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포도주를 만들어 주세요! – 요한복음 10-2강
예수님과 제자 다섯명이 마리아와 함께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쯤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기쁨이 상실되었고, 잔치가 끝났다는 것과 동일한 것 입니다.
이 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얘기합니다. 유대 사람들은 보통 수요일에 혼인 예식을 하고, 1~2주간 잔치를 벌이기 때문에 어마 어마한 양의 포도주를 준비했을 것 입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가 떨어져서 잔치가 파장이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얘기함으로 예수님께 기적을 일으킴으로 너의 메시아 됨을 나타내 보이라는 요구를 한 것 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쓰인 여자여 라는 단어 (γύναι)는 영어로 하면 Madam과 같은 존칭어 입니다. 하지만 이는 자식이 어머니에게 쓰는 단어는 아니였습니다. 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여자여 라고 불렀을까요?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육신의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안만드시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 얘기는 얼핏 들으면 물로 포도주를 안만드시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예수님은 결국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와 비슷한 상황이 또 나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아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을 나타내라는 동생들에게 예수님은 똑같이 내 때가 되지 않았으며 아직 명절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셔 놓고는 은밀히 명절에 올라 가심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고 만드시는 것과, 안가겠다고 하셔놓고 가시는 것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 속에 오늘 본문을 여는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 7장 4절에 보시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이나 7장에서 마리아나 형제들이 요구 한것은 “예수님 기적이라도 일으켜서 스스로가 메시아 인것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라는 것 입니다. 주님은 그런 요구에 들어 줄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성전에 올라가심을 통해 하셔야 할 일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종말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설명하셔야 했고, 절기때 마다 성전에 올라가셔서 율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 내셔야 했습니다. 왜 일까요? 율법을 다 지켜서 우리에게 덮어 씌워 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시면 안되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왜 안올라가겠다고 말씀하셨냐면, 형제들이 얘기한 나의 힘으로 나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들이 요구하는 “하나님 당신을 드러내서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고 내가 당신을 믿게 해주세요.”라는 요구를 거절하시면서도 “나는 너희들의 그런 요구와는 상관 없이 나의 일을 할 것이다.”가 이 본문의 내용인 것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마리아와 형제들의 요구는 오늘날 교회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내 눈앞에 나타나봐, 기적을 일으켜 봐~ 예수를 믿는 나를 행복하게, 부자되게, 건강하게 만들어 줘봐! 그러면 믿어줄게!” 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요구에 예수님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며, 오직 예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나타나 그분의 방법으로 그분을 계시하십니다.
심지어 마귀도 똑같은 요구를 합니다. 40일 금식하신 예수님께 가서 너의 힘으로 네가 메시아임을 증명하라! 돌로 떡을 만들고, 성전에서 뛰어 내려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고 진짜 메시아임을 알고 쫓아올 것이다! 라며 충동질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혹시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혹은 믿고 싶은 이유가 ‘예수님’으로 부터 축복의 포도주를 얻기 위해서라면,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에게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 반문 하실지도 모릅니다.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하나님이 심판날 우리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이야기 이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 때문에 오신 분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지,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의 죄로 인한 오염과 부패를 정결케 하시는 분 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도 하지 않고, 오직 나의 소원, 나의 행복, 나의 포도주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인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포도주를 구하는 마리아의 요구에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약간 엉뚱한 대답 같지만 이 안에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내포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내 때는 십자가의 때 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내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내 때가 가리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였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분을 잡고자 하나 아무도 그분께 손을 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요한 복음 7:30>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성전 보고에서 이 말씀들을 하셨으나 아무도 그분께 손을 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요한 복음 8:2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요한 복음 12:23>
보라, 너희가 흩어지되 각각 자기 길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둘 때가 오나니 참으로 이제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 <요한 복음 16:32>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옵소서. <요한 복음 17:1>
보시다시피 성경에서 말씀하는 때(ὥρα) 는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 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흥을 돋우는 포도주를 만들어주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 하러 오셨다는 것이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 라는 말 속에 들어가 있는 것 입니다.
마리아는 이 땅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혹은 흥을 깨지 않기 위해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내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는 십자가를 지러 온 사람입니다. 라고 답을 하신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그리스도 인은 아닙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기도하고 있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입니다. 그 신앙의 목적이 포도주에 있는 사람들은 그 포도주가 주어졌을때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 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단지 끝없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끝없이 생겨나는 목적에 의해서 혹은 내가 얻은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붙잡고 있을 뿐이지, 그들은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인 것 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성도들에게 이 모든것을 다 빼앗아 가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니? 라고 묻고 계시는 것 입니다.
힘을 추구하는 자칭 그리스도 인들은 자기의 삶에 물질이 채워지고 과학 문명의 발달로 편안함이 찾아오면 자꾸 자기의 삶 속에서 주님을 미뤄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이 살기 좋아지면 좋아질 수록 예배 당은 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주어지면 절대 하나님 안찾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돈이 주어지면 그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어떻게 될까봐 겁나서 완전히 떠나지는 않더라도 언제든지 골프치러 가고 싶으면 가고, 여행가고 싶으면 가며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복을 추구하며 나오지만 진짜 복은 영생인 것 입니다. 그 영생을 확인하는 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