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과 그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광야를 떠돈 백성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전하게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들을 치려고 따라오던 이집트 군대들을 물속에 수장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홍해를 두 쪽으로 가르신 분에게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신 분에게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홍해 속에서 뒤엎으신 분에게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시편 136:13~15>
시편 136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하지만 홍해를 가르신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집트 군대를 몰살시키신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감사의 찬양은 무엇이 되는걸까요?
출애굽 후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십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탐꾼들을 보내지만 그들은 가나안 땅의 장대한 사람들을 보고 겁이 나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군대를 물리치셨던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자기의 판단을 신뢰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나의 판단과 이성보다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와 순종이 우선되길 바라신다는 것 입니다.
불순종의 백성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주신 긍휼의 하나님
광야에서 떠돌면서 목이 마른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을 지팡이로 치라고 명하십니다.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모세가 쳤던 반석으로 추정되는 돌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내산 근처에 위치한 이 바위에는 보시는 바와 같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갈라짐이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근처는 사막 지역임에도 지금도 거대한 물이 흐른 흔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이후 성경의 기록대로 가나안 땅에서 정복 전쟁을 벌였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을까요?
가나안 땅의 정복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들
주류 고고학계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고고학자 노만 프랭클린은 거대한 인구가 40년 동안 이동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또 이스라엘 핑켈스타인 역시 여호수아서에 구체적으로 기록된 가나안 땅 주요 도시들의 발굴작업이 끝났다고 얘기하며 성경에 나온 정복 전쟁을 지지하는 어떤 종류의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요 도시들의 발굴이 완료 되었지만) 후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에 대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글들을 통해 출애굽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류 고고학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출애굽을 전혀 다른 시대로 가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20세기 초반 에른스트 셀린이 이끄는 독일팀과 존 가스탱이 이끄는 영국팀이 여리고성의 발굴을 시작했고 이내 그들은 성경에 부합하는 여리고 성 파괴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후 캐서린 케년이 발굴에 합류하고 여리고성의 파괴가 이스라엘 출애굽 훨씬 전이라는 연대 측정 결과를 제시하면서 주류 고고학계가 캐서린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캐서린 케년은 정복 전쟁이 후기 청동기에 있었을 거라고 가정했는데, 그 시기에 여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었죠.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대한 여리고의 성벽을 일곱 바퀴 돌아 무너뜨렸다는 성경의 이야기와 맞지 않았습니다.
과연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전에 파괴되었을까요? 가나안 땅의 연대는 중간 청동기와 후기 청동기로 나뉩니다. 고고학자들은 중간 청동기 직후에 가나안 땅의 주요 도시들이 갑자기 파괴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단, 성들을 정복한 민족이 이스라엘 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죠. 그렇다면 여리고 성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완전하게 무너져 있는 철옹성 – 여리고성
고고학자들이 1950년대 여리고성을 발견했을 때 도시가 흙으로 만든 거대한 성벽에 둘러 쌓여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성벽은 굉장히 뚫기 힘든 이중으로 된 방어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최소 4.5m 높이믜 돌로 만들어진 옹벽과 진흙 벽돌로 된 연장 성곽 그리고 이 뒤에 가파른 비탈에 매끈한 회반죽으로 만들어진 성벽이 있어,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 위에 7.5m 높이, 3m 두께를 가진 주 도시 성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멸망했고, 옹벽의 기초를 포함해 진흙 벽돌까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버렸습니다. 캐서린 케년의 발굴 리포트는 이를 아주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후 적들은 도시에 불을 질렀으며 케년은 도시안에 있는 벽과 건물들이 불에 타기 전에 무너진 것도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아주 높은 온도에서 탄 아주 두꺼운 층을 발견했기에 부정할 수 없는 해석이었죠.
이는 성경에 나와 있는 순서 그대로 입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매 백성이 그렇게 외치니라.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납작하게 무너져 내리므로 백성이 각각 곧장 자기 앞으로 나아가 도시로 들어가 도시를 점령하고 <여호수아 6:20>
그들이 도시와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불로 태웠으나 은과 금 그리고 놋과 쇠 기구들은 주의 집의 보고에 두었더라. <여호수아 6:24>
집집 마다 곡식으로 가득차 있는 항아리들이 어떻게 성경을 증거하는가?
그리고 도시 내 거의 대부분의 집들에 많은 항아리들이 곡식들로 가득 차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이는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성경에 부합하는 발견입니다.
첫번째, 가득찬 저장 항아리는 추수가 얼마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기록은 여리고성의 정복이 유월절 직후 즉 봄에 있었다고 기록하며, 요단 계곡에서는 곡물 추수를 봄철에 합니다.
두번째 , 가득찬 저장 항아리는 포위 기간이 굉장히 짧았거나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여리고성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방어를 갖춘 성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일입니다. 고대 시대에 이런 성을 정복하는데는 적어도 수개월에서 몇년이 걸렸을 것 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7일 만에 정복 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세번째, 당시에 곡식은 굉장히 귀한 자원이며 화폐처럼 사용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곡식들이 발견되었다면 이들을 정복한 군대는 모든 곡식들을 모아서 자신들의 군량미로 썼어야 합니다. 특히 캐서린 케년은 여리고 성이 기원전 1,550년 쯤 이집트에 의해서 파괴되었다고 추론했는데, 당시에 이집트의 군대가 가나안 땅에 왔다는 증거도 없거니와 이집트는 자신들이 정복한 도시에서 곡식을 얼마만큼 약탈했는지 자세히 기록할 정도로 약탈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게 이집트 군대라면 이렇게 많은 곡식들은 당연히 사라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리고를 무너뜨린 것이 이스라엘이라면 이렇게 많은 곡식들이 남겨져 있다는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에 있는 것들 중 아무것도 약탈하지 않도록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반드시 저주받은 물건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멀리하라. 너희가 저주받은 물건 중에서 취하여 너희 자신을 저주받게 하며 또 이스라엘 진영을 저주거리로 만들고 괴롭게 할까 염려하노라. <여호수아 6:18>
성경은 오직 아간만이 이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었으며 그외 모든 백성들은 이에 순종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시킨 여리고성이 어디에있던 발굴이 되었다면, 그곳은 약탈의 흔적이 없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발굴된 여리고성은 정확하게 그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입증하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쪽 성벽
성경은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음을 기록합니다. 정탐꾼들은 성벽에 살고 있던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죠다. 정탐꾼들은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칠때 라합과 그의 가족들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정복이 시작되면 창문에 주홍색 끈을 매달아 놓아야만 살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에 라합이 창을 통해 그들을 줄로 달아 내리니라. 그녀의 집은 고을의 성벽 위에 있었으므로 그녀가 성벽 위에 거하였더라. <여호수아 2:15>
1913년에 쓴 에른스트 셀린의 리포트에는 모든 지역의 성벽이 다 무너져 내렸지만, 도시 북쪽에 있는 단 하나의 아주 짧은 구간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음을 기록합니다. 재밋는 것은 아래쪽 도시 성벽과 위쪽 도시 성벽 사이에 집들이 지어져 있었고, 그 집들 중 일부는 아래 도시 성벽에 딱 붙여서 지어졌다는 것 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지역이 라합이 살았던 곳이며 하나님께서 이곳만은 무너뜨리지 않으심으로 라합과 그의 가족들을 살리셨음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증거는 고고학적으로 여리고는 멸망 이후 오랜 시간동안 다시 개발되지 않고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 역시도 여리고 성을 다시 세우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 합니다. 성경은 시간이 많이 흐른 아합의 시대에 여리고 성을 다시 세운 히엘이 그 저주대로 자신의 맏아들과 막내 아들을 잃었음을 기록합니다.
그때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엄히 명하여 이르되, 일어나 이 도시 여리고를 건축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그가 그것의 기초를 놓을 때에 자기의 맏아들을 잃고 그것의 문들을 세울 때에 자기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 6:26>
그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더니 주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따라 그가 그것의 기초를 놓을 때에 자기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고 그것의 문들을 세울 때에 자기의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더라. <열왕기상 16:34>
여리고성 이외에 다른 정복 도시들에서 나온 결정적인 증거
성경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여리고 성에 있는 물건을 건들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아간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이성의 정복에 실패하지만, 아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고난 이후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며 많은 도시들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솔의 왕 야빈은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왕들을 모아 이스라엘에 대항하려 합니다.
하솔 왕 야빈이 그 일들에 대하여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또 산지의 북쪽과 긴네롯 남쪽의 평야와 골짜기와 서쪽으로 도르의 경계에 있던 왕들과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의 헤르몬 밑에 거하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그들이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는데 사람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매우 많았더라. <여호수아 11:1~4>
하지만 여호수아는 결국 하솔을 정복해 불로 태우고 야빈을 칼로 쳐 죽입니다.
하솔이 예전에는 그 모든 왕국들의 머리였으므로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 하솔을 빼앗고 그것의 왕을 칼로 치니라. 그들이 그 안에 있던 모든 혼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숨 쉬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그가 하솔을 불태웠으며 <여호수아 11:10~11>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여리고의 멸망과 같은 시대에 거대한 불에 탄 층을 발견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주 특별한 증거를 발견하는데요,
중간 청동기 시대에 있는 고대 하솔의 왕궁에서 바로 ‘야빈’이라고 불리는 왕이 소유했던 석판을 발견한 것 입니다. 고고학적으로 이는 너무나도 중요한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나 있는 동일한 이름이 있는 석판이니까요. 일반적으로 발굴된 물건들에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발굴된 흔적 역시도 해석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글자가 있는 증거, 특히 수천년전 쓰여진 성경에 나와 있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석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잘못된 연대를 붙잡고
그럼에도 주류 고고학계는 그들이 정해놓은 연대를 통해 성경을 비판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원전 12세기의 지층에서만 출애굽의 증거를 찾습니다. 그곳들은 후기 청동기엔 버려져 있던 땅으로, 무너뜨릴 성벽도 없고 정복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주류 고고학계는 대중들에게 어떠한 출애굽의 증거도 없다며 성경의 신뢰를 깎아 내립니다.
핑켈스타인이 얘기했던 발굴이 완료된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있는 주요 도시들은 모두 중간 청동기에 번성하고 있었으며 갑자기 짧은 시간동안 완전한 멸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데이빗 롤은 이에 대해,
“이집트에서의 체류에서부터 노예가 되고, 모세와 출애굽, 여호수아의 정복 모두 하나의 선으로 깔끔하게 정렬 되어있지만 (주류 고고학이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일찍 있는 것 입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패턴 오브 에비던스’ 시리즈를 통해 지금까지 제시해 드린 출애굽의 증거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목회자이면서도 홍해가 갈라진 것을 믿지 못하는 분들, 랍비이지만 출애굽이 없었다는 분들, 그리고 성경의 내용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분들… 그들의 생애 내에서는 이렇다할 증거들을 보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지식과 발견이 쌓여갈수록 저는 성경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신뢰할 수 있는 책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패턴 오브 에비던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다음글에서는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부분들, 지금 한국 교계에 팽배해 있는 진화론에 대한 문제,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