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대왕은 지옥에 가셨나요?”
아마 변증을 하는 사람이라면, 또 사역자들은 초신자들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여러번 받은 질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하지만 선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는 것이 불공평하며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 가장 대표적인 예로 조선의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 대왕님이 지옥에 갔는지의 여부를 물어봅니다.
저는 이에 대한 신학자나 변증가들의 답을 읽어 보았지만 많은 답들이 질문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질문한 분들이 알아야하고 생각해 보아야하는 더 크고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분들과는 조금 다른 각도로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세종 대왕님이 지옥에 갔을까요?
우선 질문 자체에 대한 답을 해볼까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모릅니다!” 입니다. 왜 모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세종 대왕이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행전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하나님의 후손일진대 하나님의 신격을 결코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새긴 금이나 은이나 돌 같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사도행전 17:29~30>
어떤 관점에서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회개하지 못함을 눈감아 주셨고 구원을 허락하셨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구절입니다. 물론 이 구절을 갖고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답은 “모른다!”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질문에 내재되어 있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고 싶습니다.
첫번째 문제점: 예수님을 들어본적이 없는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억울하거나 불공평한 일인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믿으며 나에게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필요한 이유는 내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을 이룰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모든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것이 합당한 가능성이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이 세상에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세종 대왕님을 포함해서 그가 누구이던 역사 속에서 가장 착하고 선하게 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누구이던 그 역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것이 정당한 죄인이며 예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배신하고 창조주로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습니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가도 인간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공평을 따진다면 예수님이 누군지 복음을 못듣고 지옥에 간게 불공평한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구원을 얻은것이 불공평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천국에 가고 예수님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건 놀라운 은혜이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아닙니다.
두번째 문제점: 만약 세종 대왕님이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믿고 지옥에 가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인가?
세종 대왕님이 지옥에 갔는지를 묻는 분들에게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선한가 악한가의 여부를 판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혹은 창조주의 존재 없이는 선과 악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즉 이 세상의 선악의 기준은 창조주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이지 피조물이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있을 수 없느니라. 그분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시나니 <로마서 9:14~15>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이며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를 판단하려는 시도 자체가 죄악이며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죄인들의 행태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소유인 피조물들에게 어떤 일을 해하시던 그것은 그분의 주권이고 그분의 판단입니다. 10억원짜리 피카소 그림의 소유주가 그 비싼 그림을 불에 태웠다고 죄가 됩니까?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잡초같고 한번 치고 사라지는 파도같은 허무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니라, 오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어진 것이 자기를 지은 이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덩어리의 진흙으로 한 그릇을 만들어 존귀에 이르게 하고 다른 하나를 만들어 수치에 이르게 할 권한이 없겠느냐? <로마서 9:20~21>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세종 대왕을 지옥에 보냈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정말 세종 대왕이 지옥에 가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천국에 가면 믿을 것입니까?
아니요…. 우리는 어떤 상황이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 숨어야 합니다. 선악과 먹은 피조물이 자신의 근거 없는 판단으로 하나님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죄악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번째 문제: 하나님이 나보다 어리석으신가? 하나님의 판단이 잘못되었나?
이런 질문에는 하나님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고 나의 선택이 하나님의 선택보다 낫다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선악과 먹은 인간의 교만이며 착각입니다.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으며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9>
저는 하나님이 세종 대왕님을 천국에 보내셨는지 지옥에 보내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하게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셨더라도 그게 가장 공정하며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정함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셨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것을 가장 공정하고 공의롭게 처리하셨을 것이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네번째 문제점: 내가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알아야 하나?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전에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믿기 싫기 때문에 제시하는 핑계거리에 불과합니다.
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은 죄인들은 내가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떠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부분을 명확히 말씀해 주지 않으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들어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천국에 갔던 지옥에 갔던 그것이 나의 구원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많은 사람들은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을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여러 해석을 가능케하지만) 그런데 우리는 그 중간에 일곱 천둥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기를, 일곱 천둥이 말한 그것들을 봉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 계시록 10:4>
하나님은 왜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으면서 일곱 천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으셨을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또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이 창조 때 목적하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기에 넘치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금하거나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묵상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것이 진정 합리적인 피조물인 인간이 해야하는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모든 결정을 신뢰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쉽게 또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기독교 변증을 공부해 보실 것을 권면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수고했다, 힘들었겠다,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내주십니다. 그런 메일이 감사하고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이 일들을 하면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저 자신입니다. 변증은 저에게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었고 뜬구름 잡는 것 같았던 성경 구절이 사실은 심오한 철학적 근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어떤 일에 어떤 결정을 내리셨더라도 저는 그 결정이 최상의 선택이며 가장 공의로운 결정이라고 신뢰합니다. 그 어떤 결정도 제가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것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 일이라도 심지어 내가 지옥에 가야 할지라도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던 없던) 저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저의 창조 목적입니다.
저는 단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 지옥가는게 당연한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 거짓말 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