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외의 역사서가 얘기하는 예수님 그리고 신약 성경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증거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면 안된다고 얘기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은 역사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주장하는 거짓일 뿐, 역사 학계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조선왕조 실록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그 주장을 인정할까요?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성경’이란 한권의 책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한 편지나 예언서, 기록들이 하나 하나 모여서 성경이 된 것입니다. 즉 성경은 서로 독립적인 관점으로 당시의 상황과 사건들을 기록한 문서들이 모여 하나로 묶여진 책입니다. 다시말해 성경은 특히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도 바울이나 사도 야고보의 서신서는 귀한 역사 자료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성경을 믿지 못하며 그 중 일부는 예수님의 실존 여부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10년 전쯤 운전을 하며 시사 라디오 토크쇼를 듣고 있었는데, 라디오 호스트가 자신은 예수님의 실존 여부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는 상당히 의아하고 무지한 주장인데, 사실상 예수님의 실존 여부를 부정하는 역사학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심지어 최근 인터넷에서는 무신론자들이나 기독교에 비판적인 언론들 마저도 예수님의 실존 여부에 대한 글들을 쓸 정도로 그 문제는 상식적인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불가지론자이자 예수님 왜곡하기(Misquoting Jesus)라는 책으로 유명한 성서 비평가 Bart Ehrman은 예수님이 당대의 로마 기록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자료들이 그의 존재를 지지한다고 주장합니다. [^1] 이 외에도 대부분의 성서 학자들은 기독교인이건 불신자이건 상관없이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예수 신화 이론’이 부정당했다고 인정합니다. [^2] [^3] [^4]
특히 비기독교인이자 영국의 고전학자 Michael Grant는 “최근 어떤 진지한 학자도 예수의 비역사성을 제기하는 모험을 걸지 않는다. (혹은 아주 적은 학자들) 그들은 훨씬 더 강력하고 훨씬 더 풍부한 그들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지 않았다! ” [^2] 라고 주장합니다.
오늘은 성경외에 역사서, 혹은 고고학적 증거가 제시하는 예수님 그리고 신약 성경의 정확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역사가의 관점과 역사서가 갖는 의미
우선 실제적인 역사 기록을 소개하기 전에 역사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역사가 평가해 줄거야!” 라는 말을 자주 들으실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역사의 객관성을 신뢰하는 표현으로 인정할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최선의 추론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실제로 가볼수 없는 현대인들은 당시에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과 존재하는 유물등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을뿐 입니다. 역사가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하려고 노력했더라도 그들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관점과 감정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을 것 입니다. 또 권력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기록하도록 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역사 기록을 훼손하여 지금의 역사가들이 볼 수 없다면 역사가들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다른 결론을 낼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도 보거나 수정하지 못하게 했던 조선 왕조 실록은 비교적 객관적인 사료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것 입니다. 그럼에도 조선의 역사는 많은 논란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 실록들이 당시에 권력을 쥐고 있던 당파의 시각에서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안중근 의사(義士)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벌써 저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의사(義士)라고 지칭했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식민화에 앞장선 원흉이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예일 대학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훌륭한 정치인이자 헌법학자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입니다. 한 때 일본의 천엔짜리 지폐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화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양측의 역사가는 이 둘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평가를 내릴 것 입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안중근 의사나 이토 히로부미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했다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한국인 역사가도 이토 히로부미가 예일 대학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역사기록
예수님에 대한 역사 기록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이나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인 역사가가 있었는가 하면 굉장히 적대적인 역사가들 역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쓴 역사서가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실존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에게 호의적이였던 대표적인 역사서는 신약에 있는 복음서들 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호의적이던 그렇지 않던 신약 성경에 있는 내용을 확인해주는 성경 외의 역사 기록들을 제시해드리고자 합니다.
탈무드가 기록한 예수님의 기적
성경에는 예수님의 많은 기적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믿기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행했다는 것은 여러 역사서가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탈무드 입니다.
예수가 마법을 행했고 이스라엘을 미혹케 했다. (b. Sanhedrin 43a cf t. Shabbat 11.14; b Shabbat 104b)
유월절 전날 저녁에 나사렛 예수가 달렸다. 처형이 이뤄지기
40일동안 “나사렛 예수가 마술을 행해서 이스라엘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을거야! 그에게 유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서 그를 변호해봐!” 라는 예고가 있었다. 그에게 유리한 증언이 없었기에 유월절 전날 달아서 죽였다. (b. Sanhedrin 43a)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이며 많은 유대인들은 신약 성경을 금서로 정해 자기 자녀들이 읽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것 입니다. 물론 이들은 이를 호의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틴들 하우스의 선임 연구원 David Instone-Brewer는 b. Sanhedrin 43a가 예수님의 실제 기소장에 몇가지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5] 이 기록은 예수님이 유월절 전날에 흑마술(Sorcery)을 행함으로 이스라엘을 미혹했기에 나사렛의 예수를 달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후대 유대인들은 이 기록에 당혹감을 느끼는데, 유월절의 전날! 돌로 치는게 아니라 십자가에 단 것은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술을 행했다는 것은 결국은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실제로 일으켰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돌로 친것처럼 기록함과 동시에 기적을 구약에 금지되어 있는 주술이었다고 폄하 합니다.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안중근 의사가 독립 운동가이냐 테러리스트냐 논란이 될 수 있는것처럼 예수님의 기적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냐 반하는 것이냐에는 다른 관점이 있을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일으키신 것은 양측 모두 인정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다른 역사 기록들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탈무드 만이 아닙니다.
반기독교적인 2세기의 헬라 철학자 셀수스는 자신의 저서 The True Word에서 기독교를 공격했는데, 3세기 교부였던 오리겐이 셀수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쓴 책 Contra Celsum(셀수스에 대항하여)를 보면 셀수스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셀수스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예수는 유대의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접 일해서 먹고 사는 가난한 유대인 여자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모친은 판테라라는 군인과 간음을 했다는 이유로 목수였던 남편에 의해 쫓겨났다.
그래서 남편에 의해 쫓겨나고 불명예스럽게 떠돌아다녔다. 그녀가 예수를 낳았다. 나쁜놈인 예수는 그의 가난때문에 이집트로 일하러 가야했고 거기서 이집트인들이 자랑하는 특별한 (마법) 능력을 얻었다. 그는 이런 능력을 얻은것에 크게 들떠서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런 힘을 사용해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불렀다. [^6]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셀수스가 예수님을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마리아의 남편이 목수였음을 확인해 줍니다. 또 예수님이 요셉의 친자가 아니였고,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었으며, 스스로를 신으로 불렀다는 성경의 내용을 확인해 줍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기록을 남겼지만, 적대적인 자들의 기록을 사용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이제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더라. <마태복음 27:45>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 <마태복음 27:50~51>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날의 흑암
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유대 시간으로 제 6시 부터 제 9시까지 즉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논란이 있을수 밖에 없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기간인 보름달 때에는 일식이 일어나지 않으며 일식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길어봐야 10분 내에는 다시 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에 3시간 동안 어둠이 있다는 것은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 사건도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때의 흑암에 대한 역사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세기의 역사가 탈루스는 52년 트로이 전쟁 이후의 지중해 역사를 3권의 책에 기록했는데, 그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가 쓴 연대기(chronography)에 일부 인용이 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누스는
“온땅이 가장 두려운 어둠에 휩싸였고, 바위들이 지진에 의해 깨져나갔다. 그리고 유대 지방의 많은 곳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탈루스 역사서의 3번째 책에서 이 어두움을 일식이라고 부른다. [^7]
아프리카누스는 또다른 역사학자 플레곤이 기록한 일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플레곤은 디베리우스 황제의 시대 때, 보름에 제 6시에서 9시까지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 [^7]
라고 기록합니다. 또 플레곤의 기록에 대해서는 초대 교부 오리겐도 언급합니다.
“플레곤은 아마도 그의 13번인가 14번 연대기에서 예수님이 미래의 사건을 알 뿐 아니라… 그의 실제 결과가 그의 예언에 부합함을 적었다… ” [^8]
“202번째 올리피아드의 4번째 해에 (AD.33) 엄청난 일식이 일어났고 제 6시(정오)에 밤이 되어, 하늘에서 별이 보일 정도였다. 비시니아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고, 니케아에 많은 것들이 뒤집혔다.” [^9]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던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일식이 일어 났을때에 커다란 지진도 일어났다고…” [^10]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역사가들이 기록한 역사서가 성경의 믿기 힘든 내용들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예수님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포함해서 신약의 기록과 동일한 내용을 많이 썼던 대표적인 역사가는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입니다. 요세푸스는 AD 37~100년경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로 대표적인 저서로는 예루살렘 함락을 기록한 유대 전쟁사 그리고 창조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유대 고대사가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를 사람이라고 부를수 있다면 예수라고 하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놀라운 일들을 행했고,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를 찾아 왔고,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빌라도가 우리의 지도자의 제안에 따라 그를 십자가 형에 처했지만, 그를 처음부터 사랑하던 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다시 그들에게 나타났고, 이는 신성한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수만가지의 불가사의한 일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른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11]
요세푸스가 기록한 세례 요한 그리고 야고보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성경과 일치하는 기록을 남깁니다.
유대인들중 일부는 헤롯의 군대가 와해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세례자라고 불린 요한을 처형한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세례 요한은 의인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서로를 향한 정의와 하나님의 자비를 향해 선을 행하라고 명했고, 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12]
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어떻게 순교했는지도 기록했는데.
페스투스가 죽었고, 알비누스가 부임했다. 그래서 그가 산헤드린의 재판관들을 소집했고,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와 다른 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이 법을 파괴한다는 죄명을 씌우고 돌로 죽이게 하였다. 하지만 가장 공정한 시민들과 법을 어기지 않는 사람들은 일어난 일을 싫어했다. [^13]
라고 합니다. 이런 요세푸스의 기록은 세례 요한이 회개와 공의를 외쳤으며,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복음서의 기록은 물론,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여러 성경 구절들을 확인해 줌과 동시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야고보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순교를 했음을 알려줍니다.
성경이 얘기하는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
그의 기록 중에 가장 흥미로운 기록은 아그립바 헤롯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헤롯의 죽음을 드라마틱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제 날이 새매 곧바로 군사들 사이에서는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관해 적지 않은 소동이 있더라. 헤롯이 그를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매 간수들을 심문하며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유대에서 가이사랴로 내려가 거기 머무니라.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더라. 그러나 그들이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시종 블라스도를 자기들의 친구로 삼고 화평을 구하니 이는 그들의 지방이 왕의 지방에서 나는 양식을 먹었기 때문이더라.
한 정해진 날에 헤롯이 왕복을 차려입고 자기 왕좌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하니 백성이 환호하며 이르되, 그것은 신의 음성이요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천사가 곧 그를 치매 그가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두니라. <사도행전 12:18~23>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이 베드로도 잡아서 죽이려고 했는데, 베드로가 천사에 이끌리어 감옥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를 아실겁니다. 그 일 이후 헤롯이 가이사랴 지방에 가서 왕복을 입고 연설을 하는데, 헤롯에게 잘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헤롯을 신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런데 헤롯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자 헤롯이 죽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너무 극적이어서 믿기 힘든 이 내용을 역사서가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가 기록한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
아그립바가 전유대 지역을 다스린지 3년 되었을 때, 이전에 스트라토의 망대이라고 불렸던 가이사랴 지역에 왔다… 축제 둘째날 그는 전체가 은으로 만들어지고 질감이 아주 멋진 옷을 입고 극장에 왔다. 은으로 만들어진 옷은 태양을 그대로 반사했는데, 아주 멋졌기에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여기저기서 아첨꾼들이 “그는 신이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지금까지 당신을 사람으로써 경외했지만, 이제부터 신으로 인정하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왕은 그들을 꾸짖지도 않고 불경스런 아첨을 거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헤롯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줄에 올빼미가 앉아 있음을 봤다. 그리고 한 때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었던 이 새가 불길한 소식을 가져다 줬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깊은 시름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 배에서 아주 강력한 통증이 일어나고,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너희들이 신이라고 부른 난 이 세상을 떠라나는 명을 받았네. 권능자께서 방금했던 거짓말을 꾸짖는 것이네. 불멸이라고 불린 나는 곧바로 죽음으로 향하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권능자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받아들이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악하게 살지 말고 선하게 살아야해.” 그가 이 말을 마치자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그는 성으로 옮겨지고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남자,여자,아이 할 것 없이 베옷을 입었고 왕의 회복을 위해 빌었다. 모두 슬픔과 비통에 잠겼고, 왕은 땅에 엎드려 있는 그들을 보고 울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5일간 복통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54세였고 통치 7년 째였다. [^14]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언급한 예수님
타키투스는 55~117년까지 산 로마 역사가입니다. 그가 쓴 역사서가 성경의 기록들을 또 한번 확증해 줍니다. 그의 저서 연대기(Annals)에서 타키투스는 네로가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 보고를 없애기 위해 네로는 사람들에게 크리스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죄를 씌우고 그들의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해 미움을 받는 자들이 받는 가장 극렬한 고문을 받았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나왔는데, 티베리우스 시대에 우리의 행정관 중 하나인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극형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악한 미신은 악의 근원지인 유대 뿐 아니라 전세계에 흉악하고 부끄러운 것들이 중심지로 삼는 로마에까지 와서 인기를 얻었다. [^15]
타키투스는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그는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시대에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사형되었음을 기록합니다. 이는 성경 특히 누가복음의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역사서가 전해주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과 고난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과 고난에 대해서 기록하거나 보고하는 내용의 역사서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수에토니우스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Chrestus)의 선동으로 계속해서 소란을 일으켜서 로마 바깥 지역으로 쫓겨났다. ” [^16] 네로는 크리스챤들을 새롭고 해가 되는 종교 신념을 가진 종파로써 처벌하여 고통을 주었다. [^17]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황제에게 보고 하기 위해서 플리니 2세는 “그들 (기독교인)은 특정한 날을 정해서 날이 밝기 전에 모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는 하나님께 부르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 찬양을 부르고 사기, 도둑질, 간음을 행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부정하거나 질문을 받을때 믿음을 부인하지 않기로 엄숙한 맹세를 합니다. 그들은 헤어진 후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다시 모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입니다.” 라는 보고서도 작성합니다. [^18]
그 외에 다른 역사 기록 밑 고고학적 증거들
그 외에도 예루살렘이 함락된 70년, 시리아의 스토익 철학자 마라 바세라피온은 그의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레테스를 죽여서 무슨 이득을 얻었는가? 그들의 범죄에 대한 댓가로 기아와 질병이 그들에게 찾아 왔다.
혹은 사모스 사람들이 피타고라스를 죽여서? 한 순간 그들의 나라가 모래로 덮였다.
혹은 유대인이 그들의 현명한 왕을 죽여서? … 그 후 그들의 왕국이 무너지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공의롭게 복수하셨다.
그 현명한 왕은… 그의 가르침대로 사셨다. [^19]
성경과 역사서가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성경외에는 예수님에 대해 언급한 역사책이 드물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역사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Gary Habermas 교수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고대 자료가 45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20] 그리고 성경과 역사서가 예수님 그리고 초기 기독교 부흥에 대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예수님은 마리아라는 여자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부친은 목수였다.
두번째,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했고 정확한 예언을 했다.
세번째, 예수님은 당시 많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배척을 받았다.
네번째,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 당했으며 십자가에 못박히던 날 12시에서 3시까지 초자연적인 암흑이 땅을 덮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심한 지진이 났다.
다섯번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치스러운 죽음에도 예수님을 따랐으며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믿었고, 그 믿음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여섯번째,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으며 하나님께 하듯 예수님께 경배했다.
일곱번째, 그 그리스도인들은 초기에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으며 로마에도 통치자들이 신경써야 할 만큼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위에 정리한 내용의 대부분은 실제로 많은 역사가들 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성경 학자들이 역사로 인정하는 바 입니다. 이런 증거들 속에 예수님께서 실존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으며, 이는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의 비논리적인 억지에 불과합니다. 오늘 제시해드린 증거들을 통해 부디 우리가 더욱더 성경을 신뢰할 수 있으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