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팀 마호니의 패턴스 오브 에비던스라는 영화를 보고 출애굽의 여러 고고학적인 증거들과 기독교인들 또 성경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6개의 글로 소개하기도 했고, 영화를 직접 보고 싶은 한국 분들을 위해서 자막도 만들어서 이메일 주시는 분들께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전아모스라는 분의 반박 글이 있고, 이에 대한 저의 의견을 묻는 분들이 계셨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블로그/유튜브 활동을 예전처럼 할 수 없었고, 이 글에 대한 반박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전아모스 님의 글을 다시 읽게 되었고, 더 이상 늦출수 없다는 생각에 재반론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하나님께서 이 글에 대한 반박 자료들을 보내주셔서 공유하려고 합니다.

참고로 저는 전아모스라는 분이 누구인지 헥터 아발로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헥터 아발로스라는 분이 쓴 글 원문을 보지는 못하고 전 아모스님의 블로그 글만을 보고 반박을 합니다. 또 저는 패턴스 오브 에비던스를 변호하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를 포함해서 출애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논거에 반박을 하고자 합니다.

헥터 아발로스의 비판에 내가 갖고 있는 불만

비단 헥터 아발로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진화론자, 유신 진화론자, 오랜 지구론자들의 토론 영상, 토론 글, 반론 글들을 보면 그들에게야 말로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패턴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증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독자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비본질적인 주장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에 집중하도록 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습니다.

이 글도 그런 기조에서 많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의심을 이끌어 낼 수는 있으나 본질을 부정할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들어 데이비드 롤이 주장한 요셉 혹은 야곱의 집으로 생각되는 터에 대해서 아발로스는 12개의 기둥이나 12개의 무덤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반박하여 마치 데이비드 롤의 주장이 우연이거나 별것 아닌듯이 말합니다. 하지만 이 집에는 영화에서 소개한 이 집이 요셉 혹은 야곱의 집이어야 하는 뚜렷한 증거는 물론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더 확실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숨기거나 모르면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속의 야곱의 자손의 집이 진짜인 증거

여러분은 오목이나 장기를 둬 본적이 있습니까? 아주 초보와 두는게 아니라면 오목과 장기를 둘 때 하나의 공격만으로는 이길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실 겁니다. 적어도 두개나 세개의 공격이 한번에 이루어졌을 때 피할 길이 없고 그때야 이길수 있습니다. 법정에서나 이런 류의 토론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 하나의 증거만으로는 어느 쪽도 확신을 줄 수 없습니다. 여러개의 복합적인 증거들이 성경 기록과 일치하여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냥 증거들을 하나 하나 떼어내어 이를 부정하지도 못하면서 희박한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의심을 갖게 합니다.

예를들어 아발로스는 요셉의 석상이라고 주장되는 그 집에 있는 거대한 석상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롤은 그것이 요셉의 헤어스타일, 요셉의 피부톤, 요셉의 옷의 특징임을 설명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실제로 수백명의 아시아 공직자들이 유사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다채로운 색의 외투를 입었다… 따라서 그의 머리카락 색은 아시아 출신에게만 유일한 것도 아니었다.”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혹은 세종 대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우리 중 아무도 그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만원짜리에 혹은 현충사에서 보는 그 분들의 초상화는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표준 영정일 뿐입니다. 수백년전 조선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과 장군의 얼굴도 모르는데 지금으로 부터 약 3,500년전 사람의 헤어스타일, 피부톤, 옷의 특징을 설명하라는 요구는 합당한가요? 이성적인가요?

이는 마치 예수님의 사망 진단서나 의료 기록을 갖고오면 십자가 사망과 부활을 믿겠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의미 없는 의문 제기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합니다.

004 요셉 총리 석상

아발로스는 이 석상의 주인공이 아시아 출신 즉 셈족이 아닐수도 있다고 넌지시 떠봅니다. 하지만 블로그의 글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집 하나가 F1지역 지층 d/2으로 지정된 북시리아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했고…”

즉 이 터에서 야곱이 온 시리아 스타일의 집 터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는 아발로스의 의미 없는 주장 즉 저 석상의 주인공이 아시아인이 아닐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부정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고고학자도 없구요.

물론 그는 이 집이 야곱의 것이라는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며 다른 증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 증거를 갖고 있는데 그 증거가 바로 위에 그가 아시아 출신이 아닐수도 있다는 석상입니다.

이집트에서 왠만큼 높은 지위에 있지 않았다면 사람의 두 배 크기의 석상을 지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발로스가 비판한 “북시리아 스타일”의 집터에는 처음 발굴시 궁전일 거라고 생각했던 하지만 구조상 궁전일 수 없었던 대 저택이 지어졌습니다. 아발로스는 이 증거들을 복합해서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고 이건 이래서 아니고 저건 저래서 아니라고 말합니다.

북 시리아 스타일의 집 위에 지어진 대저택 그리고 그 저택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된 일반 사람의 두배가 넘는 거대한 셈족의 석상 이 것으로 부족한가요?

그렇다면 추가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아발로스가 비판했던 12개의 주요한 무덤 중 하나에 금과 구리로 만든 북시리아 스타일의 단검 하나가 발견 됩니다.

이 단검의 주인은 Ruler of Retjenu 즉 레반트에서 온 통치자 입니다. (Retjenu는 이집트 어로 지금의 이스라엘/시리아/팔레스타인이 있는 레반트 지역을 의미합니다.)

Ruler of Retjenu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금으로 장식한 칼을 가지고 다닐만큼 그는 큰 부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단검의 주인공이 레반트의 통치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나요? 왜냐하면 이 단검과 함께 발견된 부장품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인장입니다.

조금 부서지긴 했지만 이 인장에는 인장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만한 글이 있는데, 인장을 조금만 복원하면 The Ruler of Retjenu, Di-Sobek-em-hat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시내 광야에 유명한 터키옥(Turquois)과 구리 광산이 있는데, 이 곳에서 굉장히 많은 초기 히브리어로 쓰여진 석판들이 발견되었고 그중 하나가 Sinai 112로 알려진 아래의 그림과 글 입니다.

이 그림에는 나귀를 타고 있는 Hebeded이라는 한 사람과 그 나귀를 끌고 있는 아이, 아마도 아들이나 종으로 보이는 하지만 이름이 있는걸로 봐서는 종이 아닌듯한  Shekam이라는 사람이 있고, 이 그림의 제목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The Brother of the Ruler of Retjenu, Hebeded”입니다.

즉 이 그림의 나귀를 타고 있는 남자는 금단검의 주인공 레반트의 통치자의 형제 Hebeded입니다. 그렇다면 Hebeded이 무슨 뜻일까요? 이 이름의 의미는 선택받지 못한, 눈밖에 난(Disfavoured)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아는 분들은 이 사람이 누군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자기 아버지의 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려고 그것을 들며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 아이가 맏아들이니 아버지의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매 그의 아버지가 거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백성이 되고 그도 크게 되려니와 진실로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크게 되며 그의 씨가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 날 그들을 축복하며 이르되, 네 안에서 이스라엘이 축복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너를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에 두었더라. <창세기 48:17~20>

맏아들이지만 야곱의 축복을 받지 못한 므낫세가 그 주인공 입니다.

실제로 므낫세의 동생 에브라임은 야곱의 장자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즉 Ruler of Retjenu는 에브라임이 되어야 하지요. 더 확실한 증거는 Hebeded의 나귀를 끌고 가는 아이에 있습니다. 그의 이름 세겜..

그는 므낫세의 손자 길르앗의 아들 즉 므낫세의 증손자입니다.

므낫세의 자손 중에서 남은 자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을 위해 제비를 뽑았더라. 이들은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남자 자손이더라. <여호수아 17:2>
이 터키옥 광산에는 그 외에도 다른 기록들이 많이 있는데 이를 고대 히브리어로 해석하면 성경에 기록을 확증해주는 수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아래는 Sinai 375로 명명된 석회암 판과 이를 디지털로 탁본한 것인데, 이 석판에는 성경에 나오는 누군가의 이름이 있습니다.

석판의 내용을 번역하면 “광물의 관리자 아히사막 (Overseer of minerals, Ahisamach)”이 됩니다. 아히사막이 누구냐면 출애굽 후 성막을 지을때 그 안에 온갖 장식물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한 자가 아홀리압이고, 아홀리압은 아히사막의 아들입니다.또, 보라, 내가 그와 함께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을 주었고 지혜로운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의 마음에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였으니

출애굽기 31:6

우리는 합리적으로 이런 추측이 가능하겠죠. 광물의 관리자인 아히사막이 이를 갖고 무언가 주물을 하고 여러 기술을 갖고 있다가 이를 그의 아들 아홀리압에게 전수했고 그가 성막에 있는 모든 기구들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Sinai 376 석판에는 또 다른 이름이 나옵니다.

또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며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아내로 주니라. 요셉이 나가서 온 이집트 땅을 돌아보니라.

창세기 41:45

요셉의 아내의 이름이 아스낫인데, “아스낫의 포도밭의 집과 그 안방이 새겨져 있다. 그 그림은 마치 실제와 같다.”라는 내용입니다.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왜 아발로스가 요셉이 아닐 것이다 혹은 셈족이 아닐수도 있다라고 한 곳에서 발견된 부장품과 그 부장품과 연결된 다른 석판 기록들에는 초기 히브리어가 쓰여져 있으며, 그 내용은 왜 성경과 연결되어 있고, 내용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이름들이 나오나요?

이 모든 것이 동명이인이고 우연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대의 재설정에 대한 재반론

이 글의 시작은 고고학계가 주장하는 출애굽의 시기인 람세스 2세때의 통치시기 즉 기원전 12세기와 성경적 출애굽 시기 기원전 14세기를 두고 반론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런 의미없는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데, 이들의 주장은 자기모순이 가득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는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자신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서 답하지 않는 토론에 적합하지 않은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처음부터 이해하셔야 하는 것은 아발로스는 “출애굽이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출애굽이 없었다라고 믿는 사람이 출애굽이 몇년도에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류는 달에 착륙한적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인류가 달에 착륙한 것은 1990년대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들은 처음부터 자기 모순적인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출애굽이 기원전 12세기 혹은 람세스 2세의 통치때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성경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믿지 않지만 성경이 특정한 시대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믿습니다. 자기 유리한 말만 체리피킹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이들은 출애굽이 람세스 2세때 있었다고 말하나요?

그러므로 그들이 작업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주어 그들을 괴롭게 하였더라. 그들이 파라오를 위하여 국고 도시 곧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였더라. <출애굽기 1:11>
이들이 라암셋이라는 이름의 국고 도시를 지었다는 성경 구절입니다. 만약 성경에 이 구절만 있었다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보다 400년 전을 설명한 창세기 47장에는 뭐라고 되어 있나요?
요셉이 파라오가 명령한 대로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정착시키고 이집트 땅에서 그들에게 소유를 주되 그 땅의 가장 좋은 곳 즉 라암셋 땅에서 소유를 주며 <창세기 47:11>
라암셋 땅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출애굽이 아니라 요셉이 이집트로 입애굽을 했을 때가 람세스 2세때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람세스 2세가 통치하기 수백년 전에 람세스 2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이미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왜 출애굽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은 믿지도 않으면서 출애굽기 1:11 말씀만 딱 믿고 창세기 47:11 말씀은 모른체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왜곡시켜야 성경이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영화에서도 글에서도 지겹도로 설명했듯이 후대에 누군가가 당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명을 현대적으로 바꿔서 기록한 것으로 생각하는게 가장 합리적입니다. 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람세스 2세가 기원전 17~18세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람세스때 출애굽이 있었다는 주장은 부정되었습니다. 기원전 13세기의 즉 람세스보다 선대의 이집트 기록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레반트 땅에 정착하고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기록들 역시 람세스 시대보다 훨씬 더 전에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의 주인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12세기에 여리고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성경 기록이 부정확하다고 말하지만 기원전 12세기에는 이미 2세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그 성을 부섰기 때문에 당연히 여리고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 기록대로 이루어진 일을 통해 성경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발로스는 데이비드 롤이 람세스 2세의 통치 시기를 기원전 9세기로 왜곡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의미없는 흠집잡기에 불과합니다. 데이비드 롤의 주장을 무시하고 표준 연대대로 람세스 2세가 기원전 12세기에 파라오가 맞다고 가정해도 성경의 기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표준 연대가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점은 람세스 2세의 통치시기가 아닙니다. 요점은 실제 출애굽이 언제 있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왕상 6:1의 말씀대로 솔로몬이 통치한지 4년째가 출애굽 480년이 되는 때라는 기록을 근거로 출애굽이 기원전 1450년 즈음이라는 성경적 연대를 기준으로 삼고 문제를 풀어갑니다. 그리고 그 연대를 인정하는 순간 위에서 설명한 것들을 포함해서 수 많은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적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파괴에 대해선 왜 언급이 없나?

아발로스의 반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자신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정말로 중요한 증거에 대한 반론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여리고 성입니다.
기원전 14세기에 있었던 여리고성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적은 하나하나 다 성경과 일치 합니다.
여러분은 망치로 63빌딩을 완전히 무너뜨릴수 있나요? 몇년이 걸릴까요?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여리고성은 엄청난 요새였고 2중 성벽이 있는 당시 무기로는 무너뜨릴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은 고고학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거인이 손가락으로 튕겨 낸 것처럼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발견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는 유월절 즉 지금으로 치면 3~4월 정도였고, 이 때는 이른 보리의 추수시기와 겹칩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은 수 개월간 공격한 것이 아니였고 단 7일만에 성벽이 무너지자 그 안으로 들어가 여리고 성을 점령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성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건들이지 말고 다 하나님께 바쳐 진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현대의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입니다. 고대에는 곡식이 귀했기 때문에 성을 점령하고 그 안에 있는 곡식이나 다른 보급 물품을 약탈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리고 성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입니까? 집집마다 가득 차있는 불에 탄 곡식 항아리 입니다.
이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루어지기 힘든 발견입니다.
첫번째로 엄청나게 튼튼한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것 부터가 비현실 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한 증거는 무너진 시기가 수 개월 수년을 공격한 결과가 아니라 포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몇 개월만 여리고성을 포위하고 있었더라도 저 항아리는 텅텅 비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발견 된 곡식 항아리는 대부분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꽉 차 있었습니다. 이는 포위 된지 얼마 안되어 성이 정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두번째로 얼마 안되어 정복되었더라도 약탈로 인해 저 항아리는 비어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항아리는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것은 발견하지 못한것이 아닙니다. 곡식들은 불에 타 있었고, 일부로 남겨둔 것입니다.
왜? 어떤 이유로 여리고성을 공격한 군대는 성안에 가득 남아 있었던 곡식을 약탈하지 않고 남겨 두었을까요? 설명할 자신이 있나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설명할 수 있었다면 어설프게라도 글에 반박을 해 놓았겠죠. 하지만 여리고성에서 발견한 이 증거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푸워의 파피루스

세속 학자들은 이푸워의 파피루스와 출애굽을 연결짓는 것을 경계합니다. 위키피디아나 이푸워의 파피루스를 번역한 사이트들을 보면 한결같이 출애굽을 언급합니다. 한 웹사이트에서는 이푸워의 파피루스의 영문 번역을 제공하며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비주류 역사학자들은 흔히 이 파피루스의 내용을 성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와 비교합니다. 이집트 문헌과 성경의 유사점은 쉽게 발견되며, 히브리인들이 때때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집트인들이 히브리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추정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이푸워의 파피루스가 출애굽 당시의 이집트를 묘사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합니다.
왜 이런 언급을 할까요? 왜냐하면 본인들이 생각해도 이푸워의 파피루스와 출애굽기의 기록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단순히 강이 피처럼 된다라는 구절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전체 내용에는 아발로스가 정리해 주었듯이 주요한 6가지 이상의 유사점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단순하거나 자주 일어날 수 없는 그리고 너무도 의아한 사건들입니다.
단일 사건 혹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일을 통해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가난한 자 혹은 노예 였던 자들이 주인의 부를 빼앗아 가고
농작물이 파괴되며 가축이 죽고
장자가 죽고 모든 곳에서 자신의 형제를 매장하고 있고
어둠이 온 땅을 덮고
이집트 전체가 파괴되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특히 이집트에 강이 피로 변하고, 농작물이 파괴되며 가축이 죽고 장자들이 죽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 그 피해를 노예였던 사람들 역시 받았어야 하고 더 심하게 받았어야 하는게 상식적입니다. 하지만 이집트가 이 난리인데 노예였던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되었다구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요?
이에 대해 아발로스는 이런 이집트에 대한 묘사를 각기 다른 자료에서도 찾을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글에서 성경의 예레미야 애가를 포함해서 부자들의 부를 노예가 가져가 부자는 가난해지고 노예는 부자가 된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껏해야 아가데의 저주에 표현 된 부가 흩어진다는 내용일 뿐입니다.
아발로스는 이푸워의 파피루스와 출애굽을 동일시 여겨야 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푸워의 파피루스와 더더욱 동일시 될 수 없는 글들을 제시하며 출애굽을 부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망하면 부가 흩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복한 나라가 정복 당한 나라의 부를 가져가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죠. 하지만 이푸워의 파피루스의 글의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유를 하자면 서울에 전쟁이 났고, 서울에 가뭄이 들었고, 서울에 전염병이 돌았으면 부자던 가난한 자던 처참한 상황 가운데 있어야 하죠. 하지만 전쟁이 나고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고, 한강이 오염되어 아무도 마실수 없고, 전염병이 돌았는데, 노예는 부자가 되고 부자들은 그 부를 빼앗긴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푸워의 파피루스를 깊이 연구했던 미리암 리트하임은 이 내용인 현실적이지 않고 말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은 이것이 실제 사건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푸워의 파피루스나 출애굽이나 현실적이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은게 맞습니다. 그리고 아발로스는 이런 사건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가데의 저주와 비교하며 출애굽기와 차별되는 점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단 아메넴하트 1세때 쓰여졌다고 알려진 이집트의 네페르티의 예언에만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집트의 미래에 대한 예언 말입니다.
“내가 혼란에 빠진 땅을 보여주노라
무장한 약자가 무장한 강자가 되나니…
사람들이 묘지에 살게 될 것이며
거지들이 부를 얻을 것이며….
노예가 존귀하게 되리라…”
예언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예언은 출애굽을 통해서 성취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아발로스가 출애굽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한 네페르티의 예언은 사실은 출애굽을 더 확증해주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푸워의 파피루스가 특별한 것은 단순히 이런 사건들을 나열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신교 사회인 이집트에서 이 사건들을 유일신의 벌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신교의 사회라고 하나의 신이 재앙을 통해 벌을 내린다는 개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를 일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이푸워의 파피루스를 소장하고 있는 라이덴 박물관의 마틴 레이븐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푸워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중앙 권력이 무너질 때 이집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표현한 보고서(Report) 입니다.”
하지만 이를 출애굽기와 비교하려고 하니 레이븐 소장은 자신의 발언을 뒤집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푸워의 파피루스와 이집트 재앙에 대한 이야기가 관련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주 간접적인 방법으로 역사적 사실을 직접 목격한 바를 쓴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저는 이 사람이 이 모든것을 볼 수 없었다고 확신을 줘야 했습니다. 그는 상상한 것이거나 비슷한 류의 다른 책에서 영감을 얻어서 썼겠죠. (사실이라고 하기에) 너무 환상적입니다. 그는 이것을 본게 아니라 상상한 것입니다.”
레이븐 소장이 주장하는 이 글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근거는 무엇이죠? 본인이 생각하기에 너무 환상적인 즉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관적 판단입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재앙을 일으킨다는 것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만한 사건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이븐 소장이 똑같은 잣대로 판단했을때 출애굽기도 환상적이라고 판단해야 합니다. 즉 출애굽기와 이푸워의 파피루스의 내용이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구차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논리적으로 말했어야 하는것은 이푸워의 파피루스와 출애굽기의 내용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건이 역사속에 일어났을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정도가 되야 할 것입니다.
아발로스는 글에서 이푸워가 글에 언급한 순서가 다르다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많은 사람들은 고대의 글을 보면서도 자꾸 현대 문학을 대입해 분석하려고 합니다.

계속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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