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서 4장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절에서 6절까지의 영의 분별 그리고 7장부터 21장까지의 ‘사랑’에 대한 계명…
예수를 전하는 모든 소식이 복음은 아닙니다
요한은 우선 영을 분별해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습니다. 당시에 복음을 흐트리려는 이단들이 많이 나와 있었고, 지금처럼 성경이 있었던 때도 아니였기에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경고했던 것 처럼, 영에 대한 분별을 얘기합니다.
그가 제시한 영 분별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 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라는 의미만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딘가에서 오셨음을 또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 것을 승리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승리는 사탄을 혼쭐을 낸 것도 아니고 세상을 정복한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복음을 믿은 자체가 승리인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적그리스도들은 세상으로 부터 난 사람들 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소유의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한 복음 10:27~28>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들은 그 음성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것이 어느 한 시점에 대해 적용될 수는 없겠습니다. 가령 하나님의 계획에 60세에 구원을 얻을 한 사람이 그의 30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고 이해할 수 있는가 아닌가? 우리는 그것으로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의 사명은 사랑
이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들이 해야할 사명들을 말씀하시며 그 사명은 오직 하나 사랑 임을 얘기 합니다. 요한은 이 ‘사랑’에 대해 크게 세가지를 얘기합니다.
첫번째, 사랑은 나의 ‘사랑’을 받는 자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두번째, 사랑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세번째,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 해야 한다.
17절에 요한은 우리에게 사랑이 주어진 이유는 심판 날에 담대하게 하려는 것임을 설명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지옥의 두려움이 남아 있다면 그 분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이 아닌 것 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서 내가 지옥에 가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살고도 심판받지 않을수 있을까?
하나님의 복음은 완전하여 나의 어떤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십니다. 나의 행위를 보는 사람, 나의 죄로 나를 판단하려는 사람을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으려는 사람이라며 경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시리라. 내가 할례를 받은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니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느니라. <갈라디아서 5:1~3>
하나님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떨쳐 버리십시오
내가 지옥에 갈까 두려워 하는 자는 나의 행위를 보는 사람 입니다. 하지만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 의롭게 되려 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나의 선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들이며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는 자들 입니다. 이들은 승리한 자들이 아니라 패배한 자들 입니다. 이 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난 자들 입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은 더 이상 나의 죄된 육신이나 마음을 바라 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사랑에 의지 합니다. 더 이상 지옥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는 순간 그 사랑을 의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 1서 4:10~11>
100억원의 빚을 탕감 받은자가 나에게 100원 빚진 사람을 채근할 수 없습니다.
100억원의 빚을 갚아주신 그분이 나에게 너도 이와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100억원의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최선을 다해, 내가 가진 재산대로 내게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 줄 것 입니다. 그게 100억원의 빚을 갚아주신 분의 명령이라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우리가 그분께 받았느니라. <요한 1서 4: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태 복음 22: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