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요? 여러분은 성경을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을 드리면 많은 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답하십니다. 물론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 책이며 우리는 이를 간과함으로 성경을 잘못 해석하거나 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를 깨닫지 못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너무나도 큰 충격과 실망을 안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 옆에 예수님이 다가 오시며 성경을 가르쳐 주십니다.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누가복음 24:27>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누가복음 24:32>
이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었고 구약 성경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모세 5경부터 시작해서 모든 구약 성경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뜨거운 열정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성경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 성경이 진짜 무엇을 말하는 책인지를 이해하자 변화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12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셨을까요?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그때에 그들의 지각을 여사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 <누가복음 24:44~45>
역시 구약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역, 그리고 십자가에 대한 부분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것들을 부활하신 후에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24:44~45절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 즉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된 것들을 그 전에도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당시에 알아듣지 못했고 지금은 알아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를 예수님께서 지각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성경 말씀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각을 열어 주실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하며 성경을 읽을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러므로 아무도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으로 인하여 또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 <골로새서 2:16~17>
초대 교회때 신자들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성회로 모이는 유월절이나 월삭, 안식일 등을 지키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유월절, 월삭, 안식일들은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 그림자를 만드는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고 설명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빛이 우리에게 비치면 나의 모습대로 그림자가 집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의 모양을 보고 진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기 전 이집트는 10가지 재앙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재앙인 맏아들을 죽이는 재앙을 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이는 죽음으로 부터 우리를 구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자체에만 몰두했지 그 절기가 주는 교훈과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히브리서에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그렇다면 그 그림자의 본체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였나이다,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0:7>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히브리서 10:10>
그 그림자의 본체는 십자가 위에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요한복음 5:39>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어 여자 하와를 만드시고 그 둘을 결혼하게 하여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창세기 2:22~24>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이며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느니라… 우리는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니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28~32>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했다고 말하며 하와를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고 부르는 아담과 오버랩 시킵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을 ‘큰 신비이며 이 관계가 아담과 하와가 아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즉 창세기 2장의 말씀은 물론 우리의 결혼 생활도 예수님 그리고 그분의 신부되는 성도들에 대한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결혼 생활을 끝내거나 엉망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를 보는 세상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보여주는 그림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말이나 생각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크리스천들은 결혼을 하기 전에 성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드러냄으로 또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내 배우자만을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섬김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그림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변화
성경은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과 그 분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 은혜, 긍휼에 관한 책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우리는 그 분이 얼마나 의로우신 분인지를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의롭고 사랑이 많으신지를 깨닫게 되면 될 수록 내가 얼마나 죄로 가득하고 사랑이 없는지 역시 깨닫게 됩니다.
이는 마치 평소에 동네에서 가장 돈이 많아서 돈 자랑을 하던 사람이 빌 게이츠 앞에서는 돈 자랑을 할 수 없으며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갈수록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며 죄로 가득한지를 깨닫습니다.
그가 초반에 쓰던 고린도 전서 15장 9절에는서신에는 자기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이며 크리스천들을 박해했던 자기 죄 때문에 사도로써의 자격이 없다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쓴 에베소서 3장 8절을 보면 그는 자기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자기 자신을 인식합니다.
그는 결국 순교하기 얼마전에 옥중에서 쓴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하시려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죄인 중에 가장 악한 죄인이 자기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기독교 부흥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기독교인이라면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 하나 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하나님의 법에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인간인지를 인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더 많은 사랑을 허락하십니다.
그 사랑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몽둥이로 맞고, 돌로 맞고 배가 파선되고 감옥에 갇히고 온갖 환란과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선교하고 전도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촛불이 꺼져가는 것 같은 위기의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도록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성령 충만함을 허락할 모든 기독교인들의 부흥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리고 성경을 읽으며 찾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열어주시는 성경에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