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솔로몬의 타락의 시작 이집트에서 구입한 말(열왕기상 10장)
우리가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성경 구절들에서도 하나님은 중요한 메세지를 숨겨 놓으셨는데, 그 좋은 예가 열왕기상 10장 28절 말씀이라고 생각 합니다.
솔로몬이 이집트에서 말과 아마 실을 가져오매 왕의 상인들이 한 값에 아마 실을 받았으며 <열왕기상 10:28>
그냥 역사를 기록한 것 같은 이 구절에서 우리는 솔로몬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타락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왕이 세워질 것이며 다만 그 왕이 이집트에서 말을 사들여 오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 입니다.
반드시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자를 너를 다스릴 왕으로 세울지니 곧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너를 다스릴 왕으로 세울 것이요,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지니라. 그러나 그는 자기를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며 말을 많이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지 말지니라.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후로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하셨느니라. 또 그는 자기를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 자기 마음이 돌아서지 않게 하며 자기를 위해 은금을 많이 쌓지 말지니라. <신명기 17:15~17>
성경을 어느 정도 아는 분이라면 솔로몬은 신명기 17장에 쓰여진 말씀에 불순종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위에 썼듯이 이집트에서 말을 사왔으며, 아내를 많이 두었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지혜있으며 가장 큰 부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은 이 작은 불순종 들을 기점으로 말년에 우상 숭배를 하고 결국 그 죄로 인해 아들이 왕위를 물려 받았을 때 나라가 갈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냥 이집트에서 말을 사오지 말라고 하시는 거였습니까? 당시에 말은 지금의 차와 같은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준마는 당시에 가장 알려져 있는 최상급 말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차를 많이 수집해서 모으는 것에 비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문제는 그런 차를 많이 모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이 영적 상태를 알려 준다는 것 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살고 나의 욕망과 나를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자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 입니다.
22)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상 13장)
솔로몬 이후,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통치를 하는데 그 역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금송아지에 분향을 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게 예언을 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훗날 유다를 개혁할 요시야 왕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는데 여로보암이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의 팔에 마비가 옵니다. 이 때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신의 마비될 팔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자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을 위해 기도하고 팔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 옵니다.
이에 여로보암이 그를 위해 상을 주고 잔치를 베푸려 하자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얘기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이르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 아니하고 이곳에서 빵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이다. 주께서 말씀으로 내게 이같이 명하여 이르시기를, 빵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네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나이다, 하고 <열왕기상 13:8~9>
결국 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돌아 갑니다. 그 때 늙은 대언자가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 자신도 대언자이며 천사가 당신을 데려다가 음식을 주라 명령했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른 길로 오면서 밥도 안먹고 물도 안먹었으니 얼마나 배고프고 목말랐을까요? 어쩌면 그는 이쯤이면 됐어, 하나님이 나에게 먹을것을 보내 주셨구나? 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늙은 대언자의 청을 받아 그 집에 들어가서 빵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하지만 이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들이 상에 앉았을 때에 주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대언자에게 임하였으므로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크게 외쳐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주의 입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 네 하나님이 네게 명령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돌아와서 주가 네게 빵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빵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사체가 네 조상들의 돌무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니라. <열왕기상 13:20~22>
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늙은 대언자의 말에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것 입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작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 불순종 하나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람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해 이런 것을 보여주셨을까요? 이 세대, 예수님께서 믿음을 보겠냐고 한탄하셨던 이 세대에 작은 불순종 하나가 얼마나 커다란 값을 치루게 하는지 보여주고 싶으셔서가 아닐까요?
23) 엘리야와 사르밧의 과부 (열왕기상 17장)
엘리야가 아합에게 그의 죄로 인해 이 땅에 오랜 가뭄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고 살게 됩니다. 그 후 그릿 시내도 말라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새로운 거쳐로 보내셨는데, 그것은 부자도 아니고 다른 강도 아니고, 이제 밀가루 밖에 남은게 없어서 그것을 먹고 자살하려던 한 과부의 집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남은 밀가루를 구워 자신에게 달라고 얘기 하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비가 올때까지 밀가루 통의 가루와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도 안되는 하나님의 약속에 과부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엘리야에게 주었고, 정말로 자신의 통과 병에 곡식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먹을수 있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얘기합니까? 우리의 생명되시는 우리의 빵과 기름되시는 예수님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방인이었던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예수님께서도 직접 칭찬하시는 것 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두루 큰 기근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으되엘리야가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아니하고 오직 시돈의 도시 사렙다에 사는 한 과부 여인에게만 보내어졌으며 <누가복음 4:25~26>
24)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군 나아만 장군 (열왕기하 5장)
시리아의 위대한 장군 나아만은 왕에게도 존경을 받는 자 였으니 그가 시리아를 구원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감추고 싶은 사실이 있었으니 그가 문둥병에 걸리게 된 것 입니다. 하지만 그의 집에 있던 이스라엘 여종으로 인해 엘리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를 찾아 갑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를 만나주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으면 몸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크게 화를 내며 나같은 큰 사람이 왔는데 얼굴도 보지 않고 자신의 상처에 손을 얹어 안수하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것에 불만을 토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들어 차라리 요단강 보다 더 물이 좋은 곳에서 씻는게 좋지 않겠는가? 라고 얘기 합니다.
하지만 그의 종들이 설득해서 그는 마음을 바꾸어 순종하고 요단강에 몸을 씻고 결국 문둥병이 깨끗이 낫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대언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으되 그들 중 아무도 정결하게 되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정결하게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4:27>
25) 하나님의 회복을 믿지 않은 귀족 (열왕기하 7장)
엘리사의 시대에 사마리아에 시리아의 왕 벤하닷이 포위를 해서,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잡아 먹었으며, 비둘기의 똥 마저도 비싸게 팔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을때, 엘리사는 이 기근이 해결되어 음식 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자 왕을 부축하는 높은 귀족이 하나님도 그렇게 못하실 거라고 얘기 합니다.
이에 대해 엘리야는 하나의 예언을 덧붙여 그 귀족에게 그 모습을 보겠지만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죽던 시리아의 진영에서 죽던 똑같이 죽는 것이라고 얘기하며 달려간 문둥병자 네명이 시리아의 진영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껏 음식을 먹다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사람들은 시리아 군대가 놓고 간 군량미등을 마음껏 먹게 되고 음식 값은 안정을 되찾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던 그 귀족은 우르르 몰려 나가던 사람들에게 밟혀 죽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고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리라, 한즉 그때에 그 귀족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이제, 보라, 주께서 하늘에 창들을 내신들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매 그가 말하기를, 보라,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볼 터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라. 그 일이 그에게 그대로 임하였으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그가 죽었더라. <열왕기하 7:18~20>
하나님의 말씀이 비유나 상징이던가요?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던가요?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수 없거나 알수 없으면 믿지 않아야 됨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어린 아이처럼 믿으라고 가르치고 계시며 불순종 그리고 불신앙의 댓가는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6)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으리니 이를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이사야 7장)
어떠한 설명도 필요없는 이 구절은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예언이었을 것 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합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친히 한 표적을 통해 이 땅의 구원을 약속하셨으니 그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에 대한 약속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0~21>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그의 이름에서 나타납니다. 예수의 의미는 히브리어로 야훼가 구원이시다 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27) 벌거벗은 이사야 (이사야 20장)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벌거벗고 다니라고 명령하십니다.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를 비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3년 동안 벌거 벗고 다닙니다.
그때에 주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굵은 베를 풀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니 그가 그대로 행하여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내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며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에 대하여 표적과 이적이 되었느니라. <이사야 20:2~3>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이사야를 “이 바보야! 그냥 해본 말이지 그걸 그대로 믿냐?” 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3년 동안 벗고 다녀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적으로 보여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스라엘에 표적이 되어 하나님 대신 도움을 얻으려고 기댓던 이집트와 이디오피아가 앗시리아에 망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안망할 수 있을까? 라고 깨달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28) 고레스에 대한 예언 (이사야 44~45장)
이사야는 기원전 7세기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놀라운 예언을 했으니 200년 후에 있을 한 사람 즉 고레스라는 왕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며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유대를 독립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울 것임을 예언한 것 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내 목자라. 그가 나의 기뻐하는 것을 다 행하리라, 하고 예루살렘에게는 이르기를, 너는 세워지리라, 하며 성전에게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놓이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4:28>
주가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민족들을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또 왕들의 허리를 풀어 문짝이 두 개인 성문들을 그 앞에 열게 하고 그 성문들을 닫지 못하게 하리라. <이사야 45:1>
이는 역사적인 사실인데, 성경의 고레스 즉 키루스 2세는 서남 아시아 중앙 아시아 대부분을 정복하고 당대의 제국들을 굴복시킨 왕이 됩니다. 성경은 그가 유대인들을 풀어주고 독립시켰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세상을 정복한 왕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일들이 아니기에 역사학자들은 성경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기원전 6세기의 페르시아 황제는 정치적으로 약아 빠진 자들이기에 포로된 백성을 놓아주고 종교적 자유를 선언했다는 것은 우스운 소리다..”라고 에스라서의 기록을 비웃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1896년 고레스의 칙령이 새겨진 돌기둥이 발견되며 성경 기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밝혀 집니다.
칙령에는 “바벨로 거주민에 대하여는… 나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안 주는 것과 사회적 신분을 안주는 제도를 폐지한다… 나는 그들의 무질서한 주거 생활에 안녕을 주었고, 티그리스 다른 편에 있는 헌납되었던 도시들을 돌려 주었다. 그 땅은 오랫동안 폐허로 남은 거룩한 땅으로… 나는 역시 이전의 원주민들을 모아서 그리로 돌려 보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정확하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전능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29) 포도주를 거절한 레갑 사람들 (예레미야 35장)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레갑 사람들을 초대해서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레갑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준 포도주를 거절하며 자신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명령에 따라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며 집도 짓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고 포도원도 세우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 평생 동안 장막에서 살았다고 얘기합니다.
이 땅에서 모두가 다 하는 생활을 하지 않은 이들, 나의 소유를 갖지 않고 명령에 순종한 이들을 하나님은 답답해 하며 나무라셨을까요? 수백년, 몇 대에 이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즉 즐거움을 누리지 않은 이들은 아마 수 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 그리고 삶의 불편함을 견뎌내야 했을 것 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행한 레갑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커다란 축복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시는데, 우리가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하는 것들 입니다.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느냐? 주가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말들 곧 그가 자기 아들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령한 그 말들은 이행되었나니 이 날까지 그들이 전혀 마시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조상의 명령에 순종하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일찍 일어나 말하고 말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거주민을 향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라. <예레미야 35:13~18>
하나님은 또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그리고 불신앙은 저주이며 죽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0)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불순종 했던 요하난 (예레미야 42장)
예레미야는 그런 레갑 사람들에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갔을때에 바벨론은 그달리야를 그 땅의 총독으로 세우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게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같은 사람이겠죠. 그래서 이스마엘과 요하난등의 사람들이 그달리아를 죽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예레미야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려 달라고 하고는 이렇게 얘기 합니다.
그때에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만일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보내사 이르시는 모든 것대로 우리가 행하지 아니하거든 주께서 우리 사이에 참되고 신실한 증인이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당신을 주 우리 하나님께 보내오니 일이 좋든지 나쁘든지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리이다.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잘되리이다, 하니라. <예레미야 42:5~6>
그들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을 약속하고 하나님의 의견을 듣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스스로가 내린 결론이 있었습니다. 그 결론은 이집트로 도망하는 것이었는데,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즉 예루살렘에 머무를 것이며 이집트로 가면 재앙이 따를것 이라고 하자, 그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에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교만한 자들이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거짓으로 말하는도다. 주 우리 하나님께서 너를 보내사, 이집트에서 머무르려고 거기로 들어가지 말라, 하고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예레미야 43:2>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고 자신들이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 즉 이집트로 도망가는 것을 택하고 예레미야도 같이 끌고 갑니다.
성경은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지만, 예레미야 44장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릴 재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31) 음란한 여자와 결혼한 호세아 (호세아 1장)
호세아로 말미암은 주의 말씀의 시작이라. 주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가서 행음하는 아내를 취하고 행음으로 인한 자식들을 취하라. 그 땅이 주를 떠나 크게 행음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호세아 1:2>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지만 당대의 선지자에게 이게 가당한 일일까요? 호세아는 이를 상징적인 의미나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명령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자신의 모든 이해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행음하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표징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쓸모없게 된 고멜을 호세아가 돈을 주고 사오듯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시겠다는 표징을 보여주기 위해 하신 명령이었습니다.
참고로 호세아는 히브리어로, 여호수아, 즉 예수 입니다.
32) 니느웨에 가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 (요나 1장)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니느웨를 수도로 갖고 있는 앗시리아는 당시 잔인하게 이스라엘을 핍박한 나라 입니다. 포로를 잡아다가 꼬챙이에 끼워 자기네 나라로 데려가 고문하고 죽인 요나의 입장에서 보면 치가 떨리는 나라 입니다.
그리고 선민 의식에 차있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개라고 여겼죠. 그래서 그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으며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 했을 겁니다. 요나에게는 오늘날로 치면, 내 아들, 딸을 물어 죽인 개 한테 회개를 전하라는 명령이나 다름 없이 들렸을 것 입니다. 그런 이유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합니다. 어찌 보면 요나의 불순종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 입니다.
적어도 요나는 이 명령을 상징적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이 것이 비유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땅 끝이라고 생각되던 다시스 즉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탑니다. 불순종 이었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풍랑을 보내시고 큰 물고기를 보내셔서 요나는 그 안에서 3일 밤낮을 고통속에 지내다 결국 니느웨에서 회개를 선포하게 됩니다.
33) 사가랴와 마리아 (누가복음 1장)
누가 복음에서 하나님은 세레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하지만 천사를 보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의 반응은 첨예하게 달랐으며 그에 따른 천사의 반응도 달랐습니다.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자식이 없었으며 그들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으므로 자녀 낳기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부끄러움 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었을 것 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가랴가 주의 성전에서 분향할 때, 천사가 방문해서 아들을 나을것이니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믿지 못합니다. 당연하죠. 인간의 지식으로 평생 자식이 없었던 거의 죽을때가 다된 노인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바보가 할 짓 입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며, 그가 예언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반면 그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은 정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합니다.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누가복음1:31>
이는 아예 말이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어떻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가 있습니까? 하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권능이 덮어 아들을 갖게 될 거라는 천사의 설명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하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매 천사가 그녀에게서 떠나니라. <누가복음 1:37~38>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 넘는 분이시며 우리의 이해 안에서 믿음 갖기를 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34) 베드로의 순종과 불신앙 (누가복음 5장 & 마태복음 14장)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찾아 가셨던 날, 베드로는 이상하게도 전날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배를 빌려 설교를 하시고는 깊은 곳에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어부로 산전 수전 다 겪은 베드로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낮에는 물고기가 잘 안잡히고 얕은 물이 아닌 깊은 곳에서는 더 그렇기 때문이죠. 하지만 베드로는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립니다. 그 결과 배가 가라 앉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또 그는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자기도 물위를 걷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물위로 걸어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랍게도 베드로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물위를 걷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바람이 사나워지자 그는 예수님에 대한 작은 불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바다에 빠집니다.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가라앉기 시작하며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미사 그를 붙잡으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 14:30~31>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이 거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이 세상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법칙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작은 불순종 그리고 불신앙은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가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도 있습니다.
35) 나사로야 나오라! (요한복음 11장)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그 소식을 전하자, 예수님은 이 것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하시며 바로 가지 않으십니다.
그 사이 나사로는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사로가 있던 베다니로 가셔서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십니다. 그리고는 나사로가 다시 일어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에게도 부활 신앙이 있었는데, 이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모든 죽은 자가 부활 하리라는 것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그것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그게 아니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냐는 사람들의 조롱을 뒤로 하고 마리아에게 나사로를 묻은 동굴의 문을 열라고 하자, 마리아는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말하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11:40>
라고 하시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을 옮겨 놓습니다.
이 순종을 통해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시고, 나사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알리게 된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요한복음 11:25~26>
3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요한 복음 20장)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죽어야 하며 부활 해야 함을 계속해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 이야기를 들었던 제자들은 흘려 들었거나 말을 그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셨기에 이해할 수도 없었겠죠.
또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며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시되 <마가복음 8:31>
너희가 아는 대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2>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르되, 각하, 저 속이는 자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말하기를, 내가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사 그 돌무덤을 셋째 날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를 훔쳐 가고 백성에게 이르되,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 하면 마지막 잘못이 처음 것보다 더 나쁠까 염려하나이다, 하매 <마태복음 27:63~64>
예수님은 사람들이 믿었던 믿지 않았던 하신 말씀 그대로 사흘 뒤에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죽었다 살아 난다는 것을 나의 지식대로 믿지 않았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37) 감옥에서 나온 후 다시 말씀을 전한 사도들 (사도행전 5장)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처럼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에 커다란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가 그들을 풀어주며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명령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전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다가 감옥에 끌려온 사람들 아닙니까? 이들은 예수님을 전하다 고통 당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이 나오자마자 또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하지만 사도들은 그 명령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아침 일찍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니라. 그러나 대제사장과 또 그와 함께 있던 자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원로들을 함께 모으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니라. <사도행전 5:21>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38)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한 빌립 (사도행전 8장)
스데반 사도의 순교 이후 크리스챤들은 핍박을 피해 여기 저기 흩어 집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점점 퍼져나가는데, 그 중 빌립 집사는 가자에 가는 광야 길로 가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광야에 왜 가야 합니까? 광야에는 복음을 들을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광야 보다는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전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순종합니다.
빌립이 가는 도중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이디오피아의 고관을 보게 됩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 하시거늘 <사도행전 8:29>
빌립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광야에서 이디오피아에 여왕을 섬기는 즉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나 그를 전도하고 세례를 줍니다. 빌립이 그의 지식을 의지해서 불순종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어그러졌을 것 입니다. 하지만 나의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을 신뢰한 빌립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빌립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도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이 물 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므로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되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모든 도시를 두루 지나가며 선포하고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사도행전 8:39~40>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놀라운 능력으로 아주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39) 사울을 바울로 만든 아나니아 (사도행전 9장)
사울은 스데반 집사를 죽인 이후, 기세 등등하게 크리스챤들을 죽이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편지를 받아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길을 가다가 다마스커스에서 갑자기 하늘로부터 온 빛이 나와 그를 둘러 쌓이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충격을 받고 3일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그의 이름은 아나니야 입니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 하는 다소 사람을 찾으라.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느니라. <사도행전 9:11>
아나니야는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챤들을 잡아들이겠다며 나선 사울을 모를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나니야라는 사람이 안수하리라는 환상을 보여주셨다며 가라고 하십니다.
아나니야는 묻습니다.
이에 아나니야가 응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해 내가 많은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많은 악을 행하였다 하더이다. 여기서도 그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수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매 <사도행전 9:13~14>
하지만 하나님은 아나니야에게 그가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라고 하며 가라고 명하십니다. 만약 아나니야가 불순종 했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 아나니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사울을 안수합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그가 곧 시력을 받으니라. 그가 일어나 침례를 받고 음식을 받으매 강건해지니라. 그 뒤 사울이 다마스커스에 있던 제자들과 며칠을 지내며 즉시로 회당들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거늘 <사도행전 9:18~20>
40) 이방인에게 세례를 준 베드로 (사도행전 10장)
이미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취급하고 그들과 상종하는 것도 꺼립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과 혼혈이 되어버린 사마리아의 사람들과 밥을 먹는것이 불법이었겠습니까?
그들에게 이르되, 유대인이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과 교제하거나 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줄은 너희가 아느니라. <사도행전 10:28>
그러던 베드로가 하루는 환상을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각종 부정한 짐승과 곤충들이 보자기 같은 그릇에 담겨 자신에게 오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음성이 나서 그것들을 잡아 먹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여! 그러할 수 없나이다. 내가 속되거나 부정한 것을 결코 먹지 않았습니다.” 라고 반문 합니다. 분명한 주의 명령을 자신이 갖고 있는 선악 기준으로 판단하여 불순종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음성이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말하고, 이런 일이 세번 있은 뒤에 그릇이 올라 갑니다.
베드로가 자기가 본 환상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때, 누군가가 베드로를 찾아 옵니다. 이탈리아 장수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되,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그러므로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0:19~20>
결국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가고 복음을 선포하자 성령님께서 그 이방인들에게 임하시고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시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랍니다.
하지만 이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침례를 줍니다.
나의 이해와 지식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있었던, 인간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이해할 수 없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것 같았던 그래서 무시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사례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 봤습니다.
지금 이 세대에 인간의 지식에 의해서 세속적 가치에 의해서 성경 말씀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면 죽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을 제시해 드렸습니다.
오늘날 자칭 그리스도 인들이 너도 나도 하나님의 말씀이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날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인것 같고 지혜로와 보이는 그 말들에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속아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성경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벗어난 사람들의 최후는 죽음인 것을…
이 세상은 저주를 받았고, 우리는 저주 받은 세상에서 세상의 미움과 언제든지 우리의 목숨을 가져가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노리고 있는 사탄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 처럼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죄성을 이용해 이 말씀의 검을 무디게 하려 하는데, 하나님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마태복음 5: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요한 계시록 22:18~19>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