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타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세속화되어 쾌락과 자극적인 즐거움을 쫓아 살고있고, 우리의 영혼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원인도 모른채 우울증에 시달리고 허무함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합니다.
사람이 왜 타락을 하고 자살을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사람들이 진화론자나 철학자들에게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봅니다. 질문자들은 진지했지만, 우연이란 과정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간 존재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로부터 왜 우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벌레나 개나 인간이나…모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진화한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저 “나”가 존재하고 나에게 선택이 있다고 착각할 능력을 갖고 있는 우연히 만들어진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들어진 기계에 목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다릅니다. 불교에는 선악의 구분이 있고 삶의 고찰이 있습니다. 저는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한 법륜 스님의 답이 무엇인가, 더 나아가 부처님이 말하는 답이 무엇인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법륜 스님의 답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자에게 법륜 스님은 농담으로 설법을 시작하십니다.
“아기를 낳아봤는데도 왜 사람이 존재하는지 몰라요? 자기가 낳았으니까 존재하지, 자기가 안낳았으면 존재하지 않아요. (좌중 웃음)”
하지만 이는 진짜 답을 주기 위해서 한 농담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한 농담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은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
‘왜 존재하느냐란 질문은 망상에 속한다… 존재는 그냥 있는 것이고 주어진 것이다. 왜 사느냐 해서 사는게 아니다… 왜 사느냐라는 질문의 종착역은 자살이다. 사람이 왜 살지, 왜 살지라고 질문하면 죽게 된다. 왜냐하면 살 이유가 안나오기 때문이다… 존재는 이미 주어진 것이며 사는데는 이유가 없다.‘
라고 설명하십니다.
저는 그동안 불교에 대해 깊이 공부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불교가 무엇을 말하는 종교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법륜 스님의 이 답을 듣고 개인적으로 불교가 가진 깨달음의 깊이에 대해 많이 실망했습니다. 불교는 인간이 누구이며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종교임에도,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정의도 하지 못한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초가 없는 집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존재의 이유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의 존재 이유를 모른다면 ‘이것이 잘못되었다’ ‘저것을 해야한다’라는 기준도 잡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가 없다면, 인간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없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겠다는 목적을 갖고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던 내가 정한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비난할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예를들어 이완용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 호위호식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될 지언정, 왜 악으로 잘못된 일로 규정해야 하는 것인지 불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무신론이나 진화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법륜 스님의 논리라면 인간은 존재가 주어졌기에 그냥 사는 것일뿐 존재에 이유가 없으므로, 자살이 왜 잘못된 일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게 됩니다.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말은 ‘필요가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상태입니다. 어찌보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겁니다.
존재의 이유가 없이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면 다행인데, 괴롭고 슬프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끝내는 선택에 대해 스님의 설법은 그것을 막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계신겁니다.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말보다 더 암울한 말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무신론이나 불교를 포함한 모든 인본주의 사상들은 인간의 존재 목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왜 사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줍니다.
문제는 인간의 진정한 존재의 목적이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인간들이 가장 부정하고 싶은 ‘이 세상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라는 것입니다.
불교도 기독교도 이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다르게 분석합니다.
불교는 인간이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으며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실천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고, 기독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세상에 고통이 가득하고 인간은 그 죄를 스스로 이겨낼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논리적으로 불교의 사상을 전개시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이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불교인들이 주장하는)석가같이 완전한 열반에 이른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교내에서도 싯다르타가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얻어 열반해 부처님이 된 이후 2500년간 아무도 이같은 완전한 열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역사 내내 그렇게 고행하고 수행한 사람이 많은데도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도 없고 존재의 목적도 없는 인간은 동물처럼 그냥 사는 존재이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것입니다.
그에 반해 성경은 세상의 시작에 대해서도, 고통의 시작에 대해서도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해서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이 세상의 만물을, 특히 자신과 같은 형상의 인간을 만드셔서 교제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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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무엇을 만들때 목적이 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브리서 2:10>
주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드셨나니 참으로 사악한 자도 악한 날을 위하여 만드셨느니라. <잠언 16:4>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하거니와 하나님께서는 그것과 저것을 다 멸하시리라. 이제 몸은 음행을 위해 있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있으며 주께서는 몸을 위해 계시느니라. <고린도전서 6:13>
당연합니다.
인간이 차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스마트폰을 만든 이유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사용하여 이를 만든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세상을 만들었을까요?
문제는 성경이 인간은 모두 스스로의 하나님이 되어,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에서도 불교에서도 사탄교에서도 ‘너의 인생의 주인은 너’라는 분명한 메세지, 하지만 어떤 논리도 갖고 있지 못한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주인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며 나는 그 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한 두 가지 옵션
우리에게는 인간이 왜 사느냐에 대한 2 가지의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내가 사는 이유가 없다’라는 선택지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선택지입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의 입장에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입장에서 무엇을 선택해도 암울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선택이고 하나는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종처럼 부려먹으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인정한 자신의 백성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양자 삼으시고, 예수님께서 누리는 천국의 모든 것을 동일하게 누릴수 있도록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니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
저는 여러분이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없다’는 허무한 거짓말에 속지 않으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사람이며 단지 우리가 죄에 속박되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온 세상을 지으신 전능한 창조주를 섬기고 기쁘게 하는 고귀한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지키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커다란 상급이 있음을 믿으시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