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영접하는 자 즉 예수의 이름을 영접하는 자 – 요한복음 강해 14-1강
오늘 공부할 본문에는 기독교의 주옥같은 교리들이 무수히 들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이 무엇인지 배웠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아낌없이 죽이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요한은 거듭남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것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음을 염두하고 오늘 설교도 들으셔야 합니다. 요한은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이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에 대해 무시무시한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가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독생자를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시지 않으셨다면 모든 인류는 하나도 빠짐없이 멸망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것 입니다.
요한이 멸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한 헬라어 아폴루미 (ἀπόλλυμι)는 요한이 아주 즐겨쓰는 단어 입니다. 요한 복음에만 10번이 나옵니다. 이 단어는 잃다, 상실하다, 없어지다, 파괴되다 라는 뜻 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 2서에서 이 단어를 마땅이 받아야 할 어떤 것을 잃어버리다! 라는 뜻으로도 씁니다.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그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으리라. <요한 2서 1:8>
여기서 ‘잃다’에 쓰인 단어가 아폴루미 입니다.
마가는 이 단어를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그분을 대적하여 어떻게 자기들이 그분을 죽일까 즉시 헤롯 당원들과 의논하였으나 <마가복음 3:8>
여기에서 ‘죽일까’에 사용된 단어가 아폴루미 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존속과 반대되는 멸망, 무너짐을 나타낼때 사용 합니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고린도전서 1:19>
여기서 무너뜨리다, 멸하다(개역 개정)에 사용 된 단어가 아폴루미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사용된 아폴루미의 뜻을 종합해서 요한 복음 3:16의 멸망하지 않고를 다시 풀어서 정리해 보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난 자들 중에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절망과 상실과 죽음과 멸망과 끊어짐 속으로 던져 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아폴루미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 입니다. 이를 성경이 다른 말로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를 믿는것 예수의 이름을 믿는것
그러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할 것 입니다. 요한은 예수를 믿는 것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고도 표현 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요한 복음 3:18>
그러면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를 풀어보면 알 수 있을것 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라는 단어와 구원이라는 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즉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다! 라는 뜻 입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1>
다시 정리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믿지 않고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생명 나무의 과실을 따 먹을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입니다.
특이한 점은 요한이 18절에서 이 땅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다라고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이 말은 심판을 받을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 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6>
이 구절에서 모든 인간들은 그릇 행하여 제길로 갔다라는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갔다라는 것이죠. 각기 제 길로 간 사람들 즉 멸망으로 떨어져야할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요?
멸망으로 떨어져야 할 사람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주께서 깨닫는 자나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시려고 하늘에서부터 사람들의 자녀들을 내려다보셨으되 그들이 다 치우쳐서 다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시편 14:1~3>
성경은 다윗의 입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더러운 자로 낙인이 찍혀 있음을 선포 합니다. 즉 역사 속에 존재했던 모든 자들은 다 멸망할 자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어떤 무리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 무리들이 떨어져야 할 멸망의 자리로 떨어뜨리고는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안에 백성들을 넣어 버리시고 정죄를 받아 버린자가 된 것 입니다. 그래서 일사부재리 즉 한번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다시 기소를 할 수 없다는 원칙에 의해 다시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것 입니다.
이제 아무도 우리를 기소할 수 없게 된 것 입니다. 이 것을 복음이고 은혜라고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불법을 담당하고 우리를 위해 모든 심판을 대신 받으셨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것이 믿겨진다는 사실이 은혜라는 것 입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이 은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아! 구원은 내힘으로는 안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오는 구나!” 라고 고백을 하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음을 고백하는 자들을 예수의 이름을 믿는자인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자가 예수를 믿는자고! 예수를 믿는자가 멸망치 않는다는 것이 3:16의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저고 그것이 여러분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예배의 잔치, 예배의 축제를 버릴 수 있는 것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의 이름을 믿게된 성도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게 된것이 우리의 공로인가요? 하나님의 은혜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멸망에서 구해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예수의 이름을 믿는자가 되고 예수를 믿는자가 되어 버린 것 입니다. 우리가 알기전에 이미 우리를 예수 안에 넣어서 멸망시켜버리고 그것을 인식시켜 주시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도록 만들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죄악된 육체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그렇게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예수의 이름을 믿는자의 모습이 이 땅에서 어떻게 드러날까요? 무엇을 근거로 그가 예수를 믿는자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을 영접하는 자 라고 합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0:40>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너희를 영접하는 거라고 합니다.
잘 보시면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주 예수를 영접하는 자인데, 주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너희는 누구를 얘기할까요? 마태복음에서 너희는 물론 제자들이지만, 이를 넓게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을 얘기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이 단순히 목사나 선교사라고 한정 지으시면 안됩니다.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입으로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자들을 영접한다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은 항상 세상의 기존의 질서와 틀을 깨는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 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깨고 말씀의 원리를 침투시키는 예수님
위의 마태복음도 제자들이 유대교의 틀을 깨러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세상의 권세자들이 심어 놓은 기존 질서와 세상의 틀을 깨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침투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 이 세상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힘의 원리를 깨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진리의 삶을 산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자들 입니다.
다시 정리 합니다. 예수님이 너희를 영접하는 자라고 말했을 때 너희는 이 세상의 힘의 원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원리가 맞다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얘기하며, 이들을 받아들이는자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라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무엇인지는 너무 자명합니다. 고지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가 하나님 믿고 이렇게 잘살게 되었어! 라고 너희도 나처럼 하나님을 믿어봐! 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무언가 이 세상에서 훌륭한 일을 이뤄놓고 하나님에게 그것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센 자가 지배한다는 세상의 원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십자가의 원리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깨는 성도들은 미움받고 공격 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자들은 이 세상의 원리와 틀을 깨기 때문에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낼 때 예수님이 뭐라고 경고 하시는지 보시겠습니다.
또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에 넘겨주며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 그들을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터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이 도시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도시로 도망하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다니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마태복음 10:21~23>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 중의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마태복음 10:28~31>
성도들이 세상에서 당할 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면 예수님이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내가 땅에 화평을 보내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보내러 왔노라.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딸이 자기 어머니를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불화하게 하려고 내가 왔나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사람들이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내 뒤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생명을 찾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마태복음 10:32~39>
기존 세상의 질서와 틀을 깨려는 성도들의 삶은 세상에 의해 거부 당하고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만 이들을 받아들인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너희는 가면서 선포하여 이르되,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내쫓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돈주머니에 금이나 은이나 놋을 준비하지 말고 여행을 위해 짐 보따리나 덧옷 두 벌이나 신이나 지팡이들을 준비하지 말라.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어느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안에서 합당한 자를 알아내고 거기서 떠나기까지 거기 머물라. 또 너희가 어느 집에 들어갈 때에 그 집에 문안하라. 그 집이 합당하면 너희 화평이 그것 위에 임하게 하되 그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면 너희 화평이 너희에게 되돌아오게 할지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희가 그 집이나 도시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도시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 10:5~15>
지금 이 모습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는 모습인데, 하나님께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시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 무엇을 주란 말씀이실까요?
이말은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게 하시는 겁니다. 이들은 유대교라는 기존 질서를 깨러 들어가면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들어간 것 입니다. 다른 말로 믿는 자들이 영접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세상의 힘의 원리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원리를 받아들이라는 말씀 입니다. 이 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믿는 자들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의 힘의 원리로 세상을 살려는 자들은 멸망한 자 심판을 받은자라고 부르는 것 입니다.
세상을 뒤집어 엎은자, 세상을 소란하게 한자
사도행전 17장에서는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를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자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바울 일행을 잡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을 잡지 못하고 바울을 도와줬던 야손과 그 일행을 잡아들입니다. 이 때 이 불량배들이 야손을 어떻게 고발하는지 보세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어떤 형제들을 끌고 도시의 치리자들에게 가서 외쳐 이르되, 세상을 뒤집어엎은 이 사람들이 여기에도 이르렀는데 야손이 그들을 받아들였나이다. <사도행전 17:6~7>
성경이 야손을 어떻게 묘사하냐면 세상을 소란하게 한 자, 다른 말로 세상의 기존 질서와 틀을 깬 자들을 받아들인자! 라고 표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세상의 기존 질서와 틀을 소란케 한 자들이고 그들의 삶이 옳다고 인정하고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자들을 영접하나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자! 라고 부르는 것 입니다.
세상의 생각과 반대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고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그들이 가고 있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매 그분께서 더 가려는 것 같이 하시거늘 그들이 그분께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러 들어가시니라.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에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매 그들의 눈이 열려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았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더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누가복음 24:25~32>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제자 중에 두명이 엠마오로 내려 갈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같이 가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못알아 봤습니다. 그 때 그 제자들이 우리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생각했는데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기에 관한 성경 말씀을 풀어서 해석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제자들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떡을 떼서 주자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말씀을 이해하고 예수님은 그냥 힘없이 죽어버리신게 아님을 그리고 메시아는 우리가 생각한대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강한 자로 오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예수님이 사라져 버립니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인자의 속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원리가 아닌 십자가의 원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틀을 깨는 자들이고 그 세상의 틀을 깨는 십자가의 원리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는 자라는 뜻이고 예수님께서 그들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서 멸망치 않게 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이 세상과 구분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단순하게 세상과 구분되어 하나님을 믿고 선행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아예 나의 모든 생각과 가치관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부합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미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멸망당하지 않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