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우리는 매일 매일 선택을 하면서 삽니다. 일을 나가기도 하고, 밥 대신 라면을 먹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 무엇을 하면서 놀 것인가 고민하기도 하고,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7>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란 말씀은 진리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부정해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 간 뇌 과학의 발달을 통해서 인간은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존 템플턴 재단에서는 자유의지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에 수백만불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 수 많은 진화론자들 특히 물질주의자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근거로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걸까요?
평생 자유의지에 대한 진리를 좇아다녔던 사람
뇌 과학을 전공한 Closer to Truth의 호스트 로버트 큔 박사는 평생 자신이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해 알아봤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수많은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을 인터뷰 하며 진지하게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해 질문하고 고찰합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철학자 자론 래니어의 주장에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를 행복하게 하는 답을 얻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진리를 알고 싶을 뿐 입니다!” [^1]
저는 로버트 큔 박사님의 이 진지한 자세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가장 커다란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인지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근거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인간의 뇌에 대해 크게 두개의 이론을 갖고 있습니다. 결정론(determinism)과 비결정론(indeterminism). 두 이론 모두 물질이 이 세상에 있는 전부이다! 라는 공통된 가정을 하고 있지만 결정론은 원자로 구성된 인간의 뇌가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 즉 뇌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움직임에 따라 나의 생각이 결정된다는 이론이고, 비결정론은 양자역학을 적용시켜 그 물질의 움직임이 무작위 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다만 많은 과학자들은 미시 세계에 적용되는 양자 역학이 자유의지의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글에서는 비결정론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물질이 이세상의 전부인 신경 과학자들의 세계관에서 뇌는 반응을 하는 존재이지 어떠한 생각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옆의 도표를 보시면 우리의 의식적인 행동은 눈이나 피부 같은 감각 기관의 자극이 감각 신경을 통해 대뇌를 자극 시키고 이에 따른 반응에 의해 우리가 움직임을 갖는다고 설명 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뇌는 어떤 방법으로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을지 순대국을 먹을지 인격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매커니즘은 없을까요?
네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정을 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의 능력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무신론의 4대 기수중 하나인 샘 해리스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결정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결정할지를 결정할 수 없을 뿐입니다.” [^2]
리벳의 실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실험이 있습니다. 1979년 벤자민 리벳의 실험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들은 리벳의 실험을 물질주의 안에서만 해석을 하기 때문에 제한적인 결론을 내는 것을 넘어서 실험의 결과를 왜곡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 실험의 중요한 결과 중의 하나를 언급조차 안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의 내용과 과정에 대해서는 박주용 교수님이 써주신 글을 링크해 드리니, 이를 읽어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실험 결과를 정리하면, 피실험자들이 정해진 시간 내에 하지만 스스로 원할 때에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이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도를 인지한 시간보다 뇌의 반응인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가 먼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사람들은 피실험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기 이전에 뇌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들어 인간이 뇌에 종속되어 있으며 뇌에서 주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존재라고 성급히 결론 내립니다. 물론 이 결론에는 크게 두 가지의 오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많은 이들은 리벳의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이 자신의 준비전위에 대해 거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만약 나의 뇌가 나에게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명령했는데, 그 명령을 거부하도록 하는 의지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요? 나의 뇌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 손가락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가 그 명령을 거부하도록 만든 것일까요?
두번째로 이들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가정만을 하기 때문에, 물질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예를들어 고대로부터 있다고 생각되어진 영혼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뇌의 화학 반응이나 뇌파가 물리법칙에 따라 발생했다는 결론밖에 내리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비상식적인 결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인것 처럼 둔갑하여 대중들에게 알려집니다.
자유의지 실험에 대한 벤자민 리벳의 결론
그렇다면 벤자민 리벳은 이 실험의 결론을 어떻게 내렸을까요? 참고로 리벳은 영혼이 있다는 두번째 가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혹은 적어도 자유의지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립니다.
“거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이번 연구의 피실험자들은 의식적인 바램이나 의도가 나타났지만 자신들이 의도를 누르거나 거부했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의식적인 자유의지의 역할은 임의적인 행동을 일으키려는게 아니라 행동을 할것인지 여부를 컨트롤 하려는 것이 된다…
이런 류의 자유의지는 소위 말하는 ‘스스로를 조절’ 한다거나 10계명의 ‘하지 말라’라는 명령같은 종교나 윤리적 구조와 일관성을 갖는다….
자유의지에 대한 내 결론은, 누군가가 비결정론적인 관점에서 자유하다는 것은 이를 부정하는 과학적인 결정론보다 좋은 것 같다. 결정론자들이나 비결정론자들 모두가 갖는 추론할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왜 자유의지가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일수 없는가?
(정말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라도) 이런 관점은 적어도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우리의 깊은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포용할 수 있게 할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물리 법칙에 의해 조종당하는 기계로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3]
수 많은 과학자들이 리벳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알리고 싶은 부분만 알리고 있을 뿐 입니다.
미디어들이 어떻게 미혹하는가?
이런 미디어의 행태는 다른 기사들에서도 드러납니다.
자유의지 부정하는 뇌과학 실험이라는 신문기사에는 [^4]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이런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인즈 교수 연구팀은 14명의 실험 대상자에게 리벳 박사의 실험처럼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각 하나씩 버튼을 누를지 결정하도록 했다… 이 피질 부위를 통해 오른쪽 버튼을 누를지 왼쪽 버튼을 누를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다. 예측 성공률은 60% 였다. 중요한 점은 최대 10초 전에 이 피질부위에서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하인즈 교수는 “예측은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혹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지도 않고 제목만으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근거는 얼마나 부실합니까?
확률적으로 왼손과 오른손 중 어떤 버튼을 누를지에 대한 예측은 저런 기계가 없어도 50%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단지 10% 더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는 이유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또 이 예측과 자유의지와는 무슨 관계일까요? 만약 제가 누군가의 결정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이 자유의지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물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추어 결과를 해석할 뿐이지, 그 해석이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런 기사를 보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들이 어떤 가정을 하고 있는지, 어떤 원리를 통해 도출해 낸 결론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결론만 받아들입니다.
영혼이 존재함을 가정한다면 리벳의 연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왜 물질주의자들은 리벳의 연구가 자유의지를 부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이는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뇌파를 만들어 낼 주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뇌파 혹은 리벳의 표현에 의한 준비전위가 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밖에 추론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질주의가 맞다면 그들의 추론은 논리적입니다. 우리의 뇌는 물리 법칙을 벗어난 어떤 생각이나 명령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갈비를 먹고 싶은지 회를 먹고 싶은지,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숨이 넘어갈것 같지만 참고 달려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주체가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지 물질인 뇌가 물질을 주관하는 물리법칙에 의해 정해져 있을 뿐입니다. 물질주의가 맞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상 수상자 데이빗 그로스는 자유의지는 독특한 존재(Unique agent) 즉 ‘나’라는 독립적으로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할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1]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의식 혹은 영혼의 존재 여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를 가정한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데이빗 그로스가 자유의지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나’라는 존재 즉 의식의 주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리벳의 실험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라는 피실험자의 뇌의 명령이 물리법칙이 아닌 영혼의 의지에 의해서라고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이원론 상호 작용주의자 (Dualist-Interactionist)들이 예측하는 그대로 입니다.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신경 과학자 존 에클스 경은 마음이 뇌를 도구로써 사용하며 영혼의 결정이 동시에 사람들의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5]
이는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의 신경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린 그림으로 축구 같은 운동경기를 보시면, 상대방의 태클이 들어감과 동시에 선수이 고통을 느끼는게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표정은 이 보다 더 느리게 일그러 집니다. 마찬가지로 영혼과 상호작용을 하는 내 육신이 자유의지를 통한 영혼의 결정을 동시에 의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무신론자들도 인정하는 바 입니다. 마시모 피굴리우치나 알렉스 로젠버그의 경우 리벳의 연구 결과를 과학적인 추론만으로 성급하게 자유의지를 부정한다고 하는 자들을 비판합니다. [^6] [^7] 이들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으며 로젠버그의 경우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진짜 결정은 자유로운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나의 뇌의 원자는 수학을 할 줄 아는가? – 결정론자들의 모순
그러므로 리벳의 실험은 이원론자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피실험자들이 상황에 맞게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처음 Closer to Truth의 로버트 큔 박사의 소원 즉 자신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답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다는 발언이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가장 커다란 증거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그 근거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어떠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의지나 그 사건의 진실성 여부에 있지 않고, 물리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환각을 일으켜 현실과 이상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은 결정론자의 이론에 의하면 정신병이 아니라 진화의 한 과정 가운데 있을뿐 입니다.
누군가 1+1을 2가 아닌 3이라고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뇌를 구성하는 원자는 그리고 그 원자를 주관하는 물리 법칙은 수학을 할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정론자에 따르면 사람은 진리를 믿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뇌가 믿으라고 결정한 것을 믿습니다. 세종대왕이 알파벳을 만들었다는 정보가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물리법칙은 이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그것을 믿어야 하고 어떤 이는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로버트 큔은 진리가 무엇이던 그것과 관계없이 물리법칙에 의해 뇌가 받아들이라고 정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결정론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커다란 모순입니다. 이는 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각이 원자의 움직임에 의해 결정된다면…
신다윈주의 진화론을 발전 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진화 생물학자 존 할데인은 [^8]
내가 볼때 마음은 거의 확실하게(immensely unlikely) 물질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만약 나의 사고 과정이 내 뇌에 있는 원자의 움직임에 의해 결정된다면, 나는 나의 믿음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어떤 이유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화학적일지 모르나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뇌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사실로 가정할 이유가 없다.
굉장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이 이야기 입니다. 카메라가 자신에게 날라오고 있는 공을 보고 손상이 가지 않기 위해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작년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두었던 알파고가 살인 현장을 목격하면서 경찰에 신고해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프로그래머가 그에 상응하는 명령체계나 지식 습득 능력을 입력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입니다. 그리고 많은 무신론자들은 나의 생각 과정이 신경 세포와 관련 분자의 조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떻게 우연한 분자의 조합, 물리법칙에 의한 분자 활동이 논리적인 생각을 해내고 결론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도 못하고 모순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리벳의 실험 중에 사람들이 상황에 맞게 요구를 받은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다는 것은, 또 우리가 매일 살아가며, 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상황에 적합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물질주의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 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모순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 합니다.
내가 살인을 해도 나의 과실이 아니다
2016년 6월 The Atlantic에서 재밋는 기사가 소개 됩니다. 제목은 “자유의지란 없다. 하지만 있다고 믿는게 훨씬 좋다” [^9]
기사를 간추리면 과학자들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도덕적 해이가 심하게 나타난다는 내용입니다.
2002년 두명의 심리학자들이 두개의 대학교에서 한 반에는 자유의지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다른 반에는 자유의지에 대해 중립적으로 가르쳤더니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 배운 학생들은 컨닝도 많아지고, 일부로 돈을 훔칠수 있는 기회를 줬을때 돈도 더 잘 훔쳤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의 존엄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과 강아지와 지렁이는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됩니다. 셋 다 단백질 덩어리인거죠.
진화론자들은 우리의 삶이 허무하지 않으며 인생을 살면서 삶의 목적을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단백질 덩어리에게 삶의 목적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그들에 의하면 나는 내 삶의 목적도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처지인데 말이죠.
그리고 그런 단백질 덩어리를 죽이는 것은 왜 도덕적이지 못한 일입니까? 살인이란 행동 역시 ‘나’란 존재의 선택이 아닌 뇌가 물리법칙에 의해 명령한 것을 이행한 것 뿐인데요.
여러분은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총을 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로봇에게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난을 하실수 있습니까? 로봇이 도덕적이지 못한건가요? 아니면 로봇을 만든 사람이 도덕적이지 못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눌리면 핵무기를 발사하게 만들어진 버튼에게 무고한 수십만명에 대한 죽음의 책임을 지울수 있습니까? 버튼이 도덕적이지 못한건가요? 아니면 그 버튼을 누른 사람이 도덕적이지 못한겁니까?
무신론, 진화론, 물질주의는 인간은 버튼에 불과하며 물리법칙에 의해 우연히 생겨난 뇌란 존재가 여러가지 버튼을 눌러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죽인 히틀러도 자의가 아닌 뇌의 활동에 의한 것이며, 조선의 처녀들을 성적인 도구로 사용한 일본인들도 그들을 팔아 넘긴 친일파들도 뇌에 의해 조종을 당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꼭 자유의지를 들먹이지 않아도 무신론의 세상에 객관적인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은 그냥 물리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행동되고 생각 되어지도록 만들어 졌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증거
만약 당신이 1+1=2가 정답이며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정론자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소녀들을 속여 성착취를 하거나 포로들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은 일제나, 지금도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사창가에 팔아 넘기고 이득을 얻고 있는 인신매매 조직들이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물질주의자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단지 자신의 유전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정말로 나의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고 이 아이를 위한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이런 감정이나 행동들은 나의 뇌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물리 법칙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정말 무신론자들의 주장대로 원자로 구성된 내 뇌의 화학작용의 산물이라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고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권도 인간의 존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로봇이나 컴퓨터 같은 분자 기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는 진리가 있고, 정의가 있으며 도덕이 있고, 사랑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인류에게 혹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나’라는 자인식 또는 의식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결론이 창조주가 부여한 영혼 혹은 그와 상응하는 체계가 이 세상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창조주가 계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유의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부여 될 수 있었을까요? 데이빗 그로스의 주장처럼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가장 자연스럽게 영혼의 존재를 떠올릴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인도 아니였던 당대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나’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의식의 존재는 물질주의자들에게는 너무도 풀기 힘든 미스테리이지만, 유신론자에게는 특히 성경을 진리로 믿는 저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창세기 2:6>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고 영혼을 부여하셨다는 개념은 이해하기도 쉽고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분명히 자신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는 물질주의자도 부정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 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느낌이 착각이라는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세계관과 부합하지 않는 현실 세계의 현상들을 설명하지 못해 미스테리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모든 미스테리는 전능한 하나님이 계시며 성경이 사실이라는 단 하나의 가정만으로 해결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하나님은 없다며 성경에 항복하지 않고 이 미스테리를 하나님 없이 풀어보겠다고 지식의 선악과를 매일 먹고 또 모두에게 이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선포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시편 14:1>
그리고 그 성경 말씀은 진리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혀놓고는 너무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들이 미스테리라며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습니까? 그 미스테리에 성경의 하나님을 대입해 보십시오. 모든 미스테리에 대한 답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