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신론의 관점에서는 노예 제도를 도덕적 악으로 주장할 수 있나?
우선 아주 간단히 설명드리고 싶은 부분은, 만약 성경의 노예 제도를 비판하는 분이 무신론/진화론자 시라면, 노예 제도를 비판할 어떠한 객관적인 도덕적 근거를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은 무작위의 변이와 자연 선택을 통해서 진화했고, 그 뜻은 만약 최초의 생명에서 진화가 다시 진행이 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작위로 생겨난 인간이 생각하는 도덕적 잣대가 어떻게 객관적이란 것입니까? 또 오바마가 생각하는 도덕, 히틀러가 생각하는 도덕, 노자가 생각하는 도덕, 또 내가 생각하는 도덕 중 무엇이 객관적인 기준이 됩니까? 무신론의 세계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악인데 소나 돼지나 실험용 쥐를 죽이는 것은 왜 악이 아닙니까? 만약 100만명의 사람이 70억 인구를 죽이고 생존한 모두가 70억에 대한 학살을 도덕적 선으로 인정하고 동의한다면 70억명에 대한 학살은 도덕적 선이 맞습니까? 70억명에 대한 학살이 도덕적 선이라면 노예 제도를 왜 악으로 규정해야 합니까? 이 논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과 글 아래에 드린 링크들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율법이 얘기하는 노예(?) 제도
성경에는 근대에 있었던 노예 제도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잔학한 노예 제도를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노예란 자신의 자유나 권리를 완전히 억압 당하여 다른 사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을 얘기합니다. 많은 분들이 노예 제도를 얘기하면서 18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노예 제도를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나라는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들을 납치해 노예 시장에 팔아서 이득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훔쳐서 팔거나 자기 손에 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6>
오히려 인신 매매나 납치 등으로 팔아 넘기는 사람들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명했습니다. 이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제도가 노예 제도가 아님을 강력히 증거하는 구절입니다.
그럼에도 안티 분들이 문제를 삼는 성경 구절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막대기로 쳐서 자기 손 밑에서 죽게 하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루나 이틀을 살아 있으면 형벌을 면하리니 이는 그 종이 그 사람의 재산이기 때문이니라. <출애굽기 21:20~21>
종을 때려서 하루나 이틀을 살아 있으면 형벌을 면하게 되는 법을 누가 기뻐했을까?
모세의 율법은 주인이 종을 죽이면 형벌을 받지만 하루나 이틀 살아있다가 죽으면 형벌을 면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죠. 이법이 발표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주인들일까요? 아니면 종들일까요?
당연히 종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기 이전에 그들은 이집트 파라오 왕의 노예로써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대접은 어떤 것이었죠? 인간 이하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배운 것은 나에게 종이 생긴다면 파라오 왕처럼 하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노예는 그냥 물건에 불과 했습니다. 주인의 소유이며 재산이었습니다. 마음껏 부리다가 마음에 안들면 죽이면 되었고, 동물처럼 버리면 끝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이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을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종에 대해 이런 개념을 가지고 살아온 그들에게 종을 때려서 그 종이 죽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종을 위한 인권법이었으며, 종들을 죽이는 것이 형벌의 대상이라는 것은 주인들에게도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 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원전 1,500년의 상황을 지금의 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부당하며 비합리적인 생각 입니다.
왜 종이 되었는가?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왜 종이 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이자를 받으려고 그에게 돈을 주지 말고 이득을 얻으려고 네 양식을 빌려 주지 말라… 네 옆에 거하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팔리거든 너는 그를 강제하여 노예처럼 섬기게 하지 말고 <레위기 25:37 & 39>
이스라엘에서 종이된 사람들은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겨 돈을 갚지 못한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렸으면 그것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으로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돈을 갚는 대신 채권자나 혹은 채권자에게 돈을 갚아줄 다른 사람의 집에 종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방안이죠.
그렇다고 그 히브리 종을 영원히 부리는 것도 아닙니다.
네 형제 곧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려서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너는 일곱째 해에 그를 놓아주어 너를 떠나서 자유롭게 가게 할 것이요, 네가 그를 보내어 너를 떠나서 자유롭게 할 때에 그가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떼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즙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실 때에 주신 것 중에서 그에게 줄지니라. <신명기 15:12~14>
그 종이 얼마를 빚졋던 6년을 섬겼으면 7번째 해에는 그 종을 자유롭게 풀어줘야 하며, 그냥 몸만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퇴직금 까지 줘서 사회에 적응을 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 성경에서 얘기하는 종에 대한 규례 입니다.
과연 이것이 안티분들이 얘기하는 것 같은 노예 제도인가요? 누군가를 납치해서 인권도 자유도 없이 죽도록 부려도 되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그런 노예 제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입니다.
3. 성경이 왜 종에 대한 규례를 주었을까?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성경은 도덕책도, 역사책도, 과학책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도덕에 대한 규례, 역사에 대한 서술,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발견하기 훨씬 이전에 기록된 과학에 대한 사실들이 있지만, 성경은 오직 유일한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한 책입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알려주신 바로 다음 첫번째 규례로 종에 대한 규례를 알려 주십니다. 도대체 수많은 도덕과 법 중에 뭐가 급하다고 종에 대한 규례를 처음 주셨던 걸까요?
위에 설명했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이 종이 되는 경우는 재정적인 문제가 생겨 빚이 늘어나고 결국 갚을수 없게 되었을 때 입니다. 그러면 그 빚 대신에 자기의 몸을 종으로 파는 것인데, 성경은 그 빚이 얼마이던간에 상관이 없이 7년째가 되면 그 종을 풀어주고 후하게 재산을 나눠 주라고 명령합니다.
이 이야기는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빚진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종으로써 이 세상을 살지만 결국 하나님의 자비로 자유하게 될 수 있음을 모형하고 있습니다.
7년이 되어 주인이 그 종을 풀어 줄 때에 종은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자유를 선택해서 나가거나 혹은 주인이 좋아서 영원히 주인과 함께 사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그 종의 귀를 뚫어서 영원한 종으로 삼는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가족처럼 살수 있고 그 종은 상속권도 함께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상속자니라. <갈라디아서 4:5~7>
종이었던 나를 아들로 입양하시는 하나님
이는 우리의 구원의 모델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리를 같이 물려 받게 되는 것이죠.
율법에 주어진 종에 대한 규례는 그 규례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던 것이 아니고 그 규례를 제대로 지키며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때 그 원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예표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히 바리새인들은 그 명령을 마치 행위로써 지켜내기만하는 되는 법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지켜내려고만 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5:39~40>
실제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이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 유다가 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한 것을 책망하시자 시드기야 왕이 급하게 명령하여 종들을 다 풀어줍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바벨론 군사들을 다 물려 주십니다. 그렇게 급한 상황이 해결되자 이스라엘의 권력가들은 자유롭게 풀어줬던 종들을 다시 다 잡아 들입니다.
인간은 이 정도로 비열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얻을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 오셔서 하나님의 종으로써의 완벽한 삶을 살고 가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내가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복음 5:30>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의 삶을 나의 것으로 삼아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뿐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에 종에 대한 규례를 세우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