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회 다니는 사람이 술 마시면 안되냐는 대화나 질문을 듣게 되어서, 이런 부분에 대해 글을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마시면 안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시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어요?
제가 아는 성당 다니는 분은 교회를 다니면 술 마시면 안되고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술 마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죠? 목사님들은 술 마시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신부님들은 술을 마셔도 되며 스스로도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건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되는지 혹은 하면 안되는지를 정하시는 분은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 것은 꼭 교회나 성당을 다녀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 입니다.
도덕은 선악과를 먹어 선악을 스스로 구별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정하는 것 입니다.
오늘 글에 대해 힌트를 드리자면,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술을 먹어야 된다 말아야 된다가 아닙니다. 이 글은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정말로 안하고 살 수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첫번째 질문은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안하고 살 수 있냐는 것 입니다.
저의 결론은 그럴 수 없다 입니다.
가끔씩 여러 기독교인 분들이 자신의 고민을 저에게 이메일로 주십니다. 가령 “술을 마시는 것은 죄인가요?” 같은 이메일 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이메일은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해도 되나요?”
왜 일까요? 이런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이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제가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으면 안됩니다.” 라고 답을 드리더라도 이 분은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지 않을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에 묻지도 않으시는 거겠죠. 물론 저 역시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회개하고 괴로워 하지만, 내 안의 죄는 또 스물 스물 올라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 하십니다.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7~2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마태복음 5:48>
여러분들이 마음속으로 간음만 안하면 지옥에 안갈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마음으로 음욕을 품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언컨데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인 성경이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술을 마셔도 되느냐 안되느냐 라는 질문 속에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만 지키고 지킬 수 없는 것들은 안지키는 것으로는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 입니다. 그 분은 털 끝 만큼의 죄도 슬퍼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평생 99.9%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했더라도 이 사람에게 0.1%의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이 사람을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지옥에 떨어 집니다.
억울하다구요? 그런게 어딧냐구요?
하나님은 완벽하시기 때문에 완벽만을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야고보서 2:10>
사실 이 것은 상식적인 일 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범죄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든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형법이 규정하는 죄의 반도 않저질렀을 겁니다. 그런데 딱 한 조목, 살인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사람은 범죄자가 되는 것 입니다.
율법은 더더욱 엄격합니다. 율법에는 집행 유예나 정상 참작이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 하나라도 어기면 모두 어기는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술을 마시기 원하지 않으셔서 술을 안마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만약 술 마시는 것이 죄라면, 내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술을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만 해도 술을 마신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술을 마시던 안 마시던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던 안마시던 지옥에 가야 합니다.
술 마시면 된다 안된다는 본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완전하지 않아,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의 삯을 대신 치루셨습니다.
그것을 믿으면 즉 내가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기에 나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것을 믿으면, 예수님이 사셨던 완전한 삶은 내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십니다. 실제 나의 모습은 엉망 진창이라도 하나님은 그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으로 나를 바라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이 자유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만약 제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갑니다. 사람을 미워해도, 물건을 훔쳐도, 그보다 더한 죄를 저질러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성령은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돌아서고 회개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술 마시면 된다 안 된다는 본질이 아닙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진짜로 예수님을 믿고 계시냐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었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술 마시지 말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다만 술 취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에베소서 5:18>
바울은 디모데에게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면하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디모데전서 5:23>
또 우리는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 잔치에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고, 직접 마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고 이 세상을 산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 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누가복음 7:33>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술을 마시라 마시지 말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믿음과 삶,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술을 마시라고 허락하실 수도 있고, 먹지 말라고 금하실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율법이 아닙니다. 다만 취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하게 즐기십시오.
그러나 술을 마시면서 성령께서 찔림을 주시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신다면 마시지 마십시오.
또 여러분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시험이되고 실족이 될 수 있다면 그를 위해서 멈추십시오.
마찬가지 이유로 술 마시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지도 마십시오. 그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십자가 복음이 있는지를 확인하십시오. 그에게 예수님이 계시다면 성령님께서 그를 인도하실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내 삶의 주인이시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것 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술을 마신다 안 마신다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고, 예배하고 기도하면 분명히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영적인 민감함을 주실 것 입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금하는 것들…
물론 모든 인간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행동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내가 어떤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하거니와 하나님께서는 그것과 저것을 다 멸하시리라. 이제 몸은 음행을 위해 있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있으며 주께서는 몸을 위해 계시느니라. <고린도전서 6:12~13>
도대체 무슨 말이냐? 창녀와 결합하는 자는 한 몸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분께서 이르시되, 둘이 한 육체가 되리라,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6:16>
예를 들면 음행 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음행을 해도 구원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나에게 적법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 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성령은 내가 죄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이 나의 죄 때문임을 안다면 나는 죄를 미워할 것 입니다.
여러분 19금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19세 이하는 보면 안되는 영상 혹은 미디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기준이고, 하나님의 기준에는 모든 음란과 폭력과 세상적인 미디어는 죄이고 악 입니다. 보지 마시고 듣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 안의 음란의 죄로 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물론 우리 안의 음란의 죄로 또 다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또 다시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성령께 기도하면 내가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죄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실 것 입니다. 저는 그런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한번 내가 죄의 진창에 빠져서 더러워 졌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로 여러분의 죄가 눈 보다 하얗게 씻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죄 가운데 있던 아담과 하와처럼 숨지 마십시오. 그것은 믿음 없음 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죄사함의 은혜를 안다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될 것 입니다.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친밀한 교제속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걸어 나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