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차를 맡기고 옆에 같이 기다리던 여성분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아주 선한 인상에 처음보는 저에게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말을 걸정도로 붙임성도 있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분 같았습니다.
제가 신이 있는지를 묻자 이 분은 자신의 부모님은 교회에 다녀 예수님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또 자신도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 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다만 자신은 착한일을 많이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착한일을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살면서 아무 어려움 없이 어떤 신이 자기를 잘 보호해 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고 또 대부분의 종교에는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나의 어떠함으로 천국에 가거나 더 좋은 모습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유교적 관점에서도 선하게 살고 조상을 잘 모시면 그에 따라 복을 얻는고 내세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기독교만 이를 부정하며 너희 힘으로는 어떻게 살아도 스스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도 정확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며 믿습니다. 제가 인간 스스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믿는 이유는 단지 진리인 성경책에 쓰여져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제가 인간이 아무리 착한일을 많이해도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믿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그 주장이 객관적으로 가장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이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도 결국은 인간이 죄인인데 그것이 원래부터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냐 아니면 선하게 태어났지만 악해지는 것이냐를 두고 관점의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불교도 역시 인간이 죄인이며 중생들에게는 구원이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이고 기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악으로 인해 이 세상이 지금처럼 어지러워졌으며 이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인간이 이미 죄를 지었더라도 거기에서 돌아서서 선한 삶을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예를들어 이슬람 같은 경우도 사람이 죽어서 알라 앞에 서면 그 사람의 선행과 죄를 저울위에 얹어서 선행이 더 많으면 천국에 죄가 더 많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합리적인 생각인가요? 우리가 잘 생각해보면 다른 종교들의 구원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죄에 대한 원칙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100명을 살린 한 사람이 1명을 죽이면?
2017년 12월 ‘한 때 영웅으로 칭송받던 교사가 학생들과 모래 언덕에서 성관계를 가짐으로 감옥에 가다.‘ 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호주에 있는 한 교사는 2015년 불이 난 집에서 죽을뻔한 사람을 구해서 용감한 시민상을 받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 그는 두명의 10대 여학생과 해변에서 성관계를 갖습니다.
이 교사의 변호사는 법원에서 그가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고 말하지만 법원은 그에게 3년 4개월의 징역을 선고합니다.
감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법이 규정하고 있는 모든 범죄를 다 저지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수천가지의 범죄 중 한가지 혹은 이와 연관된 몇가지의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간 것 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물에 빠지는 배에서 혹은 불에 타는 건물에서 100명의 어쩔수 없이 죽을수 밖에 없던 사람들을 구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100명의 사람들은 죽었어야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을 건 구조에 의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몇달후 자신이 구조한 사람 중 하나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100명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에 무죄입니까? 자신이 죽인 사람은 어차피 자신이 없었으면 죽었을 사람이기 때문에 무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한 착한일이 나의 죄악을 덮어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그리고 당연하게 나의 착한일이 나의 악한일보다 더 많다고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생각인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합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야고보서 2:10>
여러 형법중 하나만 어겨도 범죄자가 됩니다. 살인을 하지 않았어도 사기를 치면 유죄가 됩니다.. 강도질을 하지 않았어도 횡령을 하면 유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은 아무리 많은 착한일을 하더라도 하나의 죄를 지으면 유죄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는가 아닌가의 여부로 하나님 앞에서의 유죄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지 내가 착한일을 더 많이 했느냐 적게 했느냐로 유죄여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정할수 있는가?
죄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금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창조주의 창조 목적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로마서 1:26>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말합니다. 왜 동성애가 죄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성에 어긋나는 모든것,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벗어나는 모든 것이 죄이며,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로마서 7:7>
그리고 율법은 우리에게 탐욕이 죄라고 말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3:5에서는 우상숭배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은 내가 행한 어떤것이 아닙니다. 탐욕은 내가 저지른 어떤 일이 아닙니다. 탐욕은 그저 내 마음속으로 갖고 있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 나의 생각도 죄가 될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내가 저지른 어떤 행동 뿐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나를 위해 착한일을 하는 사람들
또 우리가 소위 착한일 이라고 부르는 행동들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든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헌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잠시 다니던 교회에서는 부흥회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 부흥회에는 정말 재밋는 분들이 와서 여러가지 얘기를 해줍니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설교가 하나 있는데, 여러분과 나눠보겠습니다.
강남에 감자탕 가게를 하는 한 권사님이 계셨는데, 이 분이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서 십삼조를 해도 남을 정도의 엄청난 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삼조를 꼬박꼬박 하니까 또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십칠조를 하셔도 강남에 빌딩도 사고 집도 사고 부를 주셨다는 설교입니다.
누군가가 이 설교를 듣고 강남에 빌딩을 사고 싶은 마음으로 십일조를 꼬박꼬박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십일조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십일조 원래의 의미대로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상징으로 드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부와 나의 편한 삶을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까?
이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죄입니까?
사도행전에 아나니야와 삽비라는 자신의 땅을 팔아서 일부를 감추고 전재산을 내놓았다고 했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죽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을 헌금한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따져 물을수 있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돋보이고 싶고 높임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죄로 규정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착한일을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는 또는 신의 복을 받아 잘 살려는 죄를 짓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착한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일 그리고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것과는 한참 다릅니다. 사람들이 볼 때 모두의 칭찬을 들을만한 행동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가증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존경하고 우러러 봤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지옥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미 설명드렸듯이 내가 아무리 착한일을 많이해도 단 하나의 죄를 짓으면 나는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욕심, 미워함, 음욕,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생각들도 죄라고 정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다 용서 받을수 있다면, 지금부터는 어떤 죄도 짓지 않으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마음이 완전하며 거룩하십니까?
우리는 가끔씩 기회가 될 때마다 행하는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을 더 자주 합니까? 아니면 죄 된 생각을 더 많이 합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가장 훌륭한 삶,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4~25>
우리는 착한일을 할 수도 없지만 착한일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나를 구원해낼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질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우리를 무죄한 사람으로 만들어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있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