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꽤 많은 무신론자들과 여러가지로 마주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며 느끼는 안타까운점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체 왜곡된 복음을 비판하며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제대로 된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선택이니 그래도 조금 덜 안타까울텐데, 제대로 된 복음이나 기독교 교리를 듣지 못해서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것 같습니다.
이는 사실 기독교 인들의 크나큰 죄악이며,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전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고 생각 합니다. 저를 포함한 기독교인이 성경대로 믿지 못하고, 성경을 무시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진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수 없었고,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진짜 기독교’가 무엇인지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복음이란 Good News 즉 기쁜 소식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것 보다, 로또 맞은 것 보다, 승진 한것 보다 더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 창조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써 창조 되었습니다. 절대 의존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을 붙드시고 인정을 하실때에야 인간은 흙덩이가 아닌 존재가 되고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버려져서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 <요한 복음 15:5~6>
원래 인간은 자아가 하나님과 연합이 되고 하나님이 장악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끌고 가시는 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장악하여 끌고 가시는 가운데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만납니다.
가령 예를들면, 돈, 일, 가족, 건강, 명예 등등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연합이 끊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에서 떠나가게 되면,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존재가 되고 가치가 되어야 하는 인간들이 다른 것들로 나의 자아를 형성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의 힘이 되는 것들을 나와 동일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로 정의 되는 것들을 하나 하나 끊어 내고 그 자리를 다시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을 성도들의 신앙 생활 이라고 얘기 합니다.즉 내 자아가 되 버립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이런 것들 마저 없으면 존재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끌어들여 나로 정의 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은 다른 것으로 그 부족을 채우려 합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돈 때문에, 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건강 때문에 사는 존재가 아님에도, 그것이 하나님이 떠나가면서 내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마치 내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 처럼 아프고 고통 스럽습니다. 또 심지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업이 망하면, 자살을 합니다. 왜냐하면 내 사업을 내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사업이 사라지면 살아 있을 존재 가치를 못느끼기 때문인거죠. 또 실직을 해서 일이 사라지면 사람이 무기력해 집니다. 또 가족이 멀어지거나 먼저 떠나면 삶에 의욕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못 견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힘이고 가치이며 행복이라고 규정하고 정의해 놓은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정해 놓고, 저런 것을 많이 얻은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저런 것들이 많이 없거나 부족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해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이 있으며,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건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면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진정한 나의 가치는 세상의 것으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래 인간은 저런 것을 힘으로 삼아 나를 규정하도록 창조된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을 하신 성도들에게 어떤 일을 하시냐면 저런 것들이 다 사라지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를 삶을 통해 물어보시는게 성도의 신앙 생활 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떻죠? 거꾸로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즉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해서 돈과, 직장과, 건강과, 가족과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게 오늘 날의 기독교 입니다. 즉 ‘진짜 기독교’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죠. 완전한 착각 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아니 모든 것을 하나님이 없애셔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신앙 생활 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없을때 돈과 명예 가족과 건강, 친구와 권력이 나의 힘이고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참 행복이군요?” 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 겠습니까? 예전에 방송에 선풍기 아줌마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젊었을때 정말 아름다운 미모를 갖고 있던 이 분이 미모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성형 수술을 계속 하다가 그 부작용으로 얼굴이 선풍기 같이 커진 안타까운 일이였는데, 불법으로 시술 받은 콩기름, 공업용 기름이 그대로 있는게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듯이 우리의 삶 안에 불법적으로 주입된 돈에 대한 욕심, 건강에 대한 욕심, 가족에 대한 욕심 등 나의 자아를 떼어 내려면, 그 욕심들과 붙어 있는 살, 피, 뼈를 같이 잘라 내셔야 하고, 성경은 그것을 고난 혹은 환란 이라고 부릅니다.
‘진짜 기독교’에 속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환란을 통과 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가 넘치는 기쁨으로 또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4:12~13>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할때에 오는 환란과 고난 가령 사업이 망하고, 병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등의 안좋은 일들은 하나님이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연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이며 하나님은 나를 돕는 조력자 정도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고 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인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흙덩이 밖에 안되었을때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거야!”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돈, 명예, 인맥, 건강, 가족, 외모, 스펙 등을 힘삼아, 하나님 삼아 살때에 이세상을 살려고 할때에 하나님은 “안되! 그것이 마지막 때에 불에 탈때에 너희들도 같이 탄다! 내가 너희의 힘이 되어야 해!” 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 전부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하루 교회에 빠지면 100억이 생기는 일이 있다고 할때에 우리 중 몇명이나 100억을 포기하고 주일날 하나님을 예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주님을 택할 수 없다면 나에게 하나님이 예배의 대상인 겁니까? 돈이 예배의 대상인겁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아직도 돈과 명예와 건강과 세상의 자랑들이 나의 신이며 신앙 생활이란 아프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끊어내시는 것을 신앙 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그것이 역사의 유일한 존재 목적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타락하기 이전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을 통하여 돈이나, 건강, 직업과, 명예, 가족등을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랬을때 내가 예전에 내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님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돈이나 명예, 건강 이런것들을 떠난것 같고, 그런것에 구애받지 않는것 같고, 하나님을 주인 삼아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아직도 내 자아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서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떠난 것 같은 겉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과 심지어 하나님 마저도 속여 좋은 평가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겉으로 봐서는 굉장히 훌륭한 신앙인 같지만 그거야 말로 아주 교활한 마귀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독사의 새끼라는 욕을 먹은 이유 입니다. 나의 자아를 포기하지 못하고 검소한 삶이나 청렴한 삶, 거룩해 보이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려 하고 좋은 평가를 얻는것…
그래서 나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기독교 이단 및 타 종교에 착해보이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속은 썩어있고 가능성이 없는 죄수인데, 겉으로는 온갖 착한척을 다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사람들을 보면, 정말 착합니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항상 전도를 합니다. 미국에서는 몰몬 교인과는 계약서도 쓰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법 없이도 살 수 있단 말이죠.
하나님은 인간 기준의 선행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착한일에 관심이 있으신게 아닙니다. 그 중심을 보시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웃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때 옆에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두 강도는 전체 인류의 두 부류를 모형하는 것인데, 두 강도 모두 태어나서 강도짓을 하다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부인하다가 한 강도는 “니가 하나님이면 나를 구원하라!”고 하며 끝까지 자기가 주인공에 되어서 죽지만 다른 강도는 마지막에 내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것을 털어서 살아왔는데, 그것이 진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음을 자각하고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에 가셔서 저를 기억해 주실수 있어요?” 라고 아무 공로 없이 아무 선한일 없이 묻고는 예수님의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무런 행위도 자격도 없지만 면목없이 예수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하는 것을 믿음 이라고 부릅니다.
올바른 신앙은 자신의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 입니다.
올바른 신앙이란 내가 착한일을 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의를 쌓아야지…. 라며 선한일로 자기의 영광과 가치를 챙겨 칭찬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죄송하지만, 저는 한것도 없고, 자격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지만 저 좀 꼭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 주세요!” 라고 무릎을 꿇는것이 회개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디모데전서 1:15>
하나님은 창세전에 선택한 자를 그렇게 놔두시지 않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가 네 손을 내밀 터인즉 다른 사람이 네게 띠를 띠워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가리라, 하시니라. <요한 복음 21:18>
우리는 그러므로 세상을 살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 원하지 않는 마음을 얻으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 세상을 살수 없구나를 깨닫는게 진정한 신앙 생활 인 것입니다. 성도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성도가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이 같이 지옥에 가야 하는데 그럴수는 없기에 하나님이 그의 전능하심으로 성도의 자아를 이 세상에서 끊어 내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큰소리로 외치십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 계시록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