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존재해야 하는가?
수 년전 저희 교회에서 저희 지역에 있는 쇼핑 센터에 노방 전도를 나간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전도지를 나눠주며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얘기했는데, 저는 그 곳에 있는 한 샾에 들어가서 전도지를 나눠줄 참이였는데, 마침 손님이 없던 그 가게의 주인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가운 마음에 크리스챤이냐고 물어보자, 그 분은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얘기하며,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세상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 6백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 된 홀로코스트 등을 얘기하며 하나님과 고통은 공존할 수 없으며 그런 이유로 자신이 무신론자 임을 얘기했습니다.
사실 많은 무신론자들이 왜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 악과 고통이 존재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과 변증론자들이 이에 대해 대답하려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를 성경을 통해서 설명하려 하기 보다는 철학이나 경험을 통해서 대답하려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쩌면 그들은 성경적인 답을 알지만 그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답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성경적인 답이 그 들을 분노하게 하고 그들을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지 모른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더라도, 또 분노할 수 밖에 없더라도, 하나님이 계신 이 세상에 왜 고통이 넘치며 악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를 성경에 근거해서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신 이 세상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잡아 먹어야 할만큼 처참한 고통이 존재함을 얘기합니다
먼저 보고 싶은 것은 성경은 이 세상에 고통이 없을 거라고 약속했는지 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 하는 것이 성경과 모순 되는지를 알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은 좋은 얘기들 보다 않좋은 얘기들이 훨씬 많으며 축복과 기쁨의 얘기들보다, 고통과 애곡의 얘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수 많은 구절들 중에 하나의 대표적인 그리고 끔찍한 구절을 꼽아보자면, 예레미야 애가의 말씀 입니다.
내 백성의 딸이 멸망할 때에 인정 많은 여인들의 손이 자기 자식들을 삶으니 그들이 저들의 음식이 되었도다. <예레미야 애가 4:10>
부모에게 있어 아이는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아마도 아빠들보다 직접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엄마들의 사랑은 훨씬 더 크고 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이를 잡아 먹어야 하는 상황보다 더 고통 스럽고 처참한 상황이 있을까요? 하지만 성경은 그런 처참한 상황이 있음을 얘기합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처참한 고통의 이야기가 성경에 있지만, 하나의 예 만을 들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심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지금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이 존재함을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이 세상에 또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있다고 얘기를 합니까?
자기가 먹는 자기 자식들의 살을 그들 중 누구에게도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원수들이 네 모든 성문에서 너를 괴롭게 하려고 너를 에워싸고 곤경에 빠뜨릴 때에 그에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신명기 28:55>
신명기는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즉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설교 입니다. 특히 신명기 28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복과 저주를 설명하며 그 선택이 그들에게 있음을 설명하는 설교 입니다. 그리고 55절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끔찍한 경고를 하십니다. 저주를 받아 아무것도 남지 않아 심지어 자기 자식을 잡아 먹으며 누구에게도 자식의 살을 주지 않아야 할 만큼 끔찍한 상황에 닥칠 수 있다는 경고인데, 하나님은 이 것이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하면 축복을 죄를 지으면 저주를 받을 것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또 주께서 너로 하여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주 네 하나님의 명령들에 네가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지키고 행하면 그리하시리라.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말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든지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그러나 만일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과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라잡으리니 <신명기 28:13~15>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 입니다. 즉 다른 말로 얘기하면 죄를 짓지 않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이 세상은 완벽했습니다. 어떠한 슬픔도 어떠한 저주도 없는 무신론자들이 얘기하는 고통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에서는 죽음도 없었으며, 사랑만이 가득한 세상이었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꿈 같은 교제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가득한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타락하게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의 죄 였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
인간의 죄로 인해, 인간 뿐 아니라 인간이 다스리던 모든 세상이 저주를 받아 고통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통해 이 세상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들어왔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 하신대로 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하나님의 경고는 인간이 죄를 지어 세상이 저주를 받은 이 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시대에 상관없이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즉 위에 신명기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생명되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숭배를 하지 말고, 나를 위하여 사는 대신 나를 희생하고 서로의 필요와 도움을 주며 또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라는 것 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완전히 순종했다면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했을까?
만약 이 명령이 지켜졌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 났을까요?
만약 일본인들이 한국 국민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야망을 이루려 하지 않고, 한국인들을 존귀히 여기고 또 나의 딸이 소중한 만큼 한국인들의 딸을 소중하게 여겼다면, 정신대와 같은 비극적인 일, 마루타와 같은 처참한 일이 일어 났을까요?
만약 세월호의 선주가, 또 그 선박 회사가 돈에 눈이 멀어서 안전은 등한시하고 허용된 기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싣고 가지 않았다면, 또 정상적으로 운항했다면, 세월호 사건과 같은 비참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많은 무신론자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납치해 노예로 부린, 흑인 노예 제도를 악으로 생각하고 비판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인신매매가 벌어지는 시기는 그 때가 아니라 지금 입니다. 지금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는 무법과 혼란을 틈타 수많은 여자 아이들이 인신 매매를 당하고 그 중 대부분은 사창가에 팔려 성 노예로써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야 어떻게 되 던 말던, 사람들은 섹스 여행을 가고, 또 포르노로 제작되어 돈벌이가 되고 돈벌이가 되니까 더 많은 아이들이 인신 매매가 됩니다. UN의 보고에 따르면 공식적인 통계로만 전 세계에 240만명이 인신 매매가 되어 사창가로, 또 어선이나 공장 등으로 팔려 나갑니다.
과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했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 났을까요?
죄를 지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만든 사람들이 선지자 엘리야에게 한 말
열왕기 상에 보면 아합이라는 이스라엘의 왕이 나옵니다. 그는 성경이 가장 악했다고 설명하는 왕입니다. 하지만 그 왕의 행동들은 그렇게 악하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의 포도밭을 사겠다는데 거절 당하자 아무것도 못하고 삐져 있기도 할 정도 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아합왕을 가장 악하게 만들었냐면, 우상 숭배 였습니다. 아합은 부인인 이세벨이 이끄는대로 하나님 대신 우상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 이렇게 경고 하십니다.
길르앗 거주민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내가 서서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있지 아니하면 이 몇 년 동안 이슬이나 비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열왕기 상 17:1>
즉 하나님은 아합의 우상 숭배로 인해 가뭄의 심판을 내리신 것 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거꾸로 엘리야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볼 때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냐? 하매 <열왕기 상 18:17>
사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극심한 가뭄으로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았음에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려 하기 보다는 그 죄의 원인을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두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합에게 이 가뭄의 원인을 정확하게 얘기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아니하고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괴롭게 하였나니 곧 당신들이 주의 명령들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나이다. <열왕기상 18:18>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비를 내려 주시는데, 비를 내리시기 전에 하는 것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대언자들을 죽여 정결케 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은 우리가 자진해서 하던 하나님이 강제로 하던 죄의 근원에서 돌아서게 해야 나타날 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연단하시는 방법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을 회개하도록 하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고난과 고통 속에 그들을 넣는 것 입니다.
성경을 계속 읽어 보면, 특히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에 하나님은 그 주변국들의 힘을 강성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십니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고,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사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평화의 시간을 주시고, 그 평화의 시간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은 또 하나님을 잊고 타락하고, 타락에 하나님은 또 다신 다른 나라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해서 고통의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오늘 날에도 사용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떠난 유럽에 하나님은 무슬림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통해 고통 받게 하시고, 유럽 사람들이 누리고 있던 하나님의 법을 떠난 자유를 심판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악을 제거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왜냐하면 이 글을 쓰는 저와 이 글을 읽는 당신,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이 자기 혀로 속임수를 쓰나니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악독으로 가득하며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므로 파멸과 고통이 그들의 길에 있어 그들이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10~18>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 입니다. 하나님이 악을 제거해야 했다면, 노아의 홍수 때 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구원 계획이 있으셨고,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고, 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을 영원히 허용하시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마지막 사람이 구원을 얻을 때까지 잠시 악을 허용하고 계신 것 입니다. 그 안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이 계신데도 고통과 악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은 의로우며 선하다고 전제하고, 본인이 “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와 정반대로 얘기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스스로는 알 수 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으며 당연히 지킬 수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얘기들은 인간에게는 어떠한 소망도 없음을 증명합니다.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인간들의 유일한 소망 –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의 댓가를 대신 치루셨습니다.
우리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원래 하나님의 소유였던 나의 삶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 입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 때에 이 세상에는 어떠한 고통도 없을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가 마지막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상 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르다가 망했으며, 오늘 날의 무신론자들도 이 말씀과 동일하게 자신의 재앙을 하나님이 없는 증거로 삼고는 하나님을 찾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 받았으며, 저주 받은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너는 네 조상들과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자기들이 가서 함께 거하게 될 자들의 그 땅에서 일어나 그 땅의 타국인들의 신들을 따라 음행의 길로 가며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깨뜨리리라. 그리하면 그 날에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올라 내가 그들을 버리고 내 얼굴을 그들에게 숨길 터인즉 그들이 삼켜지며 그들에게 많은 재앙과 고난이 닥치리니 그러므로 그 날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들이 우리에게 닥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리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저지른 모든 악행으로 인하여 내가 그 날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신명기 31: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