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은 성경을 묵상하며 성경이 소개하는 인물에 나를 적용시키고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내 행동을 고치려고 합니다. 빌레몬서를 읽으며 나는 이 서신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인지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빌레몬서는 아마 신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서신 일 것입니다. 유다서와 함께 1장 밖에 되지 않는 유이한 책이고 그만큼 내용이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하지만 빌레몬서는 굉장히 은혜롭고 의미있는 서신입니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빌레몬의 종이었지만 그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간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심지어 종이 아닌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지금은 그런 의미가 많이 퇴색 되었지만 1세기만해도 종과 주인의 위치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인권이란 개념도 없었던 그 시대에 종은 말 그대로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그런 종이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을 갔다는 것은 당시 세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악행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간청을 가장한 반 명령을 내립니다.
우리는 빌레몬서가 단순히 나를 배신하거나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어떤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은 나를 빌레몬에 투영하여 나에게 손해를 끼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묵상을 마칩니다. 물론 빌레몬서는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빌레몬서를 묵상하는 사람은 나를 빌레몬에 투영하기 전에 그 보다 더 한걸음을 나아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빌레몬이 아니라 오네시모라는 생각입니다.
오네시모인 나
나는 주인인 하나님을 배신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고자 했으며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내 삶의 왕으로 군림하고 싶어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죄인으로써 나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에게서 도망가고 싶어했습니다.
자신의 주인을 배반하고 도망간 죄인인 오네시모… 나와 오네시모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습니다. 나는 1차적으로 이 책에서 용서를 해야하는 빌레몬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야 하는 오네시모 입니다.
오네시모는 어떻게 용서를 받게 됩니까? 감옥에서 바울을 만났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를 따르게 되었고 바울이 그를 옥중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 이라고 칭할 정도로 신뢰받는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감옥에 가서 모든 처벌을 받으셨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나님께 용서를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중재자가 되어 오네시모가 용서 받을수 있도록 한것처럼 예수님도 중재자가 되어 원수였던 하나님과 내 사이를 이었고 용서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빌레몬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빌레몬과 오네시모 그리고 나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단순히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종이 아닌 형제로써 그를 인정하라고 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배반자이자 반역자인 우리를 형제요 친구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5:15>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이며 친구입니다. 그것이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빌레몬인 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빌레몬 역시 바울에게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마태복음 6:12>
그리고 이 근거는 용서받을 자격없지만 용서를 받은 내가 다른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근거가 됩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쳤던 누군가를,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누군가를 나는 용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더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아 형벌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자기 형제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시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33>
저는 이 구절에서 “마음으로부터”라는 표현에 집중해 보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명령하거나 억지로 용서를 강요하지 않고 자원하기를 바랬던 것처럼 하나님도 체면 때문에 용서하는 척을 하는 것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솔직히 인간의 입장에서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냥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더 큰 용서를 받았음을 이해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인정했을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신에게 진 빚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나님에게 진 빚을 마음에 품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네시모 였었던 빌레몬
글을 마칩니다.
나는 빌레몬서에서 오네시모 같은 사람입니다. 오네시모는 큰 죄를 지었지만 감옥에 갇힌 누군가를 통해 거듭나게 되엇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며 나에게 큰 화가 나있을 주인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어떻게 오네시모는 이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중재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진노하실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만든 전능한 창조주가 특히 나를 이 세상에서도 죽일 권리가 있고 지옥에 넣을 권리가 있는 분이 나의 원수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조폭이 나를 죽이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중재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안에서 그 사랑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오네시모가 될 수 있습니다. 오네시모의 이름의 의미는 “쓸모 있는” 입니다.
그리고 한때 오네시모 같았던 즉 죄인이었다가 커다란 용서를 받았음을 이해하게 된 빌레몬은 그 용서에 힘입어 자신도 용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 용서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될 때 빌레몬이 될 수 있습니다. 빌레몬의 이름의 의미는 “사랑이 넘치는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사도 바울이 인내심을 갖고 빌레몬에게 강제로 무언가를 시키지 않음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으시는 온유하신 하나님의 성품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예수님의 성품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시며 우리에게 강제로 무언가를 하게 만드실 수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힘으로 문을 열지 않으십니다. 강제로 분명히 할 수 있지만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십니다. 그 분은 겸손하시며 온유하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 때 까지 얼마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할것 같은 사람, 분노, 증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으로는 용서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강제로 용서를 명령하시지 않으며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이 생길때까지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조급해 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우리가 계속해서 내가 얼마나 죄인된 사람인지를, 내가 어떤 용서를 받았는지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어떤 빚을 졌는지 깊게 묵상하십시오. 이 세상에 나에게 그 보다 더 큰 빚을 진 사람은 없습니다. 100억원의 빚을 졌다 탕감받은 사람은 10만원 빚을 진 사람을 쉽게 용서하고 그 빚을 탕감해 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용서를 하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간청하고 명령하실수 있는 근거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강력한 요청은 내가 그만큼 확실하게 용서 받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서의 핵심은 ‘내가 용서를 해줘야한다’가 아니라 ‘내가 용서를 받았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