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책 입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으시자 마자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이 다툴 것이며, 뱀의 자손이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물지만, 여자의 자손은 그 머리통을 부술것이라는 복음을 아담과 하와에게 전해주십니다.
이런 중요한 사건에 대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오류를 지적하며 조롱 합니다. 무슬림 신학자 Ally Shabir을 비롯 성경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으로 유명한 비평적 신약 학자 Bart Ehrman 등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오류를 지적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실제로 그런 오류들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3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는데 6시에 재판을 받으셨다고?
때가 세 시가 되매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마가복음 15:25>
그러므로 빌라도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끌고 나가서 돌로 포장한 곳이라 하고 히브리어로는 갑바다라고 하는 곳에 있던 재판석에 앉으니라. 그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여섯 시쯤이더라. 그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왕을 보라! 하거늘 <요한 복음 19:13~14>
마가 복음에는 예수님이 3 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하고, 요한 복음에는 6시인데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고문을 받고 계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모순일까요?
이제 세계화로 인해 외국에 있는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깨어 있는 시간이 아님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시차라고 얘기합니다. 즉 분명히 동시이지만 한 나라에서 12시가 다른 나라에선 5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즉 1월 1일을 우리는 설날이라고 부르고, 설날 동안 우리는 가족을 찾아 갑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구정을 세는데, 보통 구정은 2월 초에 있지만, 우리는 음력으로 1월 1일인 그 날을 설날 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유대땅에 있었던 두개의 시계
예수님이 있던 당시 예루살렘에도 이런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유대식 시간과 로마식 시간 입니다. 당시 로마식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동일 합니다. 한 밤중에 0시가 시작이 되어, 한 시간씩 흐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다르게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6시가 하루의 시작 즉 0시가 되었고, 그 이후 부터 한 시간씩 흐르다가 밤 즉 저녁 6시 부터는 시가 아닌 경으로 바뀝니다. 원래는 밤 12시간을 4 시간씩 나눠서 3경으로 나눴는데,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파수병들의 근무 교대 시간에 맞추어 세 시간씩 4 경으로 나눕니다.
주인이 만일 이경에 오거나 삼경에 왔을 때에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도다. <누가 복음 12:38>
즉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침 9시는 이스라엘로 치면 3시이며, 저녁 6시에서 9시까지 1 경, 9시 부터 12시 까지 2경 이렇게 계산 합니다.
성경 기록은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한 밤중에 잡아 간 후 대제사장의 집, 헤롯에게 끌고 갔다가 빌라도에게 데려 왔으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을 3번 부인할 것이라고, 즉 이른 새벽에 그런 일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었을 때에는 너희가 나를 치려고 손을 내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시간이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2:53>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던 3 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에 잡아서 대제사장의 집, 헤롯 궁전, 빌라도에게 와서 수 많은 군중들의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소리를 들으며 재판을 받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수 있었을까요? 그 새벽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재판 받는 것을 구경했을까요?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 3시는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새벽 3시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식 시간과 로마식 시간
그렇다면 가장 최선의 추론은 마가 복음에서 얘기하는 3시는 이스라엘 식 즉 우리 시간으로 아침 9시라는 것 입니다.
또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간 것이 새벽 닭이 울고 거의 바로라는 사실을 통해 요한 복음에서 얘기하는 6시가 로마식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당일 동선을 이렇게 그려보면 정확할 것 입니다.
밤 새 괴로워 하며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새벽에 유다와 함께 온 군병들에 의해 잡혀가시고, 대제사장의 집, 헤롯 또 총독 사령부를 수 시간 동안 왔다 갔다 하시다가, 닭이 울고 곧 새벽 6시 경에 빌라도의 재판정에 도착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바라바를 풀어주라는 사람들의 외침에 아무 죄도 찾지 못하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9시쯤 이스라엘 시간으로 3시쯤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그리고 정오 즉 이스라엘 시간으로 6시 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시 이스라엘 시간으로 9시까지 계속 되고(마가 복음 15:33), 예수님은 6 시간 만에 숨을 거두십니다.(마가 복음 15:34)
이렇게 이해하고 설명하면, 아무런 모순이나 오류도 없으며, 다만 다른 시간 방식으로 기록을 한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타 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은 AD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후 10~20년 후에 쓰여졌기 때문에 유대인식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로마식 시간을 사용해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고 이해하면 우리는 왜 복음서에 서로 다른 시간제를 사용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시간 계산을 하라고 주어진 책은 아닙니다.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구속의 죽음의 장면 속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순과 조롱거리를 찾는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덕분에 풀려난 가장 극악 무도한 죄인 바라바가 바로 나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