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교수님의 글 [무크따_이야기] 25번째 창조과학의 모순과 문제점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창조 과학의 문제점을 1)신학적 2)과학적 3)역사적 4)교회적 5)사회적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섯 가지 주장 모두 근거가 없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한 후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워놓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저는 우 교수님의 근거없는 비난에 대해 근거를 통해 비판하도록 하겠습니다.
1. 신학적인 면
교수님의 주된 주장은 창세기 1,2장과 창세기 족보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천지 창조를 6천년~1만년으로 보는 해석이 복음주의나 개혁주의 구약성서 신학자들의 주류 견해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무리가 있는 주장인데, 왜냐하면 많은 신학자들이 지구가 오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성경의 해석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 교수님의 주장과는 반대로 대다수의 구약 학자, 특히 히브리어에 능통한 신학자들은 성경 해석학적으로 성경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문자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1]
특히 창세기 1장에는 하루라는 ‘욤’이란 단어 외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만약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수천만년 혹은 더 오랜 시간을 의미했다면 저녁과 아침이 지나서 하루가 지났다는 표현을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전문가 글리슨 아쳐는 “표면적으로는 (창세기에 기록된) 전체 창조의 과정이 24시간 6일 동안 일어났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 이게 히브리어 저자의 진정한 의도였다면, 지구가 수십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현대 과학과 상충되는 듯하다.”[^2] 라고 했고, 해석학자 존 바튼 페인 역시 “솔직히, 세속 과학에 의해 발전된 증거가 아니었다면, 선뜻 창세기에서 (오랜 연대를) 추론하지 않았을 것이다.”[^3] 라고 자신이 오랜 지구를 지지하는 근거가 성경이 아닌 과학임을 인정합니다.
만약 창세기의 해석이 젊은 지구 창조론을 의미하지 않았다면 연대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던 때에 특히 히브리어에 능통한 랍비들이 지구가 수천년 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세에 지구가 수천년 되었다는 믿음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 근거는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다 지구의 연대가 수천년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성경을 토대로 그런 주장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오랜 연대를 주장하는 근거는 특정한 가정을 통한 과학적 지식, 특히 동일 과정설적 지식이었습니다.
여기에 우종학 교수님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주장하지 않는 극단적인 문자주의의 프레임을 씌웁니다. 즉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지구가 편평해야 하고, 천동설이 맞아야 하고 하나님은 성대와 발성 기관을 가져야 하고…. 등등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창세기를 문자대로 해석하는 이유는 창세기 기사가 문자 그대로 이해해야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창세기가 왜 시적/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인지에 대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1]
우 교수님은 창세기 1장을 왜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갖고 계실까요? 없습니다.
또 저 역시 교수님처럼 비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아브라함도 이삭을 안바쳤을 것이고, 여호수아가 여리고성도 돌지 않았을 것이고,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훔쳐도 되고,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신화라고 주장한다며 허수아비 치기 오류를 통해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울 수 있습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성경의 모든 표현을 다 극단적으로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글에는 장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는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해야 하는 역사서입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하고 음해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2. 과학적인 면
교수님의 두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그동안 젊은 지구론이 주장해왔던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을 무시, 혹은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먼저 언급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젊은 지구론과 오랜 지구론의 논쟁은 과학적인 논쟁이 아니라 역사적인 논쟁이라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시나리오 싸움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일이 역사속에 일어났느냐의 논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 전체는 오류와 왜곡 덩어리 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우 교수님은 지구나 우주의 연대에 관한 결론이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과학에 대한 과도한 맹신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사람들은 우주의 연대가 138억년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200억년 이라고 했고, 제가 학교 다닐때는 150억년 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주의 연대에 관한 결론이 오래전에 나왔다면 우주의 나이에 대한 수치는 변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그 수치는 지금도 변하고 있고 사람들이 어떤 가정을 하고 어떤 측정 결과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연대는 몇억년에서 몇십억년씩 왔다갔다 합니다.
과학이 우주의 연대에 관한 결론을 냈다고 말하지만 이는 과학이 역사적으로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에 대한 진리를 찾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멉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연대에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이유는 그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입증할 수 없는 특정한 가정에 모두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특히 모든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가 역사 내내 일정했다는 가정을 인정합니다.
우 교수님께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빛의 속도가 우주의 역사 내내 일정했다는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그 가정을 입증하실 수 있으신가요?
만약 어떤 결론을 내기 위해 사용한 가정을 입증할 수 없다면 함부로 우주의 연대에 관한 결론을 냈다고 말해선 안됩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주간에 하나님이 빛의 속도를 조절하셨거나 아주 빠른 속도로 운동하게 하셨다면,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음을 가정하고 계산한 우주의 나이는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없다면, 우주의 연대가 만년 이상 매우 오래 되었음을 확증한다는 주장은 미혹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자연 과학자들은 당연히 창조 과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 교수님이 세상의 자연 과학자들에게 동의를 하는 이유는 그 분 역시 세속 과학이 주장하는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가정을 버리고 그들의 이론과 가정들에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창조 과학자들은 세속 과학자들의 무시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무시를 당한 것과 비슷한 이유이며, 아벨이 가인에게 돌 맞아 죽은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선다는 인본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은 점점 더 고난받고 핍박받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 교수님은 ‘너희들이 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비유라고 생각하실까요?
방사성 연대 측정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은 창조 과학에서 탄소 연대 측정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비판하지만, 탄소 연대 측정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진화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탄소 연대 측정법에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큰 문제가 됩니다. [^4]
보통 방사성 연대 측정법을 절대 연대 측정법이라고 말합니다. 절대 연대 측정은 같은 샘플에 대해 어떤 측정법으로 측정해도 같은 연대가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오랜 지구론자 양승훈 교수님께서 ‘연대측정 방법에 따라 100만 년이었던 결과가 10억 년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8억 년이 15억 년 정도로 변한다면 이것은 오차의 한계를 다소 벗어나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측정오차를 표시한 그래프를 보면 오차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하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결과라고는 할 수 없다.'[^5] 라고 하셨을까요?
실제로 네이쳐는 같은 지층에 대한 연대가 2억 1200만년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가, 새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자 4천만년 정도로 연대를 급격히 낮추는 논문을 게재하기도 합니다. 절대 연대 측정법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측정 결과는 아주 많이 바뀝니다.
특히 교수님은 왜 납 연대 측정 반감기가 막 지나가는 현상이 발견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시는데, [^6] 이 질문은 우라늄-납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할 때 초기 조건이 100% 우라늄이라는 가정을 하고 한 질문이지만, Isochron 연대 측정법을 사용하면 우라늄이 초기에 100%라는 가정은 틀린 것으로 나옵니다.
모순은 연대 측정법이 틀렸다는 젊은 지구론 창조론자에게 있는게 아니라, 어떤 측정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초기 조건이 달라지는 절대 연대 측정법에 있습니다.
2번글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유신 진화론자들은 젊은 지구론자가 제기하는 문제에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에 99%의 과학자가 입증하지 못하는 가정을 동의하기로 결정하고 내린 결론을 통해 입증하지 못한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 1%의 과학자들을 멍청하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입증하지 못하는 가정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멍청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주가 137억년 되었다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계산을 했는지, 무엇을 가정했는지도 모른체 다수가 말하는 것을 무작정 신뢰하고 있습니다. 99%의 다수가 말하는 입증하지 못한 가정을 통한 결론보다 훨씬 더 정확한 정보가 있으며, 우리는 그 진리를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3. 역사적인 면
창조 과학자들은 젊은 지구 창조론을 반대하는 모든 과학을 진화론이라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는 오랜 지구 창조론자인 휴 로스를 진화론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하나님이 진화라는 방식을 사용해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교수님같은 분들을 진화론자라고 부를 뿐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에 지질학계에서 지구의 연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학자들도 이에 맞춰서 간격이론이나 날-시대 이론으로 창세기를 해석해 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창세기의 진정한 의미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창조 과학이 안식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조지 프라이스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홍수 지질학은 19세기 동일 과정설을 만든 찰스 라이엘도 언급합니다. 물론 그 때는 홍수 지질학이라는 이름 대신에 창세기를 쓴 모세의 지질학이라고 불렸습니다.
나는 당신이 과학을 모세로부터 해방시켜 줄 이 논문을 Q.R. 지에 실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네.··· 나는 5~6년 전에 이 개념을 생각했다네. 모세의 지질학이 끌어내려질 수 있다면, 그것(성경)은 역사적인 스케치가 될 것이고··· 당신은 나의 논문을 게재해 주어야만하네. 나는 사람들이 역사 기록(창세기)으로부터 이론을 만들어 내지 않기를 바란다네. [^7]
즉 우 교수님은 찰스 라이엘이 사람들이 성경을 신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이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이론이 정말 과학적이었는가? 저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라이엘의 탁월한 업적은, 흔히 말하듯이, 주요한 모든 지식을 체계적으로 요약한 교과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짜 맞춘 하나의 주장을 표현하는 인상적이고 간결한 글귀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 진실은 논리적 주장과 풍부한 문서들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지, 수사적인 화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찰스 라이엘은 직업적 변호사였으며 … 자신의 동일과정설적 견해를 유일하고 진실한 지질학으로 확립하는 데 두 가지 작전을 사용하였다.
우선 그는 허물어 버릴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사실, 격변론자들은 라이엘보다 훨씬 더 경험적이었다. 지질기록은 격변론을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지층 암석들은 부서지고 뒤틀려 있으며, 전체 생물상(faunas)이 파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해 보이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라이엘은 창의적 상상력으로 증거를 보강하였다.… 라이엘은 진실(truth) 탐구와 현장연구(fieldwork)의 백마를 탄 기사는 아니었지만, 시간 순환의 지속적 상태(steady state of time’s cycle)에 뿌리를 둔, 매력적이고 특별한 이론의 전파자였다. 그는 수사적(修辭的)으로 이 현실적 이론을 합리적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라이엘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적은 지질학계의 공식적 영웅전(英雄傳)이 될 정도였으며, 오늘날까지 교과서를 통하여 전파되고 있다. 물론 전문 역사학자들은 더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단순하고 영웅적 이야기를 열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장 지질학자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8]
실제로 찰스 라이엘이 동일 과정설을 만들어 내기 전까지 지질학은 지구의 역사를 수천년으로 계산했으며 우 교수님이 추천한 로날드 넘버스 역시 19세기에 엘리자 로드는 이미 홍수 지질학을 옹호하고 이에 대한 책도 썼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모리스가 조지 프라이스의 연구에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몇 백년전 사람인 찰스 라이엘이 부정하려고 했던 홍수 지질학을 조지 프라이스가 창시한것처럼 사람을 속이는 것은 엄청난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교회적 측면
제가 가장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은 네번째 주장입니다. 교수님은 창조 과학자들의 주장이 많은 교인들의 신앙을 잃게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창조 과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황당한 주장인데…
우리는 성경에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찌된 까닭이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그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처럼 구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은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느니라. <로마서 9:32>
수많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내세우는 인본주의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길밖에 없다는 믿음을 걸림돌로 여기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 교수님은 예수님께도 “당신의 구원 방법이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니 당신의 구원 방법을 버리십시오.”라고 말하실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Biologos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유신 진화론은 인간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세가 아니라 인간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진리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교수님은 창조 과학을 믿었기 때문에 신앙을 잃은 분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창조 과학이 신앙의 걸림돌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지 창조 과학을 믿다가 그것이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어 신앙을 버린 경우일 뿐입니다. 진화론이라는 거짓에 미혹되어 창조론을 버리고 진화론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신앙을 버린 것은 창조 과학때문에 신앙을 버리는게 아닙니다.
실제로 진화론이야 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못하게 하는 미혹이 되었습니다.
성직자를 하려 고민했던 찰스 다윈은 말년에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창조 과학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했나요?
우 교수님이 그렇게도 자랑하시는 ‘창조론자들’의 저자 로날드 넘버스도 과학을 받아들이고 불가지론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도 자신이 신앙을 잃게 된 계기를 진화론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엔 유럽, 그 다음엔 미국, 그리고 이제는 한국…. 기독교의 쇠퇴는 진화론의 부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꼭 진화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은 그 믿음을 파괴시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 성령의 검이 ‘말씀’인데, 검을 잃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회적으로 창조 과학을 믿는게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 과학을 다른 미혹으로 인해 버릴때 신앙을 잃게됩니다. 그리고 교수님을 비롯한 유신 진화론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 연대를 따르는 창조론을 버리도록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5. 사회적인 면
창조 과학은 과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창조 과학이 어떤 과학을 부정합니까? 답해 주실수 있습니까?
그것은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착각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창조 과학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다윈이 관찰한 핀치새의 부리가 변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창조론 안에도 그런 현상과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문제는 무생물에서 생물이 되고, 비교적 단순한 생물이 더 복잡한 생물로 진화해 왔다는 이론적으로 말도 안되는 상상을 과학이 아니라고 부정할 뿐입니다.
교수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발생한 가장 단순한 최초 생명이 어떻게 새로운 단백질을 생성할 능력을 얻어 두번째 생명체가 되었습니까? 이에 대한 메커니즘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관찰 사례를 제시해 주십시오.
만약 그런 메커니즘도 설명을 못하고 관찰 사례도 없다면 그것을 제가 왜 과학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실제로 교수님도 대진화의 메커니즘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개입이 있다면 대진화는 가능하지만 창조주의 개입을 가정하면 그것 역시 더이상 과학이 되지 못합니다.
무식한 것은 창조 과학이 아니라 단백질 형성 확률 10-77을 뚫고 수십만 수백만 종류의 단백질을 형성할 능력을 갖추고 지금의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이 부정되면 현대 사회가 발전하지 않습니까? 진화론을 믿지 않는 의사는 수술을 하지 못하거나 상담을 할 수 없게 되나요? 그리고 100번 양보해서 실제로 진화론을 믿지 못해서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생을 잃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가요?
유신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선다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불가능함과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 절대 신뢰에 대해 이해하셔야 합니다.