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을 죽인 가인과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
아담과 하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사탄을 짓밟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여자의 후손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자마자 가인을 낳고 그를 하나님이 주신 여자의 후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인의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을 낳다 혹은 하나님과 함께 낳다 입니다.
또 이후에 가인의 동생 아벨을 출산합니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는 아벨을 보고 실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벨의 이름의 뜻은 원어로 허무, 없음 이란 뜻입니다. 누가 자식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했을까요?
하지만 이 아벨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이 설명하려는 것이 이 역사는 율법과 은혜가 대결하는 곳이란 것을 기억하시고 가인을 율법의 대표로 아벨을 은혜의 대표로 가정하고 읽어주시면 이해가 더 쉬우실 것 같습니다.
성경은 아벨이 양을 지키는 자였다고 얘기합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은 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였기 때문에, 이 당시에 양을 지켜야 할 이유가 크게 없었습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죠. 왜 아벨은 양을 쳤을까요? 두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이 만들어주셨던 가죽옷을 만들어 입기 위해서 였을 것이고, 두번째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양을 치는 목자로 표현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1>
가인과 아벨의 제사
그러던 어느 날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립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던 자였기에 자신이 기른 열매를 헌물로 가져왔고, 아벨 역시 자신이 키우던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 중에서 가져 왔습니다. 이 양 떼의 첫 새끼와 기름 역시 무언가를 예표합니다. 무엇일까요?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한복음 1:29>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고린도전서 15:23>
왕좌의 한가운데 계시는 어린양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생수의 샘들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7:17>
하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왜였을까요? 성경은 아벨의 제사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느니라. <히브리서 11:4>
아벨의 제사에는 어떤 믿음이 있었을까?
과연 이는 어떤 믿음을 얘기하는 것일까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자, 가인은 엄청나게 화를 내고 결국은 아벨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받을 만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당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9~18:14>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고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 당연하게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이고 또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더 힘들고 어려운 종교 행위들을 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의로웠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리는 어땠나요? 자신에게는 내세울것이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에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여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긍휼함에 기대어 나의 죄가 용서 받기를 구하는 것을 “믿음” 이라고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디도서 3:5>
자신의 의로 드린 가인의 제사
가인은 당시에 아주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양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곡식입니다. 저주 받은 땅에서 땀 흘려 갈은 곡식은 당시에 누가 봐도 탄성을 지를 만큼 대단한 헌물이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저렇게 귀한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가인의 행위를 칭찬했을지 모릅니다.
그에 비해 아벨은 자신의 제사가 받아 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에 양은 쓸모 없는 동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양을 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또 양을 바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이 바친것은 예수 그리스도 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쓸모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한 인물이며,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시 최고의 극형인 십자가 형에 처한 예수 그리스도 유대인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최고 저주를 받은 자 즉 나무에 달린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세상의 죄를 드러내는 예수님을 죽이듯 아벨을 죽인 가인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내가 어떻게 하랴? 하니 그들이 다 그에게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매총독이 이르되, 어찌된 일이냐,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거늘 그들이 더욱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더라. <마태복음 27:22~23>
그러자 가인이 분노하여 아벨을 죽입니다. 아벨만 없으면 자신의 곡식이 믿음만 없으면 자신의 행위가 더 빛이 나고 영광 받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았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해주지 않던 예수님을 죽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의로움 때문에 자신들의 인기가 떨어지고 자신들의 불의가 들어나자, 자신들의 행위 속에 감추어져 있던 어두움을 회개하는 대신 자신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빛을 없애 버립니다.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말이죠.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은 내 스스로 착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인간들의 가능성을 소망삼아 인간도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이 땅에 인간들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어보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우리에게 믿음만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값싼 복음을 설파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는 크리스챤들을 조롱하고 무시합니다. 지금도 가인과 같은 사람들은 아벨을 계속해서 죽입니다. 앞으로도 인간의 불가능함을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아벨과 같은 사람은 무시 당하고 조롱 당할 것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은 지금도 조롱당하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손가락질 당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로마서 3:23~24>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