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역사에 대한 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한 역사학자가 예수님은 베들레햄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그 당시에 인구조사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 역사학자는 왜 그렇게 주장을 하셨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가복음 2장을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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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는 구레뇨의 인구조사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우선 누가가 혹시 구레뇨의 인구 조사에 대해 잘 몰랐는지에 대해 먼저 체크해 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누가가 실수 했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누가는 신약에서 2권의 책을 썼는데 첫번째가 누가복음이고 두 번째가 사도 행전입니다. 그리고 사도 행전 5장에서 누가는 분명히 구레뇨가 총독일 때의 인구 조사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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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가 온 세상에 내린 칙명
그러면 이제 누가 복음의 2 구절에 대해 설명해 봐야 할 것 입니다. 논란이 되는 구절은 누가 복음 2장의 1절과 2절인데 1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 때에 아구스도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온 나라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1>
역사학자들이 이 구절에서 문제 삼는 것은 “그 때에”라는 단어를 토대로 아우구스투스가 온 나라에 즉 로마가 점령하고 있던 모든 나라에 동시에 인구 조사를 하라고 명령을 내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맞는 얘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통신이나 교통이 발달 한 것도 아니고 로마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런 명령이 동시에 전달 될 수도 또 동시에 실행될 수 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 기록이 모든 로마 점령지가 한 시점에 “요이 땅!”해서 인구 조사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2000년 전 쓰여진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책을 독해하는 방식을 따르려 하지만 지금과 당시 글을 쓰는 방식은 굉장히 다릅니다.
비단 성경 뿐 아니라 어떠한 역사책을 봐도 그리고 그 시기가 오래되면 오래 될 수록 육하원칙에 따라서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글을 쓰는 스타일대로 씁니다. 그래서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자세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 복음 2장 1절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가가 그 때에라고 말하는 것은 한 시점이 아니라 몇년에 걸친… 개념으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2020년대를 사는 우리가 일제 시대에… 라고 말하면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일제 치하 36년 중 어느 시점 혹은 그 전체를 걸친 시대를 다 아우를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인구 조사를 하도록 명령을 내린것에 포인트를 두지 않고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할 때에 모든 나라에 조세를 위한 인구 조사를 명령했냐… 라는 것에 집중한다면 이는 역사적으로 사실입니다.
분명히 그 때에 로마의 점령하에 있던 모든 나라는 조세를 위한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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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뇨가 총독일 때에 인구 조사가 언제 있었을까?
이제 1절보다 더 논란이 되는 2절에 대해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행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
역사적으로 구레뇨 혹은 퀴리니우스는 실제로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했었었고, 다만 그 시기는 위에 설명했듯이 서기 6~12년 동안 통치를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기원전 4~6년과 차이가 나는 것 아닌가요?
바로 이 이유로 일부 역사 학자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으며 예수님이 베들레햄에서 태어났다는 성경의 기사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과연 사실일까요?
제가 항상 과학자나 역사학자들에게 느끼는 불만은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판적으로 보며, 확실한 증거도 없이 거짓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론에 비교해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과학자들은 대부분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계인이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나요? 단 하나도 없으며 엄밀히 과학적으로 따지면 외계인은 커녕 외계 생명체가 발생하는 것도 굉장히 희박한 확률을 갖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사는 우주가 생명체가 생존하게 적합하게 될 확률 역시 극도로 희박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떠한 이성적인 논리적인 증거도 없이 그런 희박한 확률의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분명한 이중 잣대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의 주관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증거로 이 부분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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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라는 주장에 대한 첫 번째 해결책
제가 생각하는 해석을 설명하기에 앞서 조금 다른 관점의 설명을 먼저 드려보고 싶습니다. 이 해석은 저명한 신학자 N.T.Wright나 F.F Bruce등이 주장하는 것으로 누가복음 2:2의 첫번째라고 번역된 πρώτη(프로테)를 ‘첫번째’가 아닌 ‘이전에’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어 프로토스에는 첫번째라는 뜻 이외에도 그 전에, 가장 중요한 등의 다른 의미도 갖고 있는데, 이 단어를 이전에라고 번역한다면 시기상의 모순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해석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이전에라고 번역하기에는 문법상의 그리고 어감상의 부자연스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전에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었다면 πριν(프린)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해 보이고 또 크게 상관이 없는 구레뇨 시대때의 인구조사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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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가는 첫번째 호적 조사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모순되 보이는 이 구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 구절을 자세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읽으면 넘어갈 수 있지만 누가는 구레뇨가 총독으로 있을때의 “첫번째” 호적 조사라고 언급했습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한 쇼츠 영상을 봤는데, 미래 대한민국에 인구가 줄어들어 학교 전체의 학생이 한 명 밖에 안남은 상황을 풍자했고 이 학생은 전교 1등이자 가장 성적이 우수하고 모든 것이 다 1등인 우수생이라는 유머였습니다. 이 것이 우스운 이유는 우리가 보통 참가자가 1명밖에 없을때 그 사람을 1등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구레뇨 시대의 호적 조사가 어려번 있었다면 “첫번째” 호적 조사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번째라는 단어 안에는 주어진 상황 이 경우 구레뇨가 총독일 때, 또 다른 인구 조사가 있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러면 이 당시에 인구조사가 여러번 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당시 인구조사는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것으로 로마가 지배하는 땅에서는 보통 한 세대가 성인이 되는 14~15년에 한번씩 아무도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인구조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7세기에 쓰여진 Chronicon Paschale에 따르면 이 세금 징수를 위한 인구조사는 줄리어스 시져에 의해 기원전 49년부터 시되었고, 서기 42년 클라우디우스 때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 더 확실한 기록이 있나요?
사실 위에 언급한 책들은 세금 징수를 위한 인구 조사가 14~15년에 한번씩 있었다고 했을뿐 정확하게 언제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에 인구조사가 있었음을 직접적인 기록은 없을까요?
우린 너무나도 확실한 기록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쓴 The deeds of the divine Augustus라는 문서가 성경의 기록을 지지합니다. 이 기록 8항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8년, 기원전 8년 기원후 14년에 3번 인구 조사를 명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방송에서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건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그대로 믿을수 밖에 없을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성경을 부정하는 주장에 대한 증거를 찾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기록을 살펴 본다면 성경의 기록은 항상 정확했고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조사를 할 때도 도와주셨지만 제가 찾지도 않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신실하게 저에게 증거를 제시해 주셨고, 이를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 주제에 대해서 조사를 할 때에 저는 단순히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인구조사가 있었다라는 역사적 사실만 배운 것이 아니라 제가 하나님께 묻고 궁금해 할 때에 그 마음을 아시고 그 기도를 들으시는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임을 함께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