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혹은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어떻게 물질에서 비물질적인 의식이 발생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글을 썼으며 이 논거가 하나님이 계신 아주 훌륭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 세상에는 비물질적인 의식이 존재 합니다. 비물질적인 의식이 없고 물질만 있는 세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죄송하지만 방금 하신 그 생각 역시 비물질적인 의식 입니다.
나의 선택은 정말로 나의 선택입니까? 뇌 활동에 의한 결과입니까?
하지만 정말 놀랐던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자아까지도 부정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다수의 의견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본 댓글 중에는 “뇌 과학의 연구 결과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으며 우리는 뇌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 따라서 무작위 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다.” 라는 것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지금 과학계가 의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의식이 물질적인지 비물질적인지 또 뇌의 활동인지 영혼이 존재하는 건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또 많은 인지 과학자들은 물질주의자이기 때문에 의식이 뇌에서 만들어 진 현상 혹은 환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느끼기에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나요? 제가 기도를 할때 뇌의 특정한 부분이 반응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입니다. 하지만 내가 기도를 하게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요? 뇌일까요? 뇌의 반응이 나를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기도를 할때 뇌가 반응하는 것입니까?
내가 기도를 하게 만드는 것도 뇌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오른손을 듭니다. 내가 오른손을 들때 뇌의 특정한 부분이 반응을 하겠죠? 내가 10번 오른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것 역시 나의 뇌의 화학 작용에 의한 무작위적인 움직임입니까?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 전에 우리의 뇌는 그 행동과 연관된 부위가 먼저 활성화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결론을 물질주의 안에서만 해석하려는 무리함으로 성급하게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 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닌 뇌의 명령이 전달된 결과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저는 이번 글을 통해서 인간에게 의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의식은 뇌가 주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A=B 라면 A에게 해당되는 모든 것은 B에게도 해당되어야 합니다.
본론에 앞서 우리는 한가지 논리적 사실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A=B 라면 즉 A와 B 가 같은 존재라면 A에게 사실인 모든 것은 B에게도 사실이 되어야 하고 B에게도 거짓인 모든 것은 A에게도 거짓이 되어야 합니다.
쉽죠? 만약 대한민국=남한 이라면 대한민국의 인구가 5000만이면 남한의 인구도 5000만이 되어야 하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면 남한의 수도도 서울 이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이해가 되셨다면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치성 (Identity)은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불이 나면 항상 열이 발생을 합니다. 하지만 불과 열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특정한 생각을 할때 뇌의 특정한 부분에 전기 활동(electrical activity)이 있거나 심지어 뇌의 특정한 부분에 전기 자극을 주어 특정한 생각을 나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전기 활동이 특정한 생각과 동일한 것이 아닐수 있습니다. 그 두개가 일치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단지 원인과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그 두개가 일치하는 즉 나의 특정한 기억이나 생각이 뇌의 특정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전기 활동과 같은 것이라면 특정한 기억이나 생각에게 사실인 모든 것은 뇌의 특정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전기 활동에게도 사실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나의 생각이나 기억에게 사실인 무언가가 뇌에 발생하는 전기 활동에게 거짓임을 논거한다면 그 두개는 같은게 아닌게 됩니다.
의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우선 의식이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의식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래서 의식에 대해 예를 들어 드리죠.
이춘복이란 사람은 긴급한 수술을 받았고, 혼수 상태에 있다가 깨어납니다. 그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와 형광등 불빛과 약 냄새를 느끼고 그의 수술 부위에 남아 있는 통증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여기가 어디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를 간호하고 있던 가족이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그는 목이 마름을 느끼고 물을 마시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힘이 없지만 “물 좀 줄래?” 라고 말을 합니다.
이춘복 씨에게 지금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식이란
“1인칭의 관점에서 갖는 인지”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1인칭의 관점에서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의식엔 다섯가지 상태가 있습니다.
1) 감각/느낌
감각이란 순수한 지각(sentient)을 의미 합니다. 예를들어 누가 발바닥을 가볍게 긁으면 간지러운 느낌이 들고, 바나나를 보면 노란색을 지각하게 됩니다. 행복하거나, 화가 나는 것 역시 감각/느낌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느낄수 있습니다.
감각이나 느낌은 진실이나 거짓이 되지 않습니다. 그 감각이 정확하거나 부정확 할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실이나 거짓이 되지는 않습니다. “내 고통은 진실이다.” 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고통인 실제이긴 하지만 진실 혹은 거짓은 아니죠. 다만 고통이 크지 않음에도 크다고 부정확하게 느낄수는 있겠죠. 어떤 사람은 바나나를 보며 파란색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거짓은 아닙니다. 다만 부정확하게 보고 있을 뿐입니다.
2) 생각
생각이란 문장으로 표현 될수 있는 참이나 거짓이 될 수 있는 정신적인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왜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을까?” 라는 것은 생각입니다. 저 문장은 종이나 컴퓨터 화면에 적혀져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제 정신 속에 있죠. 그러므로 생각과 문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또 생각과 감각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감각은 확실한 느낌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에 대한 생각은 느낌을 수반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생각이 슬프거나 기쁜 감각을 불러일으킬수 있겠죠. 혹은 누군가 바늘로 내 살을 찔렀을 때 아프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수도 있구요. 하지만 그 두개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3) 믿음
우리에겐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사실이라고 51%~100% 사이의 가능성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가 2018년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할 수 있을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예선 탈락을 할 것이라고 믿기도 하죠. 제가 2006년 대학교 이후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2% 하나님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저는 당시 그것을 2% 부족한 믿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계신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100% 확실하게 계시죠.
저의 믿음은 참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감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각은 참이나 거짓이 될수 없지만 믿음은 그럴수 있거든요. 또 믿음은 생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믿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제가 생각하지 않는 것을 믿고 있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항상 사실이어야 하는것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내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지금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라는 말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만 존재합니다.
4) 욕구
욕구란 무언가를 원하거나 원치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갈비를 먹고 싶을수도 있고, 운동을 하기 싫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욕구는 참이거나 거짓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욕구는 적절하거나 부적절 할 수 있겠죠. “저 물건을 훔치고 싶다.” 라는 생각은 참이거나 거짓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부적절한 생각입니다.
5) 자유 의지
의식의 마지막 상태는 자유의지 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자유 의지란 내가 목적하고 의도하는 바를 행하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느날 밤에 어떤 미친 과학자가 저희 집에 들어와서 저의 몸에 마취 주사를 놓았고 저는 팔이 완전히 마비되어 움직일수 없다고 가정해 보죠. 하지만 저는 잠을 자고 있었기에 이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 7시에 스마트 폰에 알람이 울리고 저는 그 알람을 끄기 위해서 저는 내 팔을 들어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 폰을 가져와야 겠다라는 정신적인 행위(Mental action)를 일으킵니다.
저는 저의 의지를 발동시켰지만 저의 팔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는 제 팔을 움직이고 싶고 팔을 움직이려는 목적을 갖고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저의 팔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제 내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나의 의지를 발동시킬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을 바꿀수 있으며, 운전하면서 우회전을 하려다가 그냥 직진 할 수도 있고, 농구할 때 슛을 쏘는척 하면서 패스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이 너희의 생각의 영을 새롭게 하라 <에베소서 4:23>고 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어제 100m를 3초에 달렸다는 것을 믿으면 1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진심으로 그것을 믿기 힘듭니다. 말은 믿는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것을 실제로 믿는 것은 힘들죠.
이 세상에 의식을 가진 존재가 없다면…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의식이 있는 존재가 없다면, 하나님도 없고, 알라도 없고 무신론자들이 얘기하는 대로 빅뱅이 스스로 일어나서 어쩌다가 별이 생기고 지구가 생겼다면, 물질은 존재하지만, 감각도, 생각도, 믿음도, 욕구도, 자유 의지도 있을수 없다는 것에 동의 하십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적어도 나에게는 감각도, 생각도, 믿음도, 욕구도, 자유의지도 있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분명히 의식이 존재 합니다.
뇌와 의식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다음 질문은 의식이 물질적인 상태인지 비물질적인 상태인지의 여부 입니다.
의식이 물질적이지 않고 비물질적이라는 두가지 근거를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의식에 대해선 사실이지만 뇌의 상태에 대해선 사실이 아닌 것들이 있기에 그 둘은 같은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드립니다.
저는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에 대한 저의 생각은 주일날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생각 입니다. 이 생각에는 크기나 모양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주일날 가서 예배를 드리는 생각이 얼마나 큰가요? 어떤 모양이지요? 동그란가요? 네모난가요?” 라고 물어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 “어디에 있죠? 오른쪽 귀 근처에 있나요? 왼쪽 귀 근처에 있나요?” 라고 누가 질문한다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요.
나의 의식의 상태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뇌의 상태에는 적용되는 표현들
하지만 우리가 뇌의 상태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한다면 굉장히 심각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일날 교회에 가는 생각을 할때 제 뇌의 특정한 부분이 특정한 모양으로 전기 화학적 활동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뇌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통해 뇌의 어느 부분에 가장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저 전기 화학 반응은 타원형이군요? 골프공 정도 크기로 좌뇌 근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뇌 활동은 기하학적인 특징 (크기, 모양, 위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러므로 두개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다른 예를 드립니다. 제 생각은 참일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독도는 일본땅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 거짓이 되지만 제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생각을 할 때 일어나는 뇌의 반응이 참이거나 거짓일 수는 없습니다. 어떤 뇌과학자가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보며, “저 반응은 사실이 아닌데요?” 라고 얘기하는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의 의식과 뇌의 활동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의식과 뇌의 활동이 다르다는 첫번째 근거입니다.
두번째 논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뇌 과학자들이 저의 뇌를 전선에 연결하여 제 뇌의 모든 활동을 알수 있다고 생각해보죠. 실제로 뇌과학자들은 뇌의 활동에 따라 제가 무엇을 할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제가 어떤 생각을 하기 이전에 이미 뇌의 특정부위가 활동을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뇌 과학자들은 제 뇌의 모든것을 알수 있지만 저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느낄수 없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느낀 같은 느낌을 그대로 느낄수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것이 비물질적이며 인간은 비물질적인 어떤 것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을 담은 비물질적인 존재 – 영혼
그렇다면 의식을 담고 있는 비물질적 존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 일수도 혹은 뇌일수도 있습니다.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영혼에 대한 정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거의 일치하는데, 지난 2,500년간 인간에게 생각되어지고 역사적으로 동의되어지는 영혼에 대한 정의는 “의식을 담고 있어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비물질적인 존재”입니다. 즉 인간이 시체가 아닌 이유는 인간의 의식을 갖고 있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에 영혼이 있을때에 그 육체에 생기가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영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거를 펼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자아는 영혼일까요? 아니면 뇌 혹은 육체인 것일까요?
첫번째 논거는 분할의 논증 이라고 불립니다.
방송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박모세 군이 있습니다. 그는 후두부에 뼈가 없어서 뇌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뇌의 10%만 갖고 있습니다. 뇌가 10%만 남았다는 것이 박모세 군의 90%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될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뇌가 어떠한 이유로 절단되어 10%만 남더라도, 그래서 뇌가 일반인의 50% 정도 밖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자신이 10%나 50%가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뇌의 기능이 일반인들보다 부족한 한 사람일 뿐인 것입니다.
즉 인격 혹은 자아는 분할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나의 자아가 뇌라면, 혹은 뇌의 활동이라면, 뇌를 절단한 나는 뇌가 절단된 만큼 혹은 뇌의 활동이 줄어든 만큼 사라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10%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뇌의 활동이 아니며 나에게 뇌의 활동이 있을 뿐, 뇌의 활동이 나의 자아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수 있다
두번째 논거는 나에게 사실인 것이 나의 뇌에게는 사실이 아닌 것이 있다는 점 입니다.
나라는 자아가 유체 이탈을 하는 것이 실제이건 상상속에서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뇌나 뇌의 전기 화학 반응은 유체 이탈이라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테이블 위에 소금과 소금과 완벽히 똑같이 생긴 구슬이 있다고 생각해 보죠. 만약 이 소금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넣는다면 물에 녹아 안보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과 똑같이 생긴 구슬은 물어 넣어도 절대로 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물에 넣지 않은 소금에게는 물에 녹을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구슬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생김새가 완전히 똑같아도 그 둘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관념적으로 인간의 의식은 육체에서 분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방송에서 꽤 심심치 않게 생사를 헤매이다 유체를 이탈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듣습니다. 그 얘기는 어쩌면 나의 자아는 내 육체와 분리 될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의 뇌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몸에 분리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증명된 사실에 의거한 논증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에 의한 논증입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어서 나의 자아가 몸에서 분리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관념속에서도 그 둘은 다름을 통해 적어도 나의 자아는 뇌나 뇌의 전기 활동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없다면 자유의지도 도덕적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에 대한 논거 입니다.
저는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지금 마음먹으면 내 왼손을 들수 있으며, 제가 지금 마음을 먹으면 의자에서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타올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나는 내 오른발을 떨지 않고 가만히 둘 수 있으며, 이 글을 쓰는 것을 멈출수도 있습니다. 이 것은 나의 뇌가 나에게 주는 명령이 아니라 나의 자아가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나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나에게는 도덕적 책임 또한 없을 것입니다. 9.11 테러가 일어난것은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테러를 막을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그 테러가 일어나도록 한 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만약 나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나의 모든 행동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뇌에서 주는 무작위 적인 명령 체계라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뇌가 나에게 명령하여 사람을 죽이라고 시켜서 나의 몸이 다른 사람을 죽였다면, 그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만약 내가 나의 뇌와 신경 체계라면 나의 행동은 나의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와 화학 반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뇌를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은 물리와 화학의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아가 물리적이라면 물리와 화학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고 나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을수 없죠.
범죄를 저지른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식으로 가해자에게 어떠한 의지가 없었다는 식의 변론으로 인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감옥에 가는 대신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풀려나는 사례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판사들이 그들의 유전자나, 정신 상태, 당시의 환경 등에 따라 범죄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자아가 뇌의 활동이기에 물질적이라면 그 판사들의 판결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죠.
하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묶임이 있어서, 담배나 마약, 포르노에 중독이 되기도 하고, 정신적인 질환에 의해서 혹은 환각 상태에서 내가 의지하지 않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마약이나 술등에 취해 의식을 잃거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자유 의지를 행사할 때가 있으며 그것은 그들 역시 자유 의지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나는 내가 자유 의지에 의해서 행동하거나 생각할때와 강압적인 힘에 의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일 때의 차이를 압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에 특히 나의 뇌나 신경 체계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거하며, 이는 나에게 무언가 비물질적으로 자인식을 할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나눈 얘기들을 정리해 보죠.
1. 의식은 비물질적입니다.
2. 의식에는 다섯가지 감각, 생각, 믿음, 욕구,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3. 나의 의식과 그 의식을 발생케 하는 뇌의 활동에는 다른점이 있기에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4. 나의 자아와 뇌의 활동에는 다른 점이 있기에 나의 자아는 뇌의 활동이 아니며, 특히 나에게 있는 자유 의지는 물리와 화학 법칙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비물질적인 존재 ‘영혼’이 있음을 추론케 합니다.
육체가 고장이 났을때 영혼에 나타나는 반응들
그렇다면 많은 분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걸리거나 정신 질환 치료제 등을 먹은 경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어 우리의 영혼이 나의 의식을 주관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의 육신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나의 몸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내 영혼 역시도 나의 몸에 영향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11>
베드로 사도는 육체의 정욕이 나의 영혼을 거슬러 싸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나의 육체의 죄에 따라 나의 영혼에 영향을 끼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입니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선악과를 먹은 육체의 행위를 통해 육체는 물론 영혼도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육체의 죽음에 이은 영혼의 죽음 즉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둘째 죽음이라고 하며 이를 가장 커다란 저주라고 표현 합니다.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요한 계시록 20:13~14>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 계시록 21:8>
내 영혼의 자유의지 역시 육체의 상태에 의해 발현된다
왜 이게 가능한 것일까요?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셨죠. 그 영화에서 하반신이 마비 된 제이크는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서 원격 조종이 가능하게 된 아바타를 타고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만약 제이크가 헤드 쿼터에서 그를 꺼내줄 때까지 아바타에서 나올 수 없다면, 그의 움직임은 철저하게 아바타의 운동 능력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만약 아바타가 정상적이고 아주 컨디션이 좋다면, 빠르게 달릴수도 있고, 의식의 주체가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바타의 발목이 부러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기다려야 할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있는 영혼이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육체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눈을 통해서 보고 팔을 통해서 잡고 입을 통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내가 정상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눈이 멀었다면, 나의 영혼은 시감각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에 묶여 있는 나의 영혼에 전달되기 전까지 내 몸의 지체가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하게 나의 뇌에 화학 작용과 신경로에 물리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 나의 영혼이 생각하고 기억을 되짚어 내는데 문제가 발생 하도록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은 뇌를 통해서 기능을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이 뇌와 마음이 같은 것이라는 의미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의 마음에서 시작된 원인이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이죠.
하지만 만약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아바타의 능력에 상관없이 다시 제이크의 능력과 기능에 따라 그의 행동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인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죽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몸을 떠나 자유롭게 보고 듣습니다.
나는 뇌의 활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수술중에 생사를 오고가다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혹은 심장이 일정 시간 이상 마비 되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사후 세계 혹은 특별한 느낌을 받고 그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듣습니다. 거의 죽음의 끝자락에서 한 경험을 Near Death Experience (NDE) 라고 하는데 그 중 어떤 경우는 평생 장님으로 살아 물체의 색깔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 NDE를 하고 깨어나 유체 이탈을 하고 본 색깔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하는 케이스, 또 혼수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했을텐데, 수술실에서 일어났던 일을 상세하게 증언한 케이스들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므로 뇌 과학자들의 연구들이 뇌의 절단이나 손상으로 일어나는 기능의 손실을 통해 내는 결론 즉 나의 자아는 뇌의 활동이라는 결론은 비논리적인 것이 됩니다. 분명 영혼이 몸안에 있을때에 육체에 기능적인 의존이 있지만 그것은 두개가 같은 것이라는 것과는 다른 것 입니다.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산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호흡은 산소다. 라는 주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비물질적인 의식의 존재는 비물질적인 존재가 있음을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이 의식 혹은 영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어떻게 물질에서 비물질이 발생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모자에서 토끼를 빼내는 마술사의 모자에는 사실 토끼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에서 무에서 유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비물질적인 의식이 있다는 것은 비물질적인 존재가 비물질적인 의식을 부여 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요한 복음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