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눈이 열려 그들이 벌거 벗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설명을 드리겠지만 성경에는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예표라는 장치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커다란 구도를 살펴보면 인간의 세계에는 율법주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 것이며, 그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을 것이고 누가 최후의 승리를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성경 내내 펼쳐져 있습니다.
왜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을까?
왜 하필 아담과 하와는 사과나무도 아니고, 단풍나무도 아니고 무화과 나무로 잎을 해서 앞치마를 만들었을까요? 또 왜 성경은 그것을 중요하다고 기록을 해 놓았을까요? 성경에서 무화과 나무는 대부분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을 대표합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만든 무화과 나무 앞치마는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신의 죄성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율법 즉 도덕과 윤리를 사용할 것을 나타냅니다. 즉 나의 착한 행위 즉 봉사, 섬김, 구제, 목숨을 내놓은 희생이 나의 부끄러움을 가리고 나를 의롭게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매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그들이 그 날 서늘한 때에 동산에서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 앞을 떠나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 <창세기 3:8~3:9>
오늘날의 세태는 창세기 3:8~9의 말씀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저는 많은 믿지 않는 분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성경의 통찰을 놀랍게 체험합니다.
착하게 산 사람들은 천국에 갑니까?
아마도 비기독교인 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독교의 교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일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놀라운 은혜의 복음을 인간들은 싫어하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이런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착하게 산 어떤 이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가는 것과 악하게 산 어떤 이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리고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이런 불공평한 신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런 신은 없습니다.”
이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는 두 가지의 가정이 있는데, 첫번째는 “착하게 산”이라는 기준 입니다. 누가 착하게 산 것이고 누가 못되게 산 것인가요? 돌고래에게는 그런 기준이 없습니다. 강아지에게도 그런 기준이 없죠. 오직 선악과를 먹은 인간만이 스스로 기준을 세워서 이 사람은 착한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렇게 선악 분별을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피해 숨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그리고는 인간은 할 수 있다고 다같이 힘을 합쳐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며 그런 세상을 위해서 일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완벽하게 산 사람은 없으며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이 세상에 누가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최근 나름 검찰 내에서 강직하고 능력있다고 평가를 얻은 한 지검장이 술을 마시고 음란 행위를 하다가 CCTV에 찍혀서 체포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법무부 차관은 별장에서 여성들과 성매매를 했다는 혐의로 차관직을 내려 놓고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 시의원은 자신에게 빚독촉을 하는 사람을 죽이도록 교사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원래 더럽다구요?
종교인들은 깨끗할까요? 많은 분들이 개독교라고 욕하는 교회에 목사들 중에도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본인의 사명은 잊은체 세력 불리기와 성경과 맞지 않는 헌금에 대한 설교 혹은 강요를 합니다.
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왓장 팔아서 밥 먹고 삽니다. 또 사람들의 마음에 거짓 위로나 하며 유명해 지려고 하지, 진짜 불교의 가르침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카톨릭은 어떻죠? 최근 교황이 신부와 수녀들의 동성애, 아동 성추행, 마피아와의 연계를 끊는 개혁 의지를 보였다는 기사를 보셨을 것입니다. 교회사를 봐도 신부와 수녀들의 성관계로 낙태를 하거나 고아원에 보내는 악을 저지르면서도 겉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가면 쓰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스스럼 없이 증오를 보이며 알라를 위해서는 테러도 불사합니다.
인간의 도덕은 이런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글을 읽는 분들 중 어느 누구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주장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되돌아 보시고, 내 안에 있는 욕망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내 안에 있는 죄성을 그대로 펼쳐보여도 되는 자리에 가게 되면 100% 위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더럽고 역겨운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악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 가령 예를들면 히틀러, 김일성등의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자유함을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통해 나의 즐거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단지 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을 뿐이지요.
인간은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봐 죄를 짓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으로 즉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도덕과 윤리를 갖고 인간의 죄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문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을 보면, 그건 전혀 불가능 합니다. 성경은 CCTV가 있어서 훔치지 못하고 감옥에 갈까봐 죄를 짓지 않는 것을 무죄하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TV를 보면서 춤을 추는 걸그룹을 보며 음욕을 품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살인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메일을 나눈 꽤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가 나지 않고, 영원히 들킬 일이 없다면, 내가 미워하는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얘기합니다. 이게 인간의 도덕입니다. 이 것이 원죄의 증거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불가능하며, 인간은 쓰레기 같습니다.
무화과 나뭇잎과 가죽옷의 차이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위해서 스스로 최초의 제사를 지냅니다. 동물을 아마도 양을 잡아 죽인 것이지요. 인간의 죄로 인해 양이 희생되어야 했고, 그 양의 가죽으로 인간의 부끄러움을 제대로 가릴 수 있는 ‘가죽옷’을 입히십니다.하나님은 이런 인간에게 희생양을 통해 그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게 하셨고, 그 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무화과 나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말라버리면 또 다른 무화과 나무가지로 가려야 합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가려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가죽옷은 튼튼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곳을 완전히 가릴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선한 행위로는 나의 죄악을 완전히 감출수 없습니다. 내가 착하게 행동하면 나를 선하다고 인정해 줄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을 심지어는 나 자신도 속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그게 바리새인들이 한 일이며, 그들은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죄악이 드러나고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죽옷 즉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은 그 죄가 가려지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주 예수로 옷을 입으십시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하여 의로 옷 입으라고 얘기합니다.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로마서 13:14>
주의 제사장들은 의로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기뻐 외치게 하옵소서. <시편 132:9>
내가 주를 크게 기뻐하며 내 혼이 내 하나님을 기뻐하리니 이는 마치 신랑이 장식으로 자기를 꾸미고 신부가 보석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 같이 그분께서 구원의 옷으로 나를 입히시고 의의 겉옷으로 나를 덮으셨기 때문이라. <이사야 61:10>
또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4:24>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나니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 <골로새서 3:9~3:10>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 계시록 3:5>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볼지니라. <요한 계시록 3:18>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내가 그에게 이르되, 장로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와 자기 예복을 씻고 어린양의 피로 그것을 희게 한 자들이니라. <요한 계시록 7:9~7:14>
이 옷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와 부끄러움을 완벽하게 가릴 수 있는 가죽옷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예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