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는 기독교의 심장부적 교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던 믿지 못하던 많은 분들께서 정작 십자가와 부활이 어떤 구원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불신자들은 기독교의 교리가 불공평하며 말도 안되는 엉터리라고 생각하십니다. 어떻게 극악무도한 살인자라도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국에 가고, 평생을 착하게 살았어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 가는건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신다면 세상의 그 어떤 다른 종교의 교리보다 기독교가 논리적이며 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어떤 의미와 영적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나눠보고자 합니다.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가르침 – 인간들은 죄를 짓는다.
기본적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인간이 죄인이라고 가르칩니다. 가장 극단적으로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의 경우 사람이 선하게 태어났고 선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성선설이 나와야 하는 배경에는 왜 인간들이 악을 행할까라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맹자는 인간의 악행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선한 성질을 더럽혀서 생기는 죄라고 생각하고 학문을 통해 원래 갖고 있었던 선한 마음을 지켜야 함을 가르쳤었죠.
다른 종교들은 어떤가요?
불교는 자신이 지은 죄가 업보가 되어 다음 세상에서 그 업보에 따라 환생을 하며 스스로 도를 깨달아야 그 윤회에서 벗어나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힌두교도 이와 비슷한 구원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카스트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그렇지 못했을때는 다시 윤회의 싸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환생을 하게 됩니다.
이슬람교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지은 악과 선을 저울에 재고 악이 더 무거우면 지옥에가고 선이 더 무거우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알라를 위해서 순교를 하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기도 하구요.
내가 지은 죄보다 선행이 더 많으면 나는 착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이들의 구원관이 합리적입니까?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죄보다 선행을 많이 하면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됩니까? 만약 누군가 위기에 놓인 100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이 그 중 1명을 살인을 하면, 그래도 구해준 나머지 99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습니까? 세상의 종교들은 당신이 죄를 지은것은 맞지만 그에 걸맞는 선을 행하면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살인, 강도, 절도의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사기를 쳐서 징역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범법자가 아닌가요? 범법자는 모든 법을 다 어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법중 하나만 어겨도 범법자 입니다. 그리고 그 개념을 성경은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께서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이제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야고보서 2:10~11>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법에 대한 개념을 다른 종교의 교리는 부정하지만 기독교는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이 말하는 죄와 선의 개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논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정의와는 다르며 기독교의 논리는 굉장히 법적이고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구원의 원리 – 예수 그리스도
모든 종교가 자기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 기독교는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 구원을 얻을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로마서 3:20>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의로울 수 없으며 심지어 스스로는 의로운게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러 오신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0:28>
예수님은 자신이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속물은 무엇일까요?
이를 간단한 비유로 설명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날 누가 담배를 피고 가다가 꽁초를 버렸는데, 담배 꽁초가 100억원 짜리 고층 빌딩을 태워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백수였고 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100억원 짜리 고층 빌딩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하지만 돈이 한푼도 없어서 보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할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댓가는 사망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은 댓가로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죄의 댓가를 스스로 치룰 능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죄만 짓게 됩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소망없이 지옥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적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어떤 부자가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이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선뜻 100억원을 주겠다고 나선 것 입니다. 부자는 그에게 100억원을 계좌로 보낼테니 계좌 번호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100억원을 받기 위해 계좌번호를 주면 됩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난 100억원을 갚을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계좌번호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100억원을 갚지 못해 그대로 감옥에 가야할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적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인류의 죄의 댓가를 치룰 능력이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분은 죄가 없으시고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는 죄의 댓가, 즉 사망을 이길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분의 생명을 가질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만약 ‘나는 지옥에 가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아들은 나를 지옥에서 건져낼 수 없어’라고 생각해서 이 분의 생명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은 자신의 죄값을 치루기위해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내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의 댓가를 치루지 않는 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저는 죄의 댓가가 예수님이 받으신 물리적인 십자가에서의 고난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잔인한 로마식 형벌이 예수님이 받은 죄의 댓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땀을 피처럼 흘리시면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을 때, 저는 예수님이 단지 물리적인 십자가 고문과 못박힘이 두려워서 그런 기도를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지옥 형벌을 받으셔야 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예수님께 가장 고통스러운 고난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셔야 했는지 고통속에 울부짖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우리가 죄의 댓가를 치루지 않는 대신 그 모든 죄의 댓가를 독생자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하셨던 것 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이사야 53:4~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사망하시기 전에 “모두 이루었다!” 라고 외치시고 돌아가시자, 성전에 있는 휘장이 찢어집니다. 무엇을 의미하는거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가져가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 죄를 가져가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고,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대신 치루셔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어떻게보면 인간도 십자가에 매달려서 타인의 죄를 위해서 죽겠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냥 혼자 쇼를 하고 죽은 것인지 정말로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은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며 우리 죄의 댓가를 치루신 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의 댓가가 완전히 치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멸망하였느니라.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 <고린도전서 15:17~19>
그렇습니다.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도 고난을 당하고 죽은 후에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독교인들이야 말로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가장 비참한 처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압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모두 치루어 내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부수시고 승리하셨음을 압니다.
멸망 받을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26>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이 패배했으며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 덕분에 사망을 이겨 부활할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려면?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소식이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맡길 수 있나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라디아서 2:20>
가장 첫번째로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나의 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사실은 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성경은 이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표현 합니다.
두번째로는 예수님께서 그 피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의 주인이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임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그렇게 고백할때,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의 완벽한 삶 즉 우리가 살아내지 못하는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의로운 삶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것 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 질 수 있는 것 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벤트가 아니라 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처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저주도 받으실 이유가 없는 그 어떤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끔찍한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 입니다.
그의 몸을 밤새도록 나무 위에 두지 말고 반드시 그 날에 그를 묻어서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니라.) <신명기 21:23>
이는 분명한 법적인 목적을 지니고 전가한 처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기 충분한 무한한 거룩함을 가지고 계시기에 지옥에 있을 이유가 없이 부활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사망을 이기셨다고 표현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법적이고 논리적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승리를 내 것으로 받기만 하면 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