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진화론자들을 포함한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을 공격할 때 항상 나오는 레파토리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성경은 혹은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들을때 마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창조론자들은 성경이 ‘과학책’이라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끌의 창조론 연대기 17편에서도 준이와 수영이는 버나드 램을 인용해서 창세기 1장이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로 쓰인게 아니라는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창조론자도 성경을 과학책 이라고 하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은 이런식으로 대중들에게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주장한다.” 라는 허수아비 공격대상을 만들어 놓고,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 놓습니다. 최근 모 기독교 언론의 기사 속 양승훈 교수님과 이재만 선교사님의 논쟁에서도 이런 왜곡된 모습은 쉽지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재만 선교사님이 언급한 “양 교수는 성경이 지질학 교과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필자도 이 말에 동의한다.” 를 따와서 문단 제목을 “성경은 지질학 교과서가 아니다? 인정” 이라고 붙여 놓고는, 마치 성경을 지질학 교과서인 것처럼 주장했다가 한발 물러선 듯한 느낌을 주려 함을 볼 수 있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아니요!” 창조론자들은 성경이 ‘과학책’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에 하나님 창조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많은 진화론자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을 과학과 성경의 대결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논쟁은 누구의 주장이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났는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는 성경 말씀은 물보다 밀도가 더 높은 물질이 어떻게 물 위를 뜰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던 것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말해 창조론자들은 성경이 진리임을 믿기에 성경을 기준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진화론자들은 과학이 주장하는 모든 것이 진리이거나 확증된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현대 과학이 이야기하는 바를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창조론 연대기 17화는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동안 여러 창조론을 제시해 놓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듯 하던 만화는 과학의 주장들과 성경을 억지로 조화시키려하는 ‘날-시대’ 이론을 볼모로 삼아 현대 과학과 성경이 맞지 않음을 주지시키고,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 설화처럼 당시 사람들에게 비유적으로 설명한 책이라고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만화에 따르면 현대 과학은 별이 탄생하고 시간이 지나 해가 생기고 지구와 달 등의 태양계가 생기고 그 지구에 바다 생물을 시작으로 다른 생물들이 진화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이 순서에 대한 증거가 과학자들에게 있을까요? 현대 과학은 즉 다시 말해 인류는 이 순서가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음을 관찰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 없이 우주, 태양계, 생명이 생기려면 이런 순서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라는 이론적 설명만 할 수 있을뿐 입니다.
과학은 행성이 자연적으로 생길수 있는지의 여부도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우주의 탄생에 하나님을 배제시킨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별이나 행성이 스스로 생겨날 수 있는지 조차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과학책’에는 우주에 있는 엄청난 가스 성운들이 뭉쳐지고 이후 핵합성을 통해 별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가스가 뭉쳐 별이 되는 과정에서 중력보다 더 강한 가스 압력으로 인해 뭉쳐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고압 가스 스프레이를 뿌리면 스프레이 통안에 있는 가스가 압력이 낮은 공간에 퍼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스 성운은 더 넓은 우주의 공간으로 퍼지게 되지 일정 크기 이상의 돌덩이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여러가지 해결책들을 내놓지만, 그 모든 해결책들은 가스 성운 근처에 이미 엄청나게 많은 항성의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배제하고 과학은 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게 아니라 진화론자들이 인정하는 바 입니다.
어떻게 성간 구름이 중력으로 뭉쳐져서 원시성이 되는지에 대한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
지난 수십년간 어떻게 항성이 형성되는지에 대한 말 그대로 수백가지의 가설이 쏟아졌지만, 현실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2]
항성의 기원은 현대 천체 물리학의 풀리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3]
은하와 우주 거대 구조의 형성은 현대 천체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4]
그렇다면 태양계의 형성 특히 지구와 달에 대한 설명은 가능할까요?
과학은 우주에 있는 천체들이 46억년이 되었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유럽 우주국에서 보낸 로제타 혜성 탐사 프로젝트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혜성의 코마에서 산소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산소는 반응성이 좋기 때문에 태양계의 형성시에 모두 사라졌어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카트린 알트웨그 교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산소가 다른 물질과 결합하지 않고 수십억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현재의 태양계 생성 모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조건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5]
이런 문제는 혜성에서만 발견된게 아닙니다.
달에서 물의 발견 역시 오랜 연대 그리고 엄청난 열을 동반한 자연적인 태양계 형성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행성 과학자 Paul Lucey는 “이 문제가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 줄 것 입니다. 이는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것 입니다. 달 과학자로써 이 논문을 읽었을 때 저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습니다.” [^6] 라고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요?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비과학적이고 유신 진화론자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는 초자연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을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문제는 생명의 발생 자체가 아니라 생명이 발생했다고 하는 40억년 전에 지구의 환경이 조성될 수 없었다는 점 입니다. 수십억년 전 태양은 지금보다 작았고, 이에 따라 더 적은 열을 방출하였으며 지구는 얼어 붙어 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질학적 증거는 고사하고, 남극에서 야자수 화석이 발견되는 등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따뜻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금 있는 위치에서 형성되려면 100억년 이상이 걸려야 하는 천왕성의 형성에 대해 목성과 토성이 탁구(핀볼)를 치다가 토성이 놓쳐서 지금의 위치에 정착했다는 가설,[^7] 자연주의적인 태양계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대부분의 행성들에 대해서는 우연한 충돌 가설 등, 어떠한 과학적인 증거도 없으며 실제로 발생할 확률도 없는 비현실적인 모델들이 넘쳐납니다.
오랜 지구론자들이 갖고 있는 미스테리가 무엇을 의미하나?
이런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번째로는 자연적으로 태양이나 태양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며 관찰 증거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 입니다.
두번째로 태양계는 결코 46억년이 되었을 수 없습니다. 태양계가 기껏해야 1억년 이상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세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은 우리가 그들을 신뢰하는 것만큼 많은 것을 알지 못하며 현대 과학은 우리 지식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현대 과학의 관점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모든 문제를 다 짚을 수 없으나 일부만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이유없이 자신이 만든 생명체들을 죽이셨을까?
첫번째로 현대 과학에 따르면 인간이 나타나기도 전에 지구의 생명체들은 5번의 대 멸종을 경험했으며, 이 멸종으로 인해 지구 상에 있었던 90%의 생명체는 멸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가축을 그것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그것의 종류대로 만드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25>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시면서 그 모든 것에 만족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완벽한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셨을까요? 그리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성품을 갖고 계신 걸까요?
얼마 전 중국에서 자기 강아지를 차에 매달고 달려 처참하게 죽인 운전자를 사람들이 폭행한 일이 발생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잔인한 운전자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사자가 사슴을 잡아 먹으려고 해도 사슴이 도망가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없이 자신이 보기 좋았다던 동물들을 5번이나 멸종시키시는 것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성품에 적합한가요?
게다가 아무 이유가 없는 대멸종을 지켜보며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던 하나님은, 인간의 죄가 세상을 뒤엎어 그에 대한 심판으로 홍수를 내리실 때는 마음이 아파하십니다. 왜 이런 모순된 모습을 보이시는 거죠?
또한 현대 과학을 따르면,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에 즉 인간이 타락하기도 전에 분명히 육식 동물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창조시에 모든 동물은 다 식물만 먹도록 명령하셨으며 그것이 지켜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속에 생명이 있어 땅에서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주었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30>
창조론 연대기 17화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
그러므로 창조론 연대기 17화 가장 뒤에 나오는 게임을 만드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적절한 비유가 아닙니다.
이 비유는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아빠가~ 게임의 스토리와 작동 방식이 구상되었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 모든 것이 너무 조~았그등? 그래서 다 지워버렸지, 그리고 다시 만들었어.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너무 조~았그등? 그래서 또 대부분 지워버렸어!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배경 그래픽도 멋진 캐릭터들도 만들었는데 기가 맥혔그등? 그래서 다시 대부분 지워버렸어!”
이 설명을 모두 이해한 아들은 아빠에게 뭐라고 질문 할까요? 만화에서처럼 아빠가 짱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빠를 걱정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할까요?
원죄를 부정하는 유신 진화론
두번째, 현대 과학을 따른 유신 진화론은 원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유신 진화론은 아담과 하와가 실존 인물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에 아담이 존재하던 시대에는 10,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커다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로마서 5:12>
아담과 하와를 제외한 9,998명의 사람들은 영생을 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망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유신 진화론자들 역시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 합니다.
“만약 대진화가 사실이고 인간이 수 억년간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면, 여러개의 중요한 신학적 의문들이 발생한다. 첫번째, 진화론 안에서 타락의 교리는 어떻게 되는가? (진화가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역사성(진리성은 아니고)에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하면, 원죄의 교리 역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고, 대속의 교리 내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할 역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만약 예수님이 인류의 원죄 때문에 죽으신게 아니라면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 즉 두번째 아담이 십자가에서 회복하려고 하신 것이 첫번째 아담의 죄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대속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주요한 이유를 원죄로 보고 있는데, 대진화는 타락과 원죄의 교리에 의문을 갖는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대속의 교리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Joseph Bankard (유신진화론자, 신학자 – BioLogos) [^8]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유신 진화론
“성육신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팔레스타인과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사셨을까?.. 대속 교리는 성육신의 이유가 십자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죽기 위한 이유만으로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나는 성육신의 이 관점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사람이 되신게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
나의 관점이 대속 교리와 어떻게 다른가? 첫번째 성육신은 우선적으로 십자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죄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다… 나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다고 주장한다. 화가 난 군중들, 교만한 종교적 지도자들, 비겁한 로마의 군사들이 완전히 무죄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은 예수님이 죽게 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런 나의 관점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호 하며 (즉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용서하실 수 있으시며 그는 피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또 선하심을 보호한다.(즉 하나님은 십자가를 원하지 않으셨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십자가를 계획하신 것이 아니며, 예수님은 죽기위해서 이 땅에 오신게 아니며,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완벽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오셨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까?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을 떠나서 이단 교리 입니다.
만약 어떤 교회가 신천지의 교리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면?
물론 이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신 진화론자들도 있을것 입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신학자의 글을 게재하고 있는 Biologos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 모든분들은 신천지가 이단이란 것에 동의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신천지의 이만희는 재림 예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놓고는 담임 목사님이 “여러분 저는 이 글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시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아 공유합니다.” 라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 제물로 예비해 두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에베소서 1:4>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고, 그 잔을 옮길 수 있으면 옮겨 달라고까지 기도하셨으나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그런데 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과학을 기준삼아 재해석하고 성경을 왜곡한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창세기 1장에서 11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성경 전체가 일관성을 갖습니다
많은분들이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신화다! 라고 생각하지만, 창세기 1장에서 11장은 문자 그대로 이해할 때에만 나머지 성경의 모든 것이 말이 됩니다. 아담이 930살까지 살았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아 185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185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야곱이 파라오 앞에 나아가 지금 130년을 살았는데 우리 조상들보다 짧게 살았다(창 47:9)는 말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 147세에 죽었음을 믿지 못하면 출애굽기에 레위의 후손들이 대략 130년씩 살았다는 것도 믿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믿으시겠습니까? 예수님과 베드로가 물위를 걸으신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현대 과학을 기준으로 이는 말도 안되는 일 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개로 5,000명을 먹이신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눈이 먼 사람들을 고치시고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은요? 예수님 옷에 닿았다고 병이 낳았다는 것도 현대 과학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역사 내내 말씀을 공격해 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도, 유신론자였던 ‘찰스 다윈’이나 창조론 연대기의 바탕이 되는 책 창조론자들을 쓴 ‘로널드 넘버스’가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나서 불가지론자가 된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 대신 거짓에 속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에끌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버린 넘버스처럼 되기를 바라는가?
‘창조론자들’에 대한 최우수 서평은
넘버스가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기원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성경보다 과학을 따르기로 결심한 후에는 어떤 종류의 창조론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9] 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넘버스는 이제 하나님의 존재도 확신할 수 없게 된 불가지론자가 되었습니다.
‘창조론 연대기’는 과연 하나님을 믿고자 진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찰스 다윈, 로널드 넘버스의 길로 인도하고 싶은 것일까요?
유신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이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여긴다는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그것을 마음껏 공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다, 멍청하다 조롱하고 놀려도 하나님 말씀을 끝까지 붙잡는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고린도전서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