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는 칠십 년을 살며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세기 11:26>
데라의 생애는 이백오 년이었으며 데라가 하란에서 죽으니라. <창세기 11:32>
이에 그가 갈대아 사람들의 땅에서 나와 하란에 거하였고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그분께서 그를 거기에서 지금 너희가 거하고 있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사도 행전 7:4>
이처럼 아브람이 주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떠나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4>
여러분은 이 네 구절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할 만한 구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데라가 아브라함을 70세에 낳았고, 아브라함이 데라가 죽고나서 하란에서 떠났다면 데라가 205세에 죽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적어도 135세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떠났을 때 그의 나이가 75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를 성경의 모순이라고 말하며 성경이 정확하지 않은 근거로 제시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데라는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순서로 아들을 낳았는가?
분명히 이해할만한 의문이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확인할 수 없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아브라함이 데라의 장남이었는지의 여부 입니다.
아브라함이 데라의 장남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이름이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순서대로 기록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을 잘 모르고 하는 주장입니다.
성경은 꼭 태어난 순서대로 사람 이름을 기록하지 않으며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를 보십시오. 다니엘서 5장에 벨사살 왕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지만 다니엘서 7장은 벨사살 왕 제 1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이삭의 자식들이 야곱과 에서를 보십시오.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는데 라반은 시리아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창세기 28:5>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노라. 그러나 야곱과 그의 자손은 이집트로 내려갔으므로 <여호수아 24:4>
분명히 성경은 에서가 야곱 보다 먼저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창세기 28장 5절, 여호수아 24장 4절, 그리고 신약이 히브리서 11장 20절에 까지 에서와 야곱이 아닌 야곱과 에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이름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맏아들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데라의 장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나홀 그리고 하란 중에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요?
성경이 이를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하란이 맏아들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아브람과 나홀이 아내를 취하였는데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이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더라. 그녀는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창세기 11:29>
아마도 아브람과 나홀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홀은 자기 형인 하란의 딸 즉 조카와 결혼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하란이 아브람과 나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하란이 결혼도 일찍하고 자식도 일찍 갖었기 때문에 자신의 동생과 딸을 결혼 시킬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란과 밀가가 결혼했을 당시 하란은 이미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아브람과 함께 하란 땅에서 떠난 롯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란의 아들인 롯이 아브라함보다는 나이가 어렸을지 모르나 아브라함을 따라 갔을때에 적어도 3~40세는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장은 이렇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데라는 70세에 하란을 낳고 그 이후에 (언제인지 기록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과 나홀을 낳았다. 그러므로 데라가 아브라함을 130살이 넘어서 낳았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성경에는 모순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성경 번역자의 아쉬운 선입견
사족을 하나 달고 싶습니다. 이 구절들을 찾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그 것은 일부 성경 번역본이 나홀을 아브라함의 동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브두엘은 리브가의 아버지이다. 이 여덟 형제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과 그 아내 밀가 사이에서 태어났다. <창세기 22:23 – 새번역 성경>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창세기 24:15 – 개역 개정>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어디에도 나홀이 아브라함의 동생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단지 나홀이 아브라함의 형제 (Brother)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영어에 형과 동생이라는 구분이 없는 형제(Brother)란 단어가 있듯이 나홀의 형제라는 구절에 쓰인 단어는 히브리어 아히(אחי) 즉 형제란 의미 입니다.
이는 아마도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라는 순서에 근거해서 번역자가 주관적으로 원어에 없는 의역을 한 것인것 같습니다.
가끔식 성경 번역자가 원어에 없지만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성경 번역에 넣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어의 성경은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제2, 제3 이사야 설을 이미 기정 사실화 해놓고 성경에 있지 않은 말들을 그대로 넣어 버립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비록 포로 생활의 어려운 처지에 있으지라도 이사실을 잊지 말아라. 너희는 내가 보호하는 백성이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여 나를 섬기도록 선택한 백성이다. 이스라엘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결코 잊지 않겠다. <이사야 44:21 – 현대어 성경>
오 야곱 곧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니 이것들을 기억하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오 이스라엘아, 너는 내게서 잊히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4:21 – 킹제임스 흠정역>
이사야는 BC 8세기의 남유다 선지자로써 남유다는 이 보다 2세기 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현대어 성경은 이 성경의 저자가 이사야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원어에 없는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경홀이 여김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눈을 밝게 비춰줄 등불은 오직 말씀 그리고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들을 지키리라 맹세하였사오니 내가 그것을 이행하리이다. 내가 심히 고난을 당하오니, 오 주여, 주의 말씀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시편 119:105~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