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뱃속에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는 출산 후에 삶을 믿니?” 그러자 다른 아이가 대답합니다. “왜, 당연히 출산 이후에 무언가가 있을거야,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더 나중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도 안되.” 다른 아이가 말합니다. “출산 후에 삶이란 없어. 그런 삶이 어떨것 같니?”
“모르지, 여기 보다 더 밝은 빛이 있고, 더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을거야.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다리로 걷고 우리 입으로 먹을지도 몰라.”
다른 아이가 말합니다. “그건 바보같은 생각이야! 우리가 걷는 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리고 우리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야! 영양분은 탯줄이 공급하는 거라고. 출산 후의 삶이란 없어, 출산 후에 우리가 살기에 이 탯줄은 너무 짧단 말이야.”
다른 아이가 대답 합니다. “나는 여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바깥 세상에서 여기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 즉 출산을 하면 모든게 끝이라는 뜻이지. 출산 후에는 모든 것이 어둡고 우울할 뿐이며, 우리는 그냥 사라지는 거라고.”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다른 아이가 말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엄마를 보게 될 거고, 엄마가 우리를 사랑해주고, 돌봐 줄거야.”
“엄마? 너는 엄마의 존재를 믿니? 그렇다면 엄마는 어디에 있는데?”
“엄마는 우리를 감싸고 있어. 그 안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거지. 엄마가 없다면 이런 따듯한 세상도 없었을거야.”
“나는 엄마란 존재를 볼 수가 없어.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엄마’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그러자 다른 아이가 대답하기를 “가끔씩 고요할 때, 너는 엄마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거야. 엄마가 우리를 어루 만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지. 나는 출산 이후에 또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는 그 아름다운 세상에 가기 위해 여기서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믿어…”
by Útmutató a Léleknek
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사야 1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