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악행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인가?
최근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데, 현 신학 교수가 자신의 중학생 딸을 때려서 죽이고 시신을 방치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커다란 사건 외에도 종종 뉴스를 보면 목사가 교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더라, 목사가 교회의 돈을 횡령했다더라… 이런 기사들이 나옵니다. 사실 기독교인의 악행은 이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교황들이 자리 다툼을 하며 암투를 벌이고 각종 이권에 개입합니다. 고아원의 시초가 신부와 수녀들이 몰래 아기를 버려서 그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설도 있고, 수도원 아래에 많은 아기 유골들이 발견 되었다는 기사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악행은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 된 기독교인들 특히 지도자들의 행태에 치를 떨고 분노하며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잃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 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일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죄가 없다고 얘기하는가?
저는 우선 성경을 보고 싶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특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죄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봤으면 합니다.
이제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더라. 그들이 주를 알지 못하였더라. <사무엘상 2:12>
사무엘상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소개가 나오는데, 그들이 벨리알의 아들들 즉 악인들이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제사드리는 사람들의 번제 고기를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가로채는 것은 물론이고, 성전에서 섬기는 여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제사장들은 지금으로 치면 목사와 같은 성직자였습니다. 그들은 지금으로 치면, 헌금을 훔치고 교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 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을 전쟁을 통해 엘리 제사장과 두 아들을 같은 날에 죽이십니다. 그들의 악행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다만 어느 시점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심으로 심판하신 것 입니다.
이는 과연 홉니와 비느하스만의 문제였을까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는 각각 기원전 7세기, 5세기에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침입을 받고 멸망 합니다. 그리고 유다의 경우하나님의 예언대로 70년간 바벨론 땅에 있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온 땅은 폐허가 되고 놀랄 일이 되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빌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 25:11>
메대 사람들의 씨에 속한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사람들의 영토를 다스릴 왕으로 세워진 첫 해 곧 그의 통치 제일년에 나 다니엘이 책들을 통하여 주의 말씀이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사 알려 주신 그 햇수를 깨닫되 곧 그분께서 예루살렘이 황폐한 가운데 칠십 년을 채우시리라는 것을 깨달으니라. <다니엘 9:1~2>
왜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 시키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그 땅에 원래 살던 원주민들을 따라 우상숭배 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우상 숭배는 그냥 신상에 다 절하고 마는 수준이 아니였습니다.
당시의 우상숭배는 자기의 자식을 불로 태워 몰렉 신에게 바치거나 성전 창녀들과 음란한 성관계를 갖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런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그로 인해 결국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게됩니다.
재밋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 일을 알고 계셨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쫓겨가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할 불평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너는 네 조상들과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자기들이 가서 함께 거하게 될 자들의 그 땅에서 일어나 그 땅의 타국인들의 신들을 따라 음행의 길로 가며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깨뜨리리라. 그리하면 그 날에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올라 내가 그들을 버리고 내 얼굴을 그들에게 숨길 터인즉 그들이 삼켜지며 그들에게 많은 재앙과 고난이 닥치리니 그러므로 그 날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들이 우리에게 닥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리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저지른 모든 악행으로 인하여 내가 그 날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신명기 31:16~18>
그러므로 성도의 악행은 성경이 얘기하는 바와 모순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처참한 현실을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는것, 즉 이스라엘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다면, 기독교인들이던 아니던 죄를 짓지 않고 잘 살았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약간 관점을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칭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사람들이 칭찬하는 사람들
여러분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돈을 버는대로 헌금하고, 성금을 기부하고, 매일 말씀을 읽으며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를까요? 아마도 존경할 만한 크리스챤, 안티들도 인정하는 사람, 롤모델, 선한 사마리아인 이라고 부르며 칭찬할 것 입니다. 당신이야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바리새인이라고 부릅니다. 바리새인들은 적어도 사람들의 눈에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며 율법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정한 인간의 기준에 거룩한 여러 행위들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왕이라던가 높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악한 일들을 행할 때, 목숨을 걸고 그 행위에 대해 반대하며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말씀을 읽고 율법이 정한 음식을 먹고, 기도하며, 율법이 정한대로 헌금하고 구제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바리새인 때의 행위를 회상하며 흠이 없다고 표현했을 정도 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설을 날리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저주 받은 동물이며, 자신을 뱀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가장 심한 욕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즉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흠 없고 도덕적이고 완벽하지만 그 속은 더럽고 음란하고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 입니다.
인간 기준의 선악과 하나님 기준의 선악
하나님의 도덕 기준은 인간의 그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도덕 기준은 완벽하며 어떠한 작은 흠도 작은 죄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99개의 죄를 지은 사람과 1개의 죄를 지은 사람이 동일한 죄인이며, 그 둘 다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1점도, 50점도 99점도 없고 단지 완벽한 100점과 흠이 있는 0점만 있을 뿐 입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야고보서 2:10>
이는 오늘 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써 우리가 성인이라고 추앙하는 가령 인도의 간디나 테레사 수녀 또는 여러분이 존경하는 누구라도 죄인이며 그 사람 자체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밖에 없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기준이 더 우월하며 누구에게 권위가 있습니까? 나의 기준과 나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 중요할 뿐 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념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연쇄 살인을 저지른 희대의 살인자와 나를 동일한 0점, 죄인,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자로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분명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와 수가성의 여인
요한복음에 보시면 3장에는 최고의 바리새인이자 유대인 랍비 니고데모가 나오고 4장에는 이름도 없는 남편을 5명이나 갈아치우고도 세상의 목마름에 허덕이는 당시의 개취급 당했던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왕따 수가성의 여인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이 둘이 연달아 나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고의 랍비, 최고의 가문, 가장 존경 받는 부자, 당시 최고로 여겨지는 헬라 교육을 받으며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니고데모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는 사람이며, 개 같은 사마라아인 가운데서도 왕따를 당해서 정오에 홀로 물을 길으러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수가성의 여인도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구라도 교회가 타락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요? 목사가 저런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하나님의 거룩하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 입니다.
나의 악행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되나요?
저는 기독교인의 악행이나 범죄를 옹호하거나 조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그런 기사나 소식들을 접하게 될때면 마음이 많이 괴롭고 아픕니다. 또 기독교인으로써 안타깝고 슬픔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성경에 비춰 봤을때, 저는 저의 안에 똑같은 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모르고 돈이 많았으며, 악이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면, 저는 누구보다도 더 음란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그런 환경 가운데 있지 않았고, 그럴 능력이 없었고,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인 것 입니다. 또 내 안에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고 싶었기에 나의 속에 있는 악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들 몰래 보이지 않는 악행을 저질렀을 뿐 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저와 같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으며, 또 나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보며, 깨닫습니다.
“나를 보면 지옥인데, 예수님 덕분에 천국에 가는구나…”
만약 교회의 돈을 훔친 목사의 죄악이 하나님이 없는 증거가 되어야한다면, 나의 죄악 역시 하나님이 없는 증거가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죄악 역시 하나님이 없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못되서 하나님이 없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며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요.
그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나의 악행은 그리고 인간이 죄를 지을수 밖에 없다는 현실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롭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성을 아시고 창세 전부터 예수님을 예비해주시고, 보내주셨습니다.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에베소서 1:4>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악한 범죄자, 예수님의 옆에 달린 강도 역시도 그의 부탁과 믿음을 통해 구원을 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 강도보다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인류가 지는 모든 죄는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나보다 도덕적으로 잘못 산 사람들이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역자를 마귀 취급하며 너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임한다고 화를 내며 교회를 떠나야 할까요? 그들의 예를 들며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며 가짜이고 거짓 선지자라고 우리와 분리시키며 그 순간을 모면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들의 죄로 인해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자비와 긍휼을 구하고 회개해야 할까요?
성경을 보며 다른 사람들을 비춰야 할까요? 아니면 나를 비춰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을 나누며 마치고 싶습니다.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