죽지도 않으며 오히려 눈이 밝아 져서 하나님처럼 돼!” 라고 속이고 있는 것 이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길 필요가 없다는 반항심을 일으키는데, 우리 안의 죄가 똑같은 일을 합니다.
계명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점잖고 도덕적이고 지적인 사람들 같지만, 그들에게 너는 너의 마음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주어지면 그 사람 안에 죄는 “내가 왜?” 라며 반항하게 만듭니다. 죄는 계명이 오면 즉각적으로 반항심을 갖게 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하나님에 대한 반감과 반항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싫어하죠. 하지만 그 반항심은 숨겨져 있다가 언제 나타나냐면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나타나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거부하고 내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정한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를 거부하고 나를 위해서 살기로 한 것 입니다. 내 영광, 내 기쁨, 내 만족을 위해서 살기로 결정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한 것이죠.
인간은 창조 되기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인데, 인간이 타락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거부하는 것 입니다. 내 능력, 내 지혜, 내 힘, 내 경험, 내 방법으로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무릎 꿇지 않고, 스스로 내 힘으로 나를 완성 시키는 그런 존재가 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 입니다. 이게 타락 즉 죄 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8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령님이 없는 나라고 하는 존재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는 것 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다고 얘기 합니다. 그래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입니다.
두번째, 죄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왜곡 시킵니다.
죄가 계명을 갖고 우리 안에 역사 하는 두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철저하게 왜곡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뜻 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완전히 선하시며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며 악한 생각, 악한 동기가 하나님께는 전혀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순종의 길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과 복을 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말씀을 주시던 어떠한 일을 겪게 하시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고 생명을 주고 유익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에 보면 마귀는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하나님의 본 뜻을 왜곡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만 선악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거꾸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냐며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틀고는 하나님이 얘기한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부정하고 결코 죽지 않을 것 이라고 속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 기저에는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며 너희가 잘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너희 편이 아니라는 것이죠.
너희가 잘 될 까봐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게 싫어서 먹지 못하게 한다고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왜곡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하는 것 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고 그 결과가 죄가 된 것 입니다. 문제는 인간 안의 죄가 똑같은 방법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야고보서 1:16에는 야고보 사도가 속지 말라고 하심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죄에게 속는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말씀과 율법을 주셨는데, 죄는 그것을 왜곡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지 않으시려고 주신 것처럼 오해하게 하는 것 입니다.
세번째 죄는 철저하게 말씀을 갖고 우리를 속입니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뱀은 그 말씀을 뒤집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속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계명을 어겨도 괜찮다고 하는 것 입니다. 오히려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되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영광스런 존재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입니다.
즉 말씀을 범해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더 좋다고 얘기하는 것 입니다.
그와 동일하게 우리 안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려고 할 때 마다, 죄가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떠한 말씀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려 할 때 죄는 반항을 일으킵니다. “내가 왜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하며 불신하게 합니다. “나를 괴롭히시려고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속입니다. “순종하지 않아도 될 뿐더러 순종하지 않으면 더 잘 될거야!“
이런 식으로 말씀과 반대 되는 쪽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갑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헌금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려움 입니다. 내가 더 가난해 질까봐, 내가 잘못될까봐, 이 모든 것이 죄의 거짓말에 속아서 생기는 결과 인 것 입니다.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 <여호수아 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시고 우리가 잘되었으면 좋겠고, 우리가 행복하게 되라고 말씀을 주시는데 죄는 이렇게 속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손해봐, 말씀대로 살면 니 인생 힘들어져!”
이런 것들은 마귀가 우리에게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가 이미 우리 안에서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마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의 죄가 이렇게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 안에 거하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역사하는 아주 강력한 세력 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 없을 때는 이 죄가 완전한 왕이 되어서 내 위에 군림하면서 나를 지옥으로 사망으로 끌고 갔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시면서 죄는 더 이상 나를 지옥으로 사망으로 끌고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죄는 여전히 강력한 능력으로 다시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강력하게 역사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죄와 맞서고 싸우고 누르고 이 죄와 반대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만이 죄를 이길 수 있게 합니다. 내 스스로는 이 죄에 대항하여 끌려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를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 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20~21>
죄가 강력한 세력으로 우리를 휩쓸어 가고 있었는데, 그 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부어진 것 입니다.
나는 내 안의 죄의 소욕을 따라서 죄만 짓고 살던 인생이 어느날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 일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부어 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사랑이 내 삶을 사로잡아 버렸기 때문 입니다.
그 은혜로 인해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은혜로 인해 영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넉넉히 주실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